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서비스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왕의 남자〉가 개봉 2주 만에 3백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이대로라면 1월29일 설날 연휴 전까지 5백만 가까운 관객을 모을 것이다. 이건 시네마서비스 관계자의 얘기다. 영화가 안될 때는 모든 예측이 빗나가지만 잘될 때는 관객수 끝자리까지 맞추는 법이다. 시네마서비스 내에서는 〈왕의 남자〉 투자배급의 성공으로 이제 셔터 문을 내리자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한해 장사를 다했다는 것이다. 잘못해서 〈왕의 남자〉로 벌어들인 돈, 다 까먹기 전에 장사를 접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들을 하며 왁자거리는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하기사, 시네마서비스는 그런 경험이 있다. 〈실미도〉로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내리 까먹은 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표정관리, 아니 자기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영화판 흥망성쇠, 순식간에 벌어지는 법이니까.
많은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싸움의 기술〉이 준수한 성적을 냈다. 전국 55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아마도 주연을 맡은 백윤식의 티켓파워가 제 몫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또 다른 배급작품인 〈투사부일체〉를 19일로 예정하고 있어 〈싸움의 기술〉을 오래 가져가지는 않을 뜻을 내비치고 있다. 경쟁사인 쇼박스가 〈야수〉를 이번 주에 내놓고 있고 롯데시네마 역시 〈홀리데이〉를 같은 날짜인 19일에 극장에 풀 예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야수〉와 〈홀리데이〉의 대항마로 〈싸움의 기술〉보다는 〈투사부일체〉가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급 싸움의 측면에서 보면 맞는 얘기일 수 있다. 〈야수〉와 〈홀리데이〉 모두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다. 설날 연휴와 같은 대목 시즌에는 다소 경쾌하고 재밌는 코미디가 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러나 영화흥행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지난 주 〈왕의 남자〉와 박빙의 승부를 겨뤘던 〈나니아 연대기〉는 3위로 내려 앉았다. 전국 스크린 수는 거의 비슷하게 유지했으나 주말 3일간 서울에서 모은 관객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영화의 주 관객층인 어린이 청소년들이 일제히 방학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수가 떨어지리라곤 배급사인 월트 디즈니조차 쉽게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방학은 길다. 디즈니가 의지를 가지고 극장에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킹콩〉 〈작업의 정석〉 〈태풍〉은 모두 많이 떨어졌다. 〈태풍〉의 전국 관객수는 드디어 4백만을 넘겼다. 하지만 당초 예상대로 최종 스코어가 5백만을 넘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태풍〉이 결국 참패했다고들 한다. 제작비 규모 대비 기대치에 비해 훨씬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백만, 5백만 관객을 모은다는 건 쉬운 얘기가 아니다. 어찌 됐든 〈태풍〉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역사에 남을 것이다.
〈작업의 정석〉과 〈태풍〉의 배급을 둘러싸고 벌어진 쇼박스 대 CJ엔터테인먼트의 신경전은 아마도 올 한해 국내 영화계의 계속되는 논쟁으로 점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논쟁의 핵심은 CJ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CGV가 경쟁사의 작품 〈작업의 정석〉을 의도적으로 조기종영시켰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 영화의 제작사인 청어람이 전문변호사에게 공정거래 위반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객석점유율이 만만치 않았던 〈작업의 정석〉으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겠다. 그러나 CJ 혹은 CGV측으로서는 〈태풍〉이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영화인 만큼 개봉작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 자사 영화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쉽게 어느 한쪽 편을 들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딴에 자본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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