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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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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2>

섬광처럼 살다간 위대한 천재의 이야기: 밀로스 포만의 '아마데우스'

예술가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신으로부터 타고난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이다. 왜? 예술은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 중에서 예술 분야만큼 ‘천부적인 재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위대한 예술가를 꿈꾸는 것은 거의 실현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84년에 나온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는 모짜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 모짜르트와 함께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 살리에리가 나오는데, 바로 그가 이런 사람이었다. 살리에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신앙심이 누구보다 깊었지만 신으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지 못한 불행한 음악가였다. 그는 자기가 죽었다 깨어나도 모짜르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짜르트를 볼 때마다 신의 불공정함에 분노를 느끼곤 했다.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위대한 음악가가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모짜르트는 어떤가. 그렇게 열심히 갈구하는 자기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면서, 매일 촐랑대며 여자와 음란한 말이나 주고받는 저 건달에게는 위대한 재능을 허락하다니. 살리에리는 절규한다. 왜 신은 자기에게 위대한 예술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만 허락하고,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재능은 허락하지 않았는가 하고.

신의 불공정한 처사에 대한 분노와 모짜르트에 대한 질투, 위대한 음악가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살리에리는 서서히 미쳐갔다. 그러다가 그는 급기야 자기가 모짜르트를 죽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짜르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살리에리의 절규로 시작한다.

살리에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모짜르트에게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는다. 하인들이 문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다고 설득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갑자기 안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인들이 놀라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살리에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이 장면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 터져나오는 음악이 있다. 모짜르트의 교향곡 25번의 1악장이다. 처음 <아마데우스>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장면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모두 마흔 한 곡이나 되는 모짜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어쩌면 이렇게 이 장면에 딱 어울리는 곡을 찾아냈을까 감탄했기 때문이다. 흔히 모짜르트의 교향곡 하면 순진무구하게 밝고 아름다운 고전주의 교향곡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교향곡은 낭만주의 교향곡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과 내용의 순수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 나오는 25번 교향곡만은 예외인 것 같다. 이 곡은 고전주의 교향곡으로서는 다소 차고 넘치는 극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낭만주의를 준비하는 고전주의의 내재적 에너지를 느끼곤 한다. 그 다음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터지고야말 과도한 감정분출의 전주곡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천재 모짜르트는 때때로 자기의 시대까지 초극한다.

살리에리가 일하고 있던 비엔나 궁정에 모짜르트가 나타났다. 사실 당시 비엔나 궁정에는 살리에리와 같은 이탈리아 음악가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 하면 이탈리아가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궁정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는 모조리 이탈리아어로 된 것이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조차도 노래에는 역시 이탈리아어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황제를 만난 모짜르트가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하겠다고 하자 모두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일어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말도 안 돼. 다들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라는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해서 독일어는 노래에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깨부수었다. 영화에서는 이 오페라의 2막에 나오는 콘스탄체의 아리아 <어떤 고통이 닥칠지라도>와 터키의 태수의 근위병들이 힘차게 부르는 <태수 세림 만세>가 나온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요제프 황제는 모짜르트를 찾아와 작품이 매우 훌륭했다고 칭찬한다. 그러다가 무조건 칭찬만 해서는 황제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한가한 저녁에 듣기에는 너무 음표가 많으니. 음표를 조금 줄이도록 하지.”라고 한다. 여기서 요제프 황제는 짐짓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척 하지만 실제로는 음악에 대해 전혀 센스가 없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음표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말 한 마디에서 그의 음악적 식견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천재 음악가와 아둔한 황제 그리고 그 옆에서 아첨을 일삼는 비겁한 신하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을 아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장면이다.

그 후 모짜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피가로의 결혼>은 본래 프랑스 희곡으로 계급의 존재를 부정하는 등 민중을 선동할 수 있는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어 황제가 이미 연극의 상연을 금지시킨 작품이었다. 그런데 모짜르트가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황제가 그를 불렀다. 황제는 <피가로의 결혼>은 매우 위험한 작품이며, 바로 이 작품 때문에 지금 프랑스에서 민중들 사이에 소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혁명의 조짐이 보이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희곡에서 정치적인 요소는 모두 제거했다는 말로 황제를 설득한다. 자기는 정치를 싫어한다고, 이것은 단지 유쾌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모짜르트가 이렇게 열심히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자 그 자리에 있던 궁정 음악가들이 한 마디 씩 한다. 왜 고상한 소재를 놓아두고 그렇게 유치한 소재로 오페라를 쓰느냐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음악가들의 오페라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궁정에서 왕을 비롯한 몇몇 귀족들을 위한 음악만을 만들어내던 궁정 음악가들은 오페라의 주제는 고상하고 거창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던 모짜르트는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주제에는 이제 신물이 났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신화나 전설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느냐고. 세상에 동네 이발사보다 헤라클레스를 더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서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생명력 있는 오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짜르트는 황제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한다.

