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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30년 살아도 이런 선거 처음 봅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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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구서 30년 살아도 이런 선거 처음 봅니데이"

[대구동을 재선거] "지역개발" vs "盧정권 심판"

대구는 철옹성이었다. 전국에 '노풍(盧風)'이 몰아쳐도 '탄핵풍'이 거세도 대구는 미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에게 80%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냈고, 2004년 총선에선 지역구 12곳을 모두 한나라당에 안겼다.

이처럼 한나라당엔 최후의 보루였고 열린우리당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였던 대구가 10.26 재선거를 앞두고 요동치고 있다.

*** 표심 흔든 이강철 후보의 공약 "공공기관 동구 유치" **

"30년 동안 대구에서 이런 선거는 처음 봅니데이…"

22일 대구동을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 선거사무소 관계자는 판세를 묻는 기자 앞에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겨도 오차범위 내에서 이기는 힘든 승리가 될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이 뒤따랐다. 이미 대구는 '한나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예전의 대구가 아니었다.

견고한 대구 표심을 가른 것은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의 '공공기관 동구 유치' 공약이었다. 공항이 인접해 전투기 소음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팔공산 자락 아래 논밭이 태반인 이 지역에 '공공기관'은 지역발전을 기대할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에 어느 후보나 공공기관 유치를 공약하지만, 주도권이 처음 공약을 내건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 손에 있다는 것은 한나라당 진영에서도 인정하고 들어가는 부분이다.

적어도 '공공기관 유치'에 대해서만은 한나라당이 수세에 있다는 사실은 유 후보와 박근혜 대표가 함께한 이날 거리유세에서도 입증됐다. 박 대표는 마이크를 잡은 동안에는 내내 "열린우리당 후보가 마치 내가 공공기관을 달성군에 유치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데 나는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이 후보 측 유세논리를 반박하는 데에 몰두했다.

박 대표는 "공공기관 이전 공약은 유 후보의 공약이자 한나라당의 약속이니 나와 대구 지역 의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미 유권자들의 머릿속에는 '이강철=공공기관 유치'란 공식이 각인된 듯 했다.

두 후보의 캠프가 있는 방촌시장 초입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40대 중반 약사는 "저래 한다고 방송을 해싸니 되면 뭐라도 안 하겠습니꺼"라며 이 후보 캠프 사무실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가리켰다. 과연 이 후보의 플래카드에는 당도 후보얼굴도 없는 가운데 '1번 이강철, 공공기관 동구 유치'란 공약만 가득 차 있었다.

이 후보 역시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발전 욕구가 강한 점"을 자신의 선전 포인트로 꼽았다.

=============== <사진 1>

***견고한 반여(反與) 정서에 호소, 유승민 후보의 '정권심판론'**

"대구에 금칠을 해준다 캐도 대구 사람들은 열린우리당 안 뽑습니다."

50대 택시기사는 '공공기관 유치로 한나라당 지지세가 약해질 수도 있다'는 가정에 코웃음부터 쳤다. "손님들이 라디오에서 '노'자만 나와도 욕부터 시작하는데 대통령캉 친하다는 그 사람 찍겠습니까"하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이강철 필패(必敗)론'의 근거였다.

실제로 대구의 강한 반노(反盧), 반여(反與) 정서는 오랜 불황으로 인해 더 강화됐고, 최근 불거진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현 정권에 대한 대구의 불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아파트가 밀집한 동호동에 사는 한 대학 교수는 "나는 노 대통령에겐 공도 있다고 인정하는 편이지만 이번에 강정구 같은 사람을 감싸는 천정배 법무장관을 보면서 위험한 정권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주변에서도 이 정부가 너무 세상을 단숨에 뒤집으려고 하는 것 같아 불안하단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부인 역시 "한나라당 일색으로는 지역발전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대구에서마저 열린우리당이 뽑히면 이번 강정구 사건에 대해서도 정부 편 들어주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한나라당을 찍어야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이 같은 민심을 파고들어 '정권심판론'을 가장 주요한 선거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 후보는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이 정권은 강정구 한 사람만을 위해 4000만 국민을 배신한 정권"이라며 "내가 국회에 들어가 강정구 처벌하고 천정배 해임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 <사진 2>

이 후보 역시 "강정구 교수 사건만 아니었으면 계속 치고나갔을 텐데 그 사건으로 상승세가 한 풀 꺾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당 프리미엄을 기대하기는 커녕 여당임을 알려서 좋을 게 없는 이 후보는 열린우리당 상징색인 노란색도 쓰지 않고, 중앙당에서 내려오는 지원도 일절 마다했다.

***'염치 불구하고' 지역 닦은 이강철 후보**

투표율이 저조한 재선거 판세에선 각 후보 진영의 '조직표'를 무시할 수 없다. "대구에선 한나라당이 여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조직이 강한 편이지만, 대구에서만 여섯 번째 출마한 이 후보의 점조직도 무시할 수 없다.

