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중앙아시아의 비단 길에 위치한 투르판과 우르무치라는 곳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무려 3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곳이건만, 그곳이 아스라한 옛적에 우리 조상들의 활동무대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선조들이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적힌 것처럼 ‘바이칼’호 일대에서 동남 방향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동해 왔다는 것을 밝혀주는 소중한 단서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음양오행에 관한 주제가 아니지만, 얘기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그다지 신빙하지 않는다. 믿을 만한 내용과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마구 뒤엉켜있어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허점과 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환단고기가 위서(僞書)가 아니라 참된 얘기를 전하는 원본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엮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추측, 좋게 말해 민족적 관점에서 자신의 바람을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마구 집어넣었던 탓에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책이 환단고기라 여겨진다.
우르무치에서 천산을 넘어가면 중가르 분지가 나오고 거기서 좀 더 가면 알타이 산맥이 나온다. 거기서 좀 더 동북으로 가면 바이칼 호가 있다. 따라서 우르무치에서 바이칼 호까지는 대략 1,500 Km 이다.
또 우리나라는 바이칼 호에서 동남으로 대략 2,000 Km 떨어져 있다. 따라서 우르무치와 한반도는 바이칼 호수의 서남과 동남에 위치하여 바이칼 호와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우리 민족의 뚜렷한 흔적, 그것도 겨우 이천년 정도의 옛날이 아니라 수 천년에서 길게는 수 만 년에 이르는 먼 시간대에 우리 민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을 찾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르무치의 바로 위에 천산(天山)산맥이라는 산계가 있고, 그 주봉에는 천지(天池)라고 부르는 산정 호수가 있다. 중국 땅에는 천지라 부르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백두산 천지이고, 나머지가 천산의 천지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천산의 천지에 대해 책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천지란 하늘 호수이란 말이기에 신령한 느낌으로 말이다. 천지는 그러나 백두산 천지에 비하면 대단히 왜소한 편이었다. 수심도 불과 10 여 미터라고 하니 수백 미터에 달하는 백두산 천지에 비하면 이른바 게임도 안 되는 셈.
더욱이 대절한 버스로 올라가니 고생을 안 해서 그런지 더욱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호텔에서 얻은 지도를 보다보니 주봉의 이름이 한자로 박격달, 博格達이었다. 중국 발음으로 읽으면 ‘보꺼다’가 된다. 필자는 원주민들이 붙인 지명을 중국인들이 어떤 식으로 기명(記名)하는지도 대강은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무심코 보던 필자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박격달 봉의 원 명칭은 바로 ‘박달’이라는 생각이었다. 박달은 그리고 정확하게 우리 한국말이다.
우리말에서 박달의 원 의미는 ‘밝은 땅’이다. 그런데 나중에 전화(轉化)되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일컫는 말로 변했다. 왜냐면 산골에서 아침에 해가 뜰 때, 가장 먼저 밝아오는 곳이 어딘가? 바로 산봉우리이다. 그러니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먼저 밝아오는 곳이라 해서 박달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무려 3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신강 위구르 자치구, 중앙아시아 우르무치 근처의 신령스런 산봉우리의 이름이 박달이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필자는 예전부터 중국 북부의 많은 지명들이 우리말 명칭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령 중국 만리장성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팔달령인데, 이 팔달은 한자로는 八達이고 중국식 발음은 ‘빠다’이지만 원 명칭은 박달이다.
그런가 하면 약 10년 전 백제 고분에서 발굴된 박산향로가 있다. 여기서 박산(博山)이란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의 산이지만 실은 오늘날 중국 산동에 있는 태산(泰山)의 옛 우리식 명칭이다. 바로 동이족의 말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단지 ‘박달’에서 ‘달’자가 빠진 명칭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고대 왕조인 은(殷)이 최초로 도읍을 정한 곳도 ‘박(亳)’이라 했는데 이 역시 박달에서 달이 빠진 명칭이다. 물론 은 왕조의 시조는 현조(玄鳥)의 알에서 나왔다고 하니 당연히 우리 민족의 전승 신화이고, 따라서 동이족의 나라였다.
