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9년 파리. 한 때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한 위대한 재즈 뮤지션이 블루노트를 찾는다. 물론 연주를 위해서다. 그와 이름은 데얼 터너(덱스터 고든), 고향을 등진 채 유럽을 떠도는 흑인 테너 색소폰 연주자다. 천사보다도 더 착한 이 사람의 유일한 약점은 술과 마약. 그와 함께 연주하는 다른 멤버들은 혹시나 그가 술을 마시거나 코카인에 취해 하루라도 클럽에 나타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한 파리지앤 남자가 비를 맞으며 클럽 밖으로 흘러나오는 위 대한 색소폰 연주를 듣고 감동한다. 돈이 없어서 입장권을 살 수 없는 이 남자는 부인에게 버림받은 무명의 화가 프란시스(프랑수아 클뤼제), 극장의 포스터를 그리며 딸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정직한 예술가다.
정직하다는 것, 그리고 열정적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점이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우상인, 하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이 색소폰연주자가 낯선 땅에 서 무명의 흑인 노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서글프다. 결국 그는 자신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터너와 함께 살기 위해, 전 부인에게 돈을 빌려 좀 더 큰 아파트를 얻는다.
"친구, 그대는 나를 왕처럼 취급하는군."
터너는 자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아끼는 이 젊은 프랑스 친구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는 터너를 가혹하게 대하는 경찰들에게 프란시스는 "이 분이 누군지 알아? 이 분은 위대한 테너 색소폰연주자야. 이 분이 바로 데얼 터너씨라구"라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자신의 영웅이 지쳐 쓰러진 모습을 보며 울먹이는 프란시스. 터너는 다음 날 일찍 일어 나 그의 침대로 아침식사를 가져온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위해 울지 마."
프란시스의 도움으로 술과 마약을 멀리하며 작곡과 연주에 몰두하던 터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그를 바래다 준 프란시스가 파리로 돌아온 지 얼마 후 터너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프랑스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의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은 지금까지 재즈를 다룬 영화 중에 단연코 최고의 작품이다. "역시 재즈는 미국인이 만들어야지"라는 자부심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버드〉를 만들었고 칸영화제까지 석권했지만, 〈라운드 미드나잇〉에 비해선 경량급으로만 느껴진다.
타베르니에는 이 영화를 레스터 영과 버드 파웰 등 밥 시절의 재즈 뮤지션들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었다.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며 연주하고 싶었던 수많은 흑인 뮤지션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고국을 등진 채 유럽을 떠돌게 만들었을까? 그들이 흑인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이 재즈를 배척했기 때문일까?
위대하고 순수하지만, 상처투성이인 재즈의 전사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바로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의 원동력이다. 음악의 망명지에서 술과 마약의 유혹과 싸우며 살았던 그들의 삶은 아픈 흑인 노예들의 역사이며, 재즈라는 새로운 형식의 예 술을 창조, 진화시킨 예술가들의 피와 땀의 흔적이다.
타베르니에는 〈라운드 미드나잇〉의 음악을 위해 허비 행콕에게 도움을 청했다. 각본을 읽고 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행콕은 흔쾌히 작업에 동참키로 했고, 곧바로 프레디 허버드(트럼펫)와 웨인 쇼터(테너 색소폰), 론 카터(베이스), 존 맥나플린(기타), 바비 허처슨(비브라폰)과 빌리 히긴스(드럼) 등으로 구성된 슈퍼밴드가 탄생했다. 주인공 터너 역을 맡은 테너 색소폰연주자 덱스터 고든 역시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했다.
총 11 개의 트랙 중 5 트랙의 리코딩에 참여한 고든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비평 면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헤로인 중독 경험을 토대로 고든이 창조한 터너의 캐릭터는 천사보다 도 더 아름답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낮고 굵은 그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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