청와대 시민수석 시절부터 '염치 불구하고' 지역을 닦았던 이 후보는 사전선거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자주 대구를 찾아 '지역발전의 적임자'임을 자처해 왔다.

그에 반해 유 후보는 후보등록 직전에서야 공천이 결정 나는 바람에 정작 대구에 내려와 대민(對民) 접촉을 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 정책가로, 지략가로 중앙정치에서는 이름이 난 유 후보지만 '손 한번 잡고 안 잡고가 좌우한다'는 지역 인지도는 처질 수밖에 없었다.

안심동 근린공원에서 유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던 40대 회사원은 "사람은 참 똑똑한 사람이라 카든데, 낯이 익어야지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대구에서 유수호(유 후보의 부친, 13, 14대 국회의원)씨는 유명해도 유승민은 아무도 모릅니더"라며 유 후보의 '인지도'를 마이너스 요인으로 꼽았다.

함께 유세를 지켜보던 50대 주부도 "경고(경북고) 나왔다 캐도 배지 달면 또 서울 사람 될낀데…"라며 유 후보에게 큰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는 '표심'을 직접적으로 묻자 "선거 할지 말지도 잘 모른다"고 손사레를 치면서도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좀 덜 똑똑해도 이강철이가 안 낫겠나"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 같은 반응에 유 후보 캠프에서도 "공천이 한 달 전에만 됐어도 더블 스코어로 이기고 있었을 것"이라며 뒤늦게 발을 굴렸다.

================<사진3>

***식을 줄 모르는 '박풍(朴風)'과 총출동 지원사격이 '유승민의 힘' **

유 후보의 덜 알려진 얼굴을 상쇄해주는 것은 유 후보가 입고 있는 '파란 잠바'. 한나라당 고유색이 돼 버린 파란색 잠바를 입으면 "일단 친절하고 본다"는 게 뿌리 깊은 친(親)한나라당 정서에 대한 유 후보 측 설명이었다.

지원 유세를 다녀온 한 의원이 "노인정, 경로당만 다니면 가뿐하게 이길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노장년층은 특히 '무조건 한나라당' 정서가 강하다.

지묘동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노인들은 "대구에서 머리 하얀 사람들은 다 한나라당 찍는다"고 호언했다. 그 중 70대 한 노인은 "안 그래도 아들이 여당의원 뽑아야 집값도 오르고 어쩌고 하기에, 나라 망친 대통령 친구니 대구도 망쳐 놓을 거 아니냐고 호통을 쳐 주고 나왔다"며 "대구에서 열린우리당 의원을 만들어 주는 자존심 상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바닥정서에 열린우리당 중앙당에서조차 "대구는 워낙 한나라당 정서가 강해서 다른당이 당선되려면 여론조사에서 30%는 앞서가야 한다"며 고개를 저을 정도다.

박근혜 대표가 몰고오는 '바람(朴風)'도 만만찮다. 22일 저녁 유세에서는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박 대표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민들이 하나둘씩 유세차 앞에 모이더니 어느덧 300여 명이 모여 식을 줄 모르는 '박풍'을 입증했다.

카메라를 안 갖고 왔다고 아쉬워 하는 여대생과 사인 받겠다고 수첩을 들고 나온 주부 등 여성 유권자들이 주를 이룬 군중 속에서는 "육영수 여사를 빼다 박았다"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가게 앞에서 유세를 지켜보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대구 출신 대통령이 셋인데 대구 경제 챙긴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뿐"이라며 "박근혜씨는 그 딸인 것만으로도 대접 받아야 한다"고 '박풍'을 정당화 했다.

이틀이 멀다하고 대구를 찾는 박 대표의 '박풍'에 23일에는 이회창 전 총재까지 대구행을 자청해 흔들리는 표심을 다잡았다. 24일부터는 대구경북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이 총출동해 지역 곳곳을 훑을 계획도 세워 '나 홀로 유세'를 벌이는 이 후보와는 대조를 이뤘다.

<박스 시작>

***판세는 안개 속, 모두가 '절레절레' **

선거를 사흘 앞두고 양 후보측 모두 '백중우세'를 점쳤다. 서로 한 발씩 앞서 있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서로 간단치 않은 상대임을 인정한 셈이다.

그간 꾸준히 추격 피치를 올려온 이 후보가 막판에 유 후보를 역전할 수 있느냐, 한나라당이 총출동하다시피 한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유 후보가 우세에 쐐기를 박느냐의 싸움 양상에 대해 주민들에게 분위기를 물어봐도 "내사 뭐 압니꺼"하며 고개를 흔들기 일쑤다.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단할 수 없는 접전이지만, 초반에 화력(火力)을 소진한 양 진영 모두 판세를 뒤흔들 '히든카드'는 없어 보인다.

'지역 발전'과 '지역 자존심' 중 좀 더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줄 후보를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유권자의 몫으로 남아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박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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