붉은 해가 기운을 받아 어둠을 밀쳐내고 있었다. 허름한 대장간 구석에선 머리에 흰 두건을 질끈 동여매고 장신구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소리가 아침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두 다리는 길이가 맞지 않아 절룩거리며 연신 망치질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볼품이라곤 한 푼 어치도 없어 측은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선 구슬 같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헤파이스토스 이다. 헤라가 남편 제우스와 사랑을 하지 않고 혼자 낳은 아들이다.
가엾은 헤파이스토스가 태어날 때부터 불구가 된 것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 헤라가 제우스의 바람 끼 때문에 얼핏하면 말다툼을 하였는데 어느 날 제 어머니를 역성든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붓자식이나 다름없어 눈에 가시처럼 꼴 보기 싫을 판인데, 화가 잔뜩 난 제우스가 어린 헤파이스토스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제우스의 발길질에 차인 헤파이스토스는 천상에서 렘노스 섬에 떨어졌다. 숨만 깔딱깔딱 쉬고 있을 뿐 두 다리는 부러지고 얼굴은 양재기가 찌그러지듯 몰골이 험악하게 구겨지고 말았다.
천상의 명장 헤파이스토스는 부러진 다리를 이리 저리 붙이고 고치긴 했지만 절름발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를 원망하지 않고 우주의 대장장이를 대표하는 신으로 맡은 일에 충실했다. 올림포스의 천궁과 신전을 짓고 제우스의 옥좌와 방패와 태양신의 태양 마차를 만들었으며 아폴론의 활과 아르테미스의 창을 만드는 따위로 업적을 헤아릴 수 없다.
근면 성실한 헤파이스토스가 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신부감이 나타나질 않았다. 대장장이 출신에 볼 품 없는 얼굴, 절룩거리기까지 한 그에게 관심을 가진 여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부터 대장간 밖에선 신들의 행차 소리가 요란했다. 은하수 양옆으로 늘어선 올림포스 신전에선 신들이 하나 둘씩 나오더니 제우스가 거주하는 신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탁을 발표하는 회의장에 들어 선 제우스가 신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번 빙 둘러 본 뒤 입을 열었다.
"며칠 전, 헤파이스토스가 나를 위해 번개를 잘 단련시킨 것을 보고 감동하였소."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이름을 한번 불러 보았다. 그러나 신랑감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제우스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오. 우리 신들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헤파이스토스가 지금까지도 혼자 살고 있는 데 대하여 한 시도 걱정을 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이번 기회에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숨소리가 멎었다.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헤파이스토스의 신부감으론 아프로디테만한 처녀가 없을 것 같군요."
모두 귀를 의심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짝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포고문에 가까운 신탁 발표가 있기 몇 시간 전만해도 수많은 신들이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고 혈투에 가까운 쟁탈전을 벌이고 있던 터였다. 포세이돈, 아폴론, 아레스, 헤르메스 따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신들이 아프로디테를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올림포스 신전이 대판 싸움판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발표문에 가타부타 따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올림포스 신전에서는 물론이고 인간 세상에서까지 추남으로 이름 높은 가난하고 못생긴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로 간택되었다.
그 날, 중대 신탁 발표가 있던 그 자리에 정작 아프로디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장미꽃이 만발하고 백조 한 쌍이 유유히 춤을 추는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계절의 신 가운데 한 여신이 아프로디테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건네었다.
"오 맙소사." 아프로디테가 고개를 떨구며 체념한 채 내뱉은 소리는 차라리 신음에 가까웠다.
"가엾은 아프로디테." 옆에 서 있던 여신도 함께 슬퍼했다.
날벼락도 분수가 있지. 순전히 타의에 의해 가난한 절름발이 대장장이의 아내가 된 아프로디테에게 동정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래 전 아프로디테는 오랜 세월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품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녀가 서풍에 실려 키프로스 섬에 도착하였을 땐 계절의 여신들이 영접하였고 고운 옷을 차려 입고 신들이 모인 궁전으로 나아갔을 땐 모든 남신들이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바다에서 갓 올라온 아프로디테의 두 눈동자에서는 푸른 바닷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조그만 입술에서는 붉은 앵두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미의 여신은 신이든 인간이든 한 번 걸리기만 하면 헤어나지 못하는 마법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수를 놓은 '마법의 띠' 케스투스를 항상 허리에 두르고 다녔다.
비록 가난한 대장장이 신을 남편으로 두었지만 꿋꿋하게 사랑과 미를 호령하는 아프로디테 여신이 통치하는 금성은 그녀의 우아한 외모를 닮아서인지 태양과 달 다음으로 밝게 빛을 낸다. 금성은 태양으로부터 두 번째 대열에 끼어 태양계를 일주하고 있다.
금성은 태양으로부터 약 1억 8백 20만 ㎞ 거점에 위치하고 있다. 수성 다음으로 태양에서 가까운 행성이다. 그래서 금성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태양으로부터 47도 이상 떨어진 적이 없어 수성과 마찬가지로 저녁 무렵 태양의 동쪽에 있을 때 서쪽 하늘에 잠깐동안 모습을 드러냈다가 곧 사라지는 '저녁별'이 된다.
그리고 태양 궤도의 반대편, 즉 태양의 서쪽에 있을 때에는 해뜨기 전에 동쪽 하늘에 얼굴을 내밀자마자 태양의 강한 빛에 자취를 감추어 버리곤 한다. 때문에 금성은 '새벽별'이 된다.
초저녁과 새벽에 잠깐 동안 모습을 보이다가 사라지는 금성은 아프로디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움만 남기고 가버린다.
금성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새겨진 강줄기가 여기 저기 널려 있다. 금성의 최대 강줄기의 이름은 노르웨이의 전설에 등장하는 여성 전사 '하르돌'이라고 부른다.
금성은 태양보다는 지구에 더 가까운 행성이다. 지구와 금성이 가장 가까이 다가설 때의 거리는 4천만 ㎞를 넘기지 않는다. 지구의 달을 제외하고는 가장 가깝게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천문학자들은 한 때 금성을 지구의 쌍둥이라고 주장하여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일부과학자는 금성에는 태양에 가깝긴 해도 보호막 구실을 하는 구름이 있어 지구보다 넓은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금성은 지구에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천체가 크기 때문에 더욱 밝게 보인다. 금성이 가장 밝을 때는 마이너스 4.22등급이다. 태양과 달을 제외하고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금성의 공전 궤도는 거의 원형에 가깝다. 금성의 적도와 공전 궤도면이 이루는 각도는 약 3도로 거의 수직을 이룬다.
자전주기가 미국 물리학자에 의해 정확히 밝혀진 금성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 가지는 금성의 자전주기는 243일이며 공전주기는 이보다 19일 보다 짧은 224일이다. 또 한 가지, 금성은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의 북극에서 볼 때 거의 모든 행성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고 있는데 금성은 예외이다.
공상 과학소설가들은 가엾은 전설을 지닌 아프로디테가 통치하는 금성에는 물이 넘치고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묘사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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