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감독 웨인 왕의 영화 〈스모크〉는 삶에 관한 영화다. 하비 카이텔, 윌리엄 허트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기꺼이 적은 출연료를 받으며 열연한 이 영화는, 뉴욕 시 브루클린의 한 담배 가게를 배경으로 다양한 뉴요커들의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한 훌륭한 소품이다.
〈뜨거운 차 한 잔〉, 〈조이 럭 클럽〉 등의 영화를 통해 중국 이민사회의 실상을 섬세하게 보여준 웨인 왕은 〈스모크〉로 199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는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어냈다.
브루클린 3번가 모퉁이에서 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오기 렌과 그의 단골손님으로 아픈 추억을 지닌 채 살아가는 작가 폴 벤자민, 허풍쟁이 흑인 소년 라시드, 음주운전으로 아내를 죽였다고 자책하며 살아가는 라시드의 아버지 사일러스, 애꾸눈이 돼 나타난 오기의 옛 애인 루비의 이야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스모크〉는 훈훈한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의 주요 부분을 채우는 다양한 음악들 가운데 역시 최고의 감동은 탐 웨이츠(Tom Waits)의 음악들이다. 오기와 폴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술집 장면에 흐르는 'Downtown Train'은 웨이츠의 85년 앨범 〈Rain Dogs〉에도 실렸던 곡으로 매일 지하철에서 짝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는 소박한 사내의 마음을 담고 있다. 웨이츠의 또 다른 곡인 'Innocent When You Dream'은 돌이킬 수 없는 아픈 과거를 회상하 는 발라드로 왕이 촬영 전부터 사용키로 결정했다고 한다. 웨이츠의 1987년 앨범 〈Frank's Wild Years〉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던 이 곡은 카이텔이 이름도 모르는 눈 먼 흑인 할머니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장면에 등장, 영화를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종각 의 박쥐들. 땅위로 내리는 이슬. 그런데 우리를 위로하던 따스한 팔들은 어디로 갔나? 아직도 들판은 부드러운 녹색인데, 난 여기서 추억만을 훔치고 있네. 꿈이 있었던 순수한 시절을 그리워하며..."
독한 담배 한 갑과 싸구려 위스키를 연상케 하는 웨이츠의 음악은 향수로 가득 찬 스티븐 포스터의 멜로디와 비주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방황하는 인생 낙오자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자신의 음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웨이츠의 인생 대부분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달리는 영업용 택시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그는 1970년대 초반 LA에 정착할 때까지 아무 목적 없이 캘리포니아 해변을 떠돌던 부랑아였다. 집도 없이, 희망도 없이, 싸구려 호텔과 바닷가 벤치를 전전하던 그에게 음악은 안식처요, 구원이었다. 스스로 깨우친 피아노 연주와 함께 그가 내뱉는 거친 목소리는 세파에 시달리며 표류하던 당시 캘리포니아의 히피들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이런 고난을 딛고 일어선 웨이츠는 지금까지 스물다섯 장 이상의 앨범을 내놓았다. 극작가인 캐서린 브래넌의 남편이기도 한 웨이츠는 지금까지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배우, 작가, 연극 연출가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제 꽤 성공을 거둔 그이지만, 아직도 그의 음악은 인생고에 지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변치 않는 그의 음악적 성향에 대해 어느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탐 웨이츠의 음악에는 삶의 고통을 아는 이들의 철학이 담겨있다. 만약 지금까지 당신의 삶이 순탄대로였다면 당신은 결코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담배 연기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영화 속에 흐르는 웨이츠의 음악을 들으며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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