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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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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무영의 MyOST]영화 〈말콤 엑스〉의 OST

"진정한 영적 완성을 향한 여행은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 엄청난 용기와 진취적 기상, 그리고 독립심을 필요로 한다. 현명한 예언자들의 말씀이 도움이 되겠지만, 이 여행은 홀로 이룰 수밖에 없다. 그 어느 스승도 당신을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없다." - 스파이크 리

흑인감독 스파이크 리는 지난 1992년 카메라 렌즈에 지난 세기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인 말콤 엑스(Malcolm X)의 인생여정을 담아냈다. 미국 무슬림의 지도자이며 설교자이고 사상가였던 말콤 엑스가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했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지난 세기 미국 사회의 가장 큰 격동기인 1960년대 말콤 엑스는 또 다른 흑인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함께 흑인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몸을 불살랐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바라본 두 사람의 이미지는 너무도 달랐다. 킹이 순교자였다면, 말콤은 혁명가였다. 킹이 자신이 꿈꾸는 흑백 소년소녀가 손에 손을 잡고 살아가는 세상을 부르짖을 때 말콤 엑스는 수백 년간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회개할 줄 모르는 미국의 백인사회를 악마로 칭했다. 사람들은 킹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반대로 사람들은 말콤 엑스를 두려워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말콤 엑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소수자 중 소수자였다. 그는 미국 땅에 팔려 온, 자신의 이름도 잃어버린 노예의 후손이었고, 기독교 사회인 미국에서 무슬림의 사상을 전한 설교자였다. 그가 '리틀'(Little)이란 노예주의 성을 버리고 '무명씨'란 의미의 '엑스'를 성으로 택한 이유는 이름도 없는 짐승이 돼 북미 대륙에 팔려왔던 자기 조상의 한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백인들의 공적이 돼버린 말콤 엑스는 결코 흑인사회에서도 사랑 받지 못했다. 스승인 엘리자 모하메드의 세속적인 모습에 실망한 그는 독자적인 노선을 모색하게 되고 결국 1965년 어느 날 연설 도중에 암살된다. 무슬림을 통해 흑인들의 세상을 꿈꾸었던 말콤 엑스와 모든 인종이 하나가 되길 소망했던 마틴 루터 킹. 각기 여행의 목적지가 달랐던 두 사람은 모두 순교자가 되어 흑인노예들에게 저주의 땅이었던 북미대륙에 고결한 피를 뿌렸다.

영화 〈말콤 엑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말콤 엑스가 꿈꾸었던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며, 노래들이다. 노예 시절부터 항상 백인들보다 한 발짝 앞섰던 흑인음악의 역사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이만한 품격의 영화음악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 스파이크 리와 퀸시 존스가 함께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말콤 엑스가 활동했던 시절의 흑인음악을 대거 수록하고 있다. 지난 세기 초반의 블루스와 라이오넬 햄튼과 존 콜트레인의 위대한 연주를 만날 수 있는 'Flying Home'과 'Alabama' 등의 재즈 넘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빅 조 터너의 'Roll 'Em Pete'와 루이스 조던의 'Beans and Cornbread'는 미국 로큰롤의 뿌리인 블루스의 진수를 들려준다. 중창단 잉크 스팟의 감미로운 팝 넘버 'My Prayer'와 빌리 홀리데이의 'Big Stuff'도 필청을 요하는 트랙들이다. 총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주니어 워커 & 더 올스타즈의 'Shotgun'은 매우 경쾌한 곡으로 영화 속에서는 말콤 엑스가 암살되기 전 호텔의 볼룸 댄스 장면에 등장한다.

사운드트랙의 포문을 여는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Revolution'과 아레사 프랭클린의 'Someday We'll All Be Free'는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곡들이다. 래퍼 스피치는 'Revolution'의 앞부분에서 이 곡을 자유에 대한 갈망과 흑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선조들에서 바친다고 선포한다.

수록곡 중 말콤 엑스의 죽음을 암시하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Azure'와 레이 찰스의 'That Lucky Old Son Just Rolls Around the Heaven'은 실로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구슬픈 노래이다. 얼핏 듣기에 가스펠풍의 장송곡과도 같은 'Azure'를 통해 피츠제럴드는 절제된 보컬로 흑인의 슬픔뿐만 아니라 분노를 삼키며 압제에 대항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다른 여러 가수들도 부른 바 있는 'That Lucky Old Son Just Rolls Around the Heaven'은 비록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은 아니지만, 이 세상을 떠난 말콤 엑스가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길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듯 하다.

"난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푼돈을 벌기 위해 악마처럼 일하네. 하지만 저 행운아는 하루 종일 하늘나라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뒹구네."

스파이크 리의 말에 따르면 말콤 엑스는 생전에 이 사운드트랙에 음악을 선사한 여러 아티스트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과연 그는 오늘 저 세상 어딘가에서 하루 종일 빈둥거리거나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을까?

"영화 〈말콤 엑스〉의 사운드트랙은 노예의 후손으로서 미국땅에서 살고, 숨쉬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간접경험이 될 것이다." 스파이크 리의 말이다.

비록 흑인노예의 후손은 아니지만 미국땅에서 흑인으로서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말콤 엑스가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했던 여행의 목적지는 어디였는지, 〈말콤 엑스〉의 영화와 음악을 통해 경험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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