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23일 대구를 찾았다. 대구 동을 재선거에 출마한 유승민 후보를 격려하기 위해서다. 이 전 총재 본인과 측근 모두 '개인적 격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최근 들어 정계복귀론이 불거질 만큼 이 전 총재의 보폭이 넓어져 이번 대구행이 그저 '개인 일정'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100명 '지지자' 동대구역에서 환영식**
이날 오전 10시께 고속철로 동대구역에 내린 이 전 총재는 자신을 맞이하는 지지자 100여 명의 환호성에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개인 팬클럽인 '창(昌)사랑'과 보수시민단체 회원들로 이뤄진 환영단은 이 전 총재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을 연호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조용히 왔다 가겠다"는 이 전 총재 측의 설명과는 무관하게, 대구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이 전 총재의 방문은 개인 일정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열흘 전부터 언론을 통해 계획이 공개된 만큼, 시민들 역시 이 전 총재의 대구 방문을 알고 있었다.
이 전 총재가 미사를 드린 지묘성당의 한 교인은 "이회창 씨가 온다기에 오후에 봐도 될 미사를 오전으로 당겨서 왔다"며 "새로 지은 성당에 큰 손님이 오셔서 기쁘다"고 반색했다.
골목길에서 이 전 총재를 '구경'하던 한 주민도 "이회창씨가 복귀를 한다 안 한다 말이 많던데 이 참에 확실하게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며 "DJ도 세 번만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회창씨가 못할 게 어디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당에선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오셨다" **
이 전 총재 측은 이렇게 첫 방문지를 유 후보의 선거사무소가 아닌 대구 동을 지역 내 조그만 성당으로 정한 것과 관련 "성당 관계자가 이 전 총재의 오랜 지인이기 때문"이라고 인연을 강조했지만 대구행에 따라붙는 정치적 해석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미사 시작시간 15분 전에 성당에 도착한 이 전 총재는 기다리고 있던 유 후보와는 가벼운 수인사만 나누고 마당까지 마중나온 최환욱 주임신부와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에 앞서 성당 관계자들과 티타임을 가진 이 전 총재는 자리를 함께한 안택수, 서상기, 이한구 의원 등을 하나하나 직접 소개해 총재시절 면모를 설핏 보이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건강이 좋아 보인다"는 인사에는 "겉으로만 그렇습니다"라며 낮게 웃었지만, "연세도 많이 들어 보이지 않고…"란 인사가 뒤따르자 "원래 얼마 안 먹었습니다"라고 응수해 참석자들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최 신부가 "작은 동네에 오늘보다 더 많은 국회의원이 올 일은 또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이 전 총재는 곁에 앉은 안택수 대구시당 위원장과 서상기 의원을 돌아보여 "앞으로도 잘 둘러보고 그러세요"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제일 앞 자리에서 미사를 본 이 전 총재는 미사 도중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오셨다"란 소개를 받고 뒤를 돌아 교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만한 후보감 없다" 유 후보 지원사격*
미사 후 유 후보의 선거 사무소에 들른 이 전 총재는 사무소 앞을 메운 지지자들의 환영에 다시 한번 환한 웃음을 보였다.
도착한 지 20분이 지나서야 사무소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 전 총재는 취재진들을 향해 "유 후보에게 좋은 성과 있도록 아무쪼록 성심 성의껏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전 총재는 "유 후보는 개인 차원에서 항상 아끼는 사람"이라며 "지난 세월 내 곁에서 애를 많이 써줬다"고 유 후보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 전 총재는 "미남이고 정말 활동적이니 이만한 후보감이 없다"며 유 후보를 홍보하는 내내 옆자리 유 후보의 무릎에 손을 얹고 더없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유 후보는 더 할 말 없는 제일 좋은 상품 아니냐"며 유 후보 지원사격에 적극적인 이 전 총재였지만, 이마저도 "말 길게 하면 정계복귀라고 하니깐…"이라며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강정구 교수 사건 이후 보수원로들의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것과 관련한 질문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활동이 아니니 이해해 달라"고 입을 닫았다.
유 후보 역시 10여분 간의 짧은 만남 내내 엷은 미소만 지을 뿐 이 전 총재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유 후보는 이 전 총재가 떠난 후에야 비로서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힘이 난다"고 입을 뗐지만, 이 전 총재 방문의 효과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당초 유 후보와의 점심식사를 약속했던 이 전 총재는 정치적 해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선지 이마저 취소했고 점심식사 후 동화사 방문을 마지막으로 오후 4시께 대구를 떴다.
***'昌 효과' 얼마나?**
유 후보 캠프에서는 이 전 총재의 방문이 백중세를 보이는 선거 판세에 마지막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차례 대선 과정에서 이 전 총재를 가장 열렬히 지지한 지역이 대구이니 만큼 박근혜 대표의 '박풍 (朴風)'을 넘어서는 또다른 위력을 기대할 만도 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당 고위 당직자는 "대구는 반(反)DJ 정서가 유독 강하고 현 정권에 대한 불신도 강하다"며 "이 전 총재의 방문은 지역현안 때문에 흩어졌던 표심을 다시 한나라당으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높은 기대감을 표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 쪽에서는 '창(昌) 효과'에 과히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후보는 "이회창씨가 왔다 간다는 소릴 듣긴 했다"며 "스스로 개인 일정이라고 했으니 별 신경 안 쓴다"고 짐짓 무심해 했고, 이 후보 캠프 관계자 역시 "공공기관 유치 문제로 달궈진 선거판에 누가 오든 무슨 바람이 불겠냐"며 "'박풍(朴風)'이든 '창(昌) 효과'든 약효가 다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절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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