살리에리는 <피가로의 결혼>을 보면서도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특히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나오는 영감어린 노래들이 그의 가슴을 울렸다. 자신의 부정을 들킨 백작이 무릎을 꿇고 “부인 용서해주시오”라고 간청하자 백작 부인이 “나는 관대한 사람이니 용서해 드리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합창으로 “그럼 우리 모두 행복할거예요”라고 화답하면서 오페라가 끝이 난다. <피가로의 결혼>에 주옥같은 멜로디가 가득 있지만 특히 이 대목은 그 중에서도 정말로 아름답고 순수한 음악적 영감이 흘러넘치는 대목이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모짜르트적인 아름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느끼곤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모짜르트가 막연하게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생의 후원자이자 조언자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형상을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통해 부활시켰다. <돈 지오반니>는 희대의 난봉꾼 돈 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돈 지오반니는 돈 환의 이탈리아식 발음이다. 그 동안 수 천 명의 여자들을 농락했던 돈 지오반니가 어느 날 석상의 모습을 한 혼령의 방문을 받고 지옥 불에 떨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살리에리는 여기에 나오는 기사장의 혼령이 바로 모짜르트 아버지의 현신으로 생각한다. 무덤 속에서조차 아들을 음악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 지오반니>를 보면서 드디어 살리에리의 광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모를 꾸몄다. 모짜르트에게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고 의뢰한 다음 작품이 완성되면 그를 죽이고 그 작품을 자신의 작품으로 하는 것이다. 살리에리가 가면을 쓰고 모짜르트를 찾아가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레퀴엠>의 제일 첫 곡인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가 흐른다. 한편 모짜르트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에서는 <진노의 날에>가, 아내의 독촉을 받으며 레퀴엠을 쓰는 장면에서는 <위엄과 공포의 왕>이 나온다.

<레퀴엠>을 쓰면서 모짜르트의 창조력은 서서히 고갈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너무나 고갈시킨 나머지 결국 모짜르트는 <마술피리>의 공연 도중 쓰러지고 만다. 옆에 있던 살리에리는 쓰러진 모짜르트를 집으로 데려오고, 그가 <레퀴엠>을 작곡하는 것을 도와준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곡이 바로 <사악한 자들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이다.

음악으로는‘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형상화시키고 있었지만 사실 바로 이때부터 모짜르트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요양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간신히 미소를 보낸 모짜르트는 그로부터 얼마 후 숨을 거둔다. 남편을 부르는 콘스탄체의 울부짖음을 배경으로 <레퀴엠> 중 <눈물의 날에>가 흘러나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모짜르트의 관이 쓸쓸하게 공동묘지로 향한다. 아내와 장모, 살리에리 등 모짜르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비통해 하지만 신부와 인부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그가 묻히는 마지막 장소에 동행하지는 않는다. 인부들이 관 뚜껑을 열고 모짜르트의 시신을 여러 구의 시신이 있는 구덩이로 밀어 넣자 신부가 종을 흔들며 의례적인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 의식이 끝나고 모두 마차를 타고 떠나기 전에 인부 한 사람이 하얀 가루를 삽으로 퍼서 시신 위에 뿌린다. 시신들 위로 하얀 가루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모짜르트의 죽음만큼이나 처연한 <눈물의 날에>는 <아멘>으로 끝을 맺는다.

모짜르트는 끝내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작곡하던 레퀴엠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 되었던 셈이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레퀴엠>을 듣고 있으면 이 작품이야말로 모짜르트 음악의 완결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진실로 ‘위대한 작곡가’라는 이름에 합당한 ‘위대한 음악’이 바로 모짜르트의 <레퀴엠>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류에게 충분한 공헌을 한 셈이다.

모짜르트가 살았던 18세기 중반은 새로운 사상이나 풍토가 전 유럽에 골고루 퍼진 시기였다. 이 시기는 또한 작곡가가 후원자로부터 서서히 독립하기 시작한 과도기에 해당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작곡가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시대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고 있었다. 유럽의 여러 궁정의 생활 방식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으며, 혁명의 기운은 감돌았지만 구질서가 여전히 자연의 질서로 여겨지고 있었다.

불꽃같은 창조력으로 종종 후원자와 마찰을 빚었던 모짜르트는 결국 후원자로부터 독립해 생애 마지막 10년을 프리랜서로 살았다.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그는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고갈시켜갔다. 그는 음악가가 하인보다 조금 나은 고용인에서 독립된 예술가로 이행하는 변혁의 와중에 서 있었으며, 이런 불안한 입지가 그를 늘 괴롭혔다.

구질서의 붕괴를 가져온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으나 모짜르트는 혁명의 열매를 따먹어보지도 못하고 새 시대의 입구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정녕 구제도의 마지막 사람이었으며, 예술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18세기의 세기말적 상황의 희생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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