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신 우라노스 신전에선 여섯째 사내아이 탄생을 기뻐하고 있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방금 태어난 아기의 열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보았다. 아기는 어머니의 손을 힘껏 쥐었다.
아버지 우라노스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크로노스라고 지었다.
맏이 오케아노스가 둘째 코이오스, 셋째 휘페리온, 넷째 크리오스, 다섯째 이아페토스를 데리고 동생의 탄생을 축하하러 우라노스 신전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가장 키가 작은 다섯째 이아페토스가,
“아버님, 큰형은 바다 신이고, 둘째형은 하늘덮개, 셋째형은 높은 곳을 달리는 자 따위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제 동생 크로노스에겐 무엇을 맡길 생각이세요?”
하고 물었다.
“맞아. 막내 크로노스에겐 말이다. 시간을 맡도록 해야겠는 걸.” 우라노스가 이아페토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크로노스는 잔병치레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는 첫째누나 테이아를 비롯해 ‘동물의 안주인’ 레아, ‘기억’을 담당하는 신 므네모쉬네, 포이베, 테튀스 그리고 ‘이치’의 여신 테미스 따위의 누이들과 소꿉놀이도 즐겨하였다.
장성한 크로노스는 한 손에는 모래시계, 다른 한 손에는 낫을 들고 다녔다. 그는 어머니 가이아의 신전에서 항상 머물렀다.
하루는 어머니 가이아가 막내 크로노스에게 마음에 담고 있는 고통을 털어놓았다.
“크로노스, 이 어미에게 가슴을 도려내는 한이 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토해 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의 아버지가 내가 바라지도 않던 자식을 낳게 했지. 너희들에게도 종종 행패를 부리는 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백수 거인 3형제가 바로 그들이야. 이 아이들이 지금 내 뱃속에 갇혀 있는데 이 놈들이 소동을 부리는 통에 내가 한시도 편할 날이 없구나.”
그렇다고 하늘의 신이 죽으면 하늘이 없어지기 때문에 우라노스를 죽일 수는 없었다.
한쪽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던 막내 크로노스가 고개를 쳐들더니만,
“어머니,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어머니의 신전을 물러 나온 크로노스는 낮이 저물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을 틈타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낮에 한 약속을 지켰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가이아는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 더욱 막내아들 크로노스를 곁에 두기를 좋아했다. 커다란 낫을 들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따위의 5남매를 차례로 낳았다.
그러나 여섯째 아이를 임신 중인 레아는 항상 비통한 슬픔에 빠져 있었다. 남편이 그녀가 낳은 아이들마다 족족 다 삼켜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어 한 아이도 손에 안아보기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시어머니 가이아에게 찾아갔다.
“대지의 여신인 어머니, 저는 지금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중입니다. 산달은 얼마 안 남았는데 너무 걱정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계속 말했다. “제 남편 크로노스가 아이들을 모두 삼켜버린 통에 자식이라곤 구경도 할 수 없어요. 크로노스의 이상한 병을 고칠 방법은 없을까요?” 가이아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바윗덩어리 하나를 강보에 싸 놓았다가 이 바윗덩어리와 아기를 바꿔치기를 하는 거야.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모든 일을 은밀히 할 것을 당부하였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크로노스가 레아의 신전으로 달려왔다.
“저것이 무엇이오?”
크로노스는 레아 곁에 있는 강보에 쌓인 것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대지의 속살입니다.”
방금 아기를 낳은 레아가 대답했다.
크로노스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강보에 싸인 것을 꿀꺽 삼켜 버렸다.
뒷문으로 빠져나간 가이아는 레아의 막내아들을 안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동굴에 살고 있는 요정 아말테이아에게 아기를 맡겼다.
“이 아이의 이름은 제우스요. 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될 때까지 이 곳에서 맡아주시길 간곡히 부탁하오.”
할머니의 팔에서 내린 아기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아말테이아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말하였다.
“산신들은 귀담아 들으세요. 아기의 울음소리가 크로노스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일분 일초도 빠짐없이 방패를 두들기도록 하세요.”
“예, 아무리 귀밝은 크로노스지만 저희들의 난장소리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엿듣진 못할 것입니다.” 가장 힘이 센 산신이 대답하였다.
산에서 무럭무럭 자란 제우스는 청년이 되었다. 자신의 내력을 알게 된 그는 테미스 여신을 찾아갔다.
“아버지가 삼킨 제 형들과 누나들을 되살려낼 방도는 없을까요?”
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에게 형들과 누나들을 되찾을 방법을 일러주었다. 제우스는 곧바로 산을 내려와 어머니 레아를 찾아가 크로노스의 시중꾼으로 써 달라고 간청했다. 레아는 제우스의 정체를 알아보았으나 크로노스가 삼키려들까 봐 모르는 체 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신찬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르를 시중드는 일을 자청하였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음식을 올릴 때마다 구토제를 넣었다. 처음에는 끄덕도 하지 않던 크로노스도 신찬과 넥타르를 먹을 때마다 약을 먹이자 삼킨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승의 신’ 하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부엌의 여신’ 헤스티아,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 헤라를 토해내고 마지막으로 바윗덩어리를 토해 내었다. 그리고 크로노스는 제우스의 정체를 끝내 알게 되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대지의 속살’이 바윗덩어리란 사실을 알지 못했구나. 삼킨 것을 다 해 토해 냈으니 나는 이제 시간의 신이 아니다. 네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
제우스를 비롯해 하데스, 포세이돈은 며칠 동안에 걸친 열띤 토론 끝에 아버지 크로노스를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세 아들에게 추방당한 크로노스는 인간세계로 내려와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렸다. 천국에서 벌인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선정을 베풀 것을 속으로 약속했다.
크로노스가 통치한 토성은 망원경이 발달되기 전까지만해도 태양계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토성은 우아한 고리를 지니고 있으며 태양계 가운데 유일하게 대기를 가진 달을 거느리고 있다. 토성은 초속 9.7㎞ 속도로 느릿느릿 우주를 활보해 태양계를 일주하는 데 지구시간으로 29.6년 걸린다.
그러나 자전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낮과 밤의 총 길이가 10시간 40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토성의 하루는 지구의 한나절밖에 되지 않아 먼 미래에 토성 관광이 가능하다면 토성 전용 시계를 따로 준비하여야 할 것 같다.
토성의 질량은 지구의 약 100배이며 지름은 12만㎞가량으로 목성 다음으로 태양계에서 큰 행성이다.
토성의 대기는 목성과 마찬가지로 수소와 헬륨이 주류를 이루고 약간의 메탄과 암모니아가 첨가돼 있다. 토성의 대기 속에서는 태양과 비슷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토성의 표면 온도는 섭씨 영하 150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기층 꼭대기는 영하 180도를 기록하고 있다. 지구의 남ㆍ북극의 혹한 정도는 동토의 토성에서는 코웃음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토성의 온도가 낮은 이유는 태양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토성은 태양으로부터 평균 14억 2천 7백만 ㎞ 지점에 있다. 목성보다 두 배 가량 먼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추위 때문에 토성에서는 암모니아는 물론 메탄 등이 고체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토성 상공 1000㎞ 아래는 수증기와 암모니아 구름이 공존하고 있으며 하늘에서는 시속 1770㎞ 짜리 강풍이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다.
시간을 관장하며 자식을 낳는 대로 삼키는 식인종의 행패를 부리다 올림포스 신전에서 추방당하여 이탈리아로 망명한 크로노스가 지배하는 토성은 태양계 가족 가운데 비교적 멀리 있는데도 밝은 빛으로 빛난다. 수성보다도 더 밝은 빛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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