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태용 | 출연 윤도현, 박태희, 김진원, 허준 | 제작/배급 스폰지 |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07분 | 2005년
2004년 12월, 기자가 윤도현을 만났을 때 그는 두툼한 방한복 차림에 빵 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나타났다. 주변사람들이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 늘 '윤도현식'으로 얘기하는 로커라며 친근하게 말하는 건 그의 이런 격의 없음에 기인한다. 그 당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밝힌 그의 새해포부가 바로 유럽 순회공연이다. 그 자신도 무모한 도전이라며 머리를 흔들었지만 결국 공연은 별무리 없이 진행됐고, 그 결과물 중 하나인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가 김태용 감독의 디지털 카메라에 담겨졌다.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2층 버스를 타고 영국,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닌 윤도현 밴드(이하 윤밴)의 모습은 한국에서의 아우라가 철저히 배제된 것이었다. 한국에선 한번 공연에 1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지만 유럽관객에게 윤밴은 동양에서 온 새내기 록 밴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본조비와 알리스 쿠퍼의 손때가 묻은 2층 버스를 타고 약 20일간 길 위에서 새롭게 시작한 모습은 소박하고 소탈하게 보인다. 컵라면과 즉석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프닝 무대를 맡은 영국의 신인 록밴드 스테랑코와 교류하는 모습은 홍대거리를 배회하는 신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도전에 마음은 설레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처음 밴드를 꾸리고 무대에 올랐던 때처럼 10여명 남짓한 관객을 앞에 두고 영어로 개사한 히트곡과 신곡을 노래한다. 아담한 공연장은 그나마 유학생들의 환호로 채워졌지만 처음 접한 유럽무대는 말 그대로 '벽'이었다. 덕분에 데뷔 당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길 위에서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다. 그래서 'on the road, two'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이후 6년 만에 신작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은 이들의 투어에 목적지를 두지 않는다. 윤밴의 유럽투어는 길 위에 서있으나 종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묵묵히 멤버들의 동선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버스 안에서 통기타 리듬 하나에 노래를 만들고 호텔이 아닌 버스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한국최고의 로커가 치르는 제2의 홍역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물론 이러한 화면은 윤밴을 지지하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편치 않은 경험일 수 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더 블루스〉, 〈레이〉 등의 드라마를 기대한다면 〈온 더 로드, 투〉의 척박한 기록에는 별반 기복이 없다. 마지막 장면에 펼쳐진 런던 KOKO홀에서의 대규모 공연이 그때까지의 유럽투어와 어울리지 않는 방점을 찍고 있지만 카메라는 영화적 설정이 아닌 다큐멘터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던 〈온 더 로드, 투〉는 일반개봉을 앞두고 새로운 버전으로의 수정과 편집을 거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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