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한국영화는 이제 아시아권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해부터 충무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해외 우수인력 및 거대자본과의 합작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한국시장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한국영화의 행보는 어디까지 왔을까. 바쁜 발걸음을 따라가봤다.
지난 11월에 열린 아메리칸 필름마켓에 참여한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이제 한국은 영화 수출국으로 돌아섰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영화의 수출은 2003년과 2004년 각각 전년대비 107%와 88%(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총 670억원(아이엠픽처스 집계)의 수출총액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15%가 증가했다. 무협영화 〈무영검〉이 전세계에서 1000만 달러의 수출고를 올렸는가 하면 배용준의 〈외출〉은 일본에서만 600만 달러에 판매됐다.
하지만 수출총액의 상승곡선은 수출국가의 편중현상으로 연결됐다. 특히 일본으로의 수출점유율은 지난해에만 74%로 집계되며 수출총액 증가에 핵심으로 작용했다.
***수출총액 증가…북미시장은 여전히 약세**
반면 북미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올드보이〉가 상영됐다지만 이제까지 북미시장에서 와이드 릴리즈(500개 이상의 스크린 상영) 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영웅〉과 〈인연〉을 히트시킨 중국과 〈링〉, 〈주온〉 등 호러물이 강세인 일본, 〈옹박〉의 태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 것.
쇼이스트의 손민경 해외배급팀장은 "아직 한국영화 타이틀로 해외시장을 노크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중국, 일본 등과의 합작을 통해 한국을 벗어나 세계, 특히 미국과 유럽에 대항할 수 있는 대규모 작품제작이 가능하다"고 한국영화의 해외합작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이야기했다.
현재 한국과 중국, 미국이 공동 제작한 〈무극〉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쇼이스트는 중국에서의 흥행 성공으로 분위기가 고조된 상태. 이 작품은 총제작비 300억원 중 쇼이스트와 미국 문스톤엔터테인먼트가 10%를, 상하이 필름 등 중국제작사가 80%를 투자하며 미국과 일본에서의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충무로의 한 영화관계자는 이처럼 "각 투자국의 안정적인 배급과 개봉일정, 각국 스타들의 출연으로 인한 흥행보장"을 해외합작의 매력으로 꼽았다.
***해외합작을 통한 규모의 경제**
현재 이미 국내에서 개봉됐거나 촬영을 진행 중인 합작영화는 줄잡아 6편. 올해 기획이 진행 중인 작품을 포함하면 10여 편을 훌쩍 뛰어넘는다. 1월26일 국내개봉을 앞둔 〈무극〉은 거장 첸 카이거 감독과 장동건,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등 아시아 스타를 내세워 아시아권과 북미흥행을 노리고 있고, 안성기와 류덕화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묵공〉은 1월말 100회에 걸친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준비 중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묵가의 제자가 험난한 세월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묵공〉은 한국과 일본이 기획(한국 보람영화사, 일본 이세키 사토루)하고 중국과 대만, 홍콩 등 아시아 4개국이 공동 투자한 작품이다. 총제작비 160억원 중 40억 원을 한국에서 부담했다.
정우성, 전지현, 이성재 등 한국 배우와 〈무간도〉의 유위강 감독, 홍콩과 네덜란드 스탭의 참여, 100% 네덜란드 현지 로케이션으로 시선을 모은 〈데이지〉(아이필름 제작)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총제작비 100억 원을 투자하고 현재 한국과 홍콩, 태국, 일본 등 4개국에서 동시에 후반작업을 진행하며 내년 2월 아시아 전역에서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들 영화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면 지난해 개봉한 〈칠검〉과 〈무영검〉 등의 작품은 국내에서의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선전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보람 영화사의 이주익 대표가 기획, 제작, 프로듀싱을 병행하고 홍콩의 서극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칠검〉은 홍콩배우 여명과 양채니, 한국의 김소연이 출연하며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 제작비 180억 원 중 중국, 홍콩과 함께 33%를 투자한 보람 영화사는 국내 흥행부진에도 불구하고 중화권 및 전세계 흥행실적에 힘입어 이미 오래 전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총 제작비 65억 원을 들여 완성된 〈무영검〉(태원엔터테인먼트 제작) 또한 국내 흥행과 무관하게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작품. 미국 뉴라인시네마에서 제작비의 30%를 투자한 이 작품은 이미 1000만 달러의 수출고를 올리고 뉴라인시네마의 배급망을 통해 세계시장을 노리고 있다. 수입의 80%를 극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내수시장 구조에서 합작을 통한 해외배급과 흥행실적 배분으로 성공한 케이스.
보람영화사의 이주익 대표는 "우선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졌고 합작을 통한 투자와 시장이 넓어져 흥행의 위험요소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 것"으로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이대표는 2006년에만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비빔밥〉을 비롯 〈저지걸〉, 〈사막전사〉, 〈만추〉 등의 작품을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와 손잡고 현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 외에도 〈무영검〉을 제작한 태원엔터테인먼트는 홍콩스타 류덕화, 홍금보를 내세워 〈삼국지-용의 부활〉을 준비 중이다. 태원이 제작비 중 1000만 달러를 부담하고 나머지 제작비를 할리우드 제작사의 투자로 조달할 예정. 현재 할리우드 제작사 2, 3곳과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합작 또한 작품수준이 최대의 과제**
최근 들어 화두로 떠오른 한국영화의 해외합작투자는 지금까지 일부 해외 로케이션이나 부분투자방식에서 벗어나 좀더 적극적인 기획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충무로에 다국적 공동투자와 제작방식은 위험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기획을 시도할 수 있는 또 다른 돌파구인 셈.
쇼이스트의 손민경 해외배급팀장은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만 해도 시스템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정식배급이 쉽지 않다. 하지만 합작을 통해 중국 쪽 배급이 수월해졌다는 것이 또 하나의 강점"이라고 아시아권 합작의 매력을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우선 각국의 전혀 다른 시스템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과제. 각 국가 배우와 스탭들의 대우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또한 넘어야 할 산이다. 보람영화사의 이준익 대표는 "해외합작 또한 작품의 질이 가장 큰 과제"라며 다국적 영화인들의 한 배를 타는 데 있어 갖춰야 할 기본에 대해 강조했다.
"투자규모와 시장이 커진다고 해서 모두가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프로젝트 실현을 위해서 믿을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고 각 국가에서 관객에게 인정 받을 만큼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작품의 수준이 떨어지는 순간 무국적상태의 영화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순수 국내제작이나 해외합작 모두 작품이 좋아야 성공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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