이외에도 중국 북방, 특히 산동 반도 일대는 우리 민족의 주 활동무대였기에 수많은 지명이 우리말 형태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데 중국 북방이나 산동 일대가 아니라, 거의 만 리 먼 곳의 지명이 우리말이라는 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박달이란 어휘는 우랄 알타이 어, 다시 말해 몽고어나 일본어, 위굴어, 에벤키어, 만주어 등등 우리말과 친척에 해당되는 어휘가 아니라, 정확하게 우리말이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이 그곳에 살면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원래 지명이란 한 번 붙여지면 좀처럼 바뀌지가 않는 법이다. 수 천 년이 지나도 대부분의 경우 그대로 이어져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중에 한자식 지명이 붙긴 했지만 여전히 그 심층에는 우리말이 그대로 남아있다. 언어를 연구하는 필자는 평소 시간이 남아서 한가하면 국내 지명의 원 우리말 명칭을 복원해내는 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외딴 곳에서 우리 선조들이 붙인 산 이름인 박달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여간 감흥이 깊은 것이 아닌 것이다. 천산, 정확하게는 박달에서 동북으로 500 Km만 가면 바로 알타이 산맥이다.
그간 우리들은 우리 민족이 막연하게나마 북방의 알타이와 바이칼 호-사실 바이칼도 우리말이지만-에서 출발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르무치는 알타이 산맥에서 불과 수 백 킬로미터 남쪽이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터전은 지금의 우르무치에서 북쪽의 중가르 분지, 그리고 알타이 산맥, 바이칼 호, 동쪽으로는 만주에서 중국 북부와 산동반도, 한반도, 일본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넓은 영역에 걸쳐 살았었거나 이동했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셈이다.
필자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지도책을 펼쳐놓고 우르무치 서쪽의 지명에 대해 살펴봤지만 별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천산의 ‘박달’봉을 한국말이 자리한 서쪽 한계점으로 잡기로 했다. 한국말의 위치적 한계란 바로 우리 민족 활동의 한계선인 것이다.
지금 그곳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라 부르고 있다.
사실 신강(新彊)이란 말은 좋은 뜻이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신강은 새로 개척한 강토라는 말이겠으나, 그곳에 살던 위구르인들에게는 최근에 정복당했다는 뜻, 다시 말해 신강(新彊)당했다는 것이니 어찌 속이 편할 수 있으랴! 옛날 바다 건너온 미국인들이 인디언의 땅을 앗으면서 뉴 프런티어라고 칭한 것이나 진배없지 않은가.
아무튼 이번의 우르무치‘박달’봉의 발견은 필자가 알기로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우리민족 발상지에 대한 전설과도 같은 얘기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발견인 셈이다. 언어학은 역사적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강력한 접근 도구이기에 필자는 늘 고(古)언어에 대한 연구방법을 ‘언어고고학’이라 스스로 부르고 있다.
주제와 관계없는 얘기 하나 더 붙이고 끝내고자 한다. 바로 청계천 복원에 관한 것이다.
물의 흐름을 막는 것은 토(土)이니 을목(乙木)은 토(土)를 눌러서 물을 흐르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을목의 날을 보아야 한다.
어제 6월 1일 청계천에 처음 물이 흘렀는데, 을묘(乙卯)일 즉 을목의 날이었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03년 계미(癸未)년 기미(己未)월 을해(乙亥)일에 착공되었다.
을목(乙木)은 기토(己土)를 누르니 어제 물이 흐른 것은 신사(辛巳)월이라 공사가 한창 진행되어 시험 삼아 물이 흐른다는 뜻이고 착공일인 2003년 기미(己未)월은 물을 막고 있던 땅의 기운을 을해일의 을목이 극복한다는 의미였다.
오는 10월 1일이 준공일로 되어있는데 이는 을유(乙酉)월 무오(戊午)일이다. 1일로 통일하기 위해 잡은 것이겠지만, 정확하게는 그 다음 날인 기미(己未)일이 을목의 극(剋)을 받으니 통행이 시작되는 날이 될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의미심장한 사업이다. 600년 된 수도 서울에 있어 청계(淸溪), 문자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른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맑은 물이 흐른다는 것은 서울의 지기(地氣)가 맑아진다는 것이니 이로부터 우리나라는 다시 맑은 기운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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