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간(干)과 지(支)를 '결여(혹은 여지)와 잉여(혹은 중첩)을 남겨둔 표현'이라고 봅니다. '결여(혹은 여지)'와 잉여(혹은 중첩)'가 있다는 건 스스로 완결될 수 없고 외부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간지(干支)는 결여와 잉여를 해소해야만 스스로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즉, 이데아가 있다는 말인데요. 저는 그 이데아를 '천인지(天人地)가 일이관지(一以貫之)된 모습' 즉 '왕(王)'이라고 봅니다.
이에 따르면, 干이란 地가 결여된 상황, 또는 地가 채워질 여지를 남겨둔 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십간은 하늘과 사람이 교류하면서, 결여된 땅으로 향한 10가지 개성 있는 안테나라고나 할까요.
干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땅과 사람이 교류하면서 하늘로 향해 뻗은 안테나는 당연히 土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干土'라 하지않고, '干支'라고 합니다.
요컨대, 支란 天이 결여된 상황, 또는 天이 채워질 여지를 남겨둔 상이 되는 동시에, 하나로는 모자라'거듭하고 있는(又) 잉여' 혹은 '중첩된(又) 더 큰 하나'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십이지는 땅의 거듭된 기운과 사람이 조화를 이뤄, 하늘로 향해진 12가지 독특한 안테나라고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간지가 합쳐지면 60갑자라는 기둥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天人地가 一以貫之된 60개의 王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천간은 10개고 지지는 12개이므로 천간과 지지가 만나는 경우의 수는 당연히 120개가 되야 마땅합니다. 이를 60갑자와 대비해서 굳이 이름 짓자면 '120갑자'가 될 텐데요. 바로 이 120갑자를 이용한 것 중 하나가 월지와 일간을 함께 생각하는 겁니다. '午월의 甲木', '酉월의 己土', '寅월의 丁火', '丑월의 庚金'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중 '오월의 갑목', '유월의 기토'는 60갑자의 조합에서도 가능한 것이지만, '인월의 정화', '축월의 경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곧 120갑자에서나 가능한 조합이란 말이죠. 자연에는 존재하지만 60갑자로는 포섭할 수 없는 조합이기에, 이를 바라보는 인간들에게는 어색함, 불안함, 짜증남, 공포스러움 등의 감정이 나타나게 됩니다. 왠지 없어졌으면 하는 이러한 감정들 -오욕칠정이라고도 하지요- 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 절실한 시점이 됩니다. 이를 '격(格)'이라고 합니다.
격은 '각각의(各) 나무(木)'입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범주로는 포섭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오욕칠정이 드러나는데, 이를 거두어 내고자 하는 노력은 '자연의 낱낱에 모두 생명이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고 겸허해지는 수준이 되는 거겠죠. 그 각각에는 '나름대로의 이치와 그에 대응하는 세계'가 있었고, 그 있음을 이제서야 내가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그 순간은 동시에 그 낱낱의 하나인 나 역시 '격'을 갖추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格이란 단어가 반드시 이런 뜻으로만 사용되지는 않습니다만, 10간 12지의 기운을 이용한 명리학(사주추명학)에서는 60갑자에서의 불안 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120갑자의 수준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봉합이 있기는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바느질로 기운 흔적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하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天衣无縫!)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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