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스위스 야코프 쾨비 쿤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오기 전부터 두 국가의 '영웅'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임한 뒤 한국 축구의 희망을 쏘아 올렸다. 전임자인 본프레레에 극도의 실망감을 표출했던 축구팬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승리행진에 박수를 보냈다. 그는 선수들의 투지를 적절하게 자극했고, 경쟁심리를 부추기며 '명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는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명 인사가 돼 버렸다.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축구 열기에 불이 붙기 시작하자 언론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일거수 일투족을 집중 조명했다.
쿤 감독에 대한 스위스 국민들의 관심도 만만치 않다. 12년만에 스위스를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 놓은 쿤 감독은 스위스 대표선수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지도자다. 스위스가 유럽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터키를 제압한 뒤 그가 출생한 취리히시 비디콘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이 생겼을 정도다. 쿤은 스위스 청소년팀 감독을 했던 탓인지 과감하게 스위스의 재능있는 '젊은 피'들을 수혈했다.
두 감독의 선수 시절은 판이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미드필더였지만 단 한차례도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적이 없었던 그저 그런 선수였다. 반면 쿤 감독은 선수 시절 전국구 스타였다. 그는 날카로운 패스 능력을 지닌 중원의 재간둥이였다. 스위스 언론은 그에게 "발에 꿀을 숨기고 있는 선수"라는 별명까지 붙여주기도 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신기의 용인술로 화제가 되고 있다. 토고와의 경기에서는 교체 투입된 안정환이 결승골을 터뜨렸고, 프랑스 전에서는 역시 교체 선수로 들어간 설기현의 크로스가 박지성의 동점골을 이끌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토고 전에서의 막판 공 돌리기와 프랑스 전에서의 극단적인 수비 위주 의 전술 사용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치밀한 전략이 맞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실적인 눈으로 경기를 봐야 한다. 토고가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프랑스에 비해 축구 약소국이다. 우리가 공격적으로 나간다고 해서 프랑스를 5-0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오산이다."
한편 쿤 감독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위스 축구팬들은 스위스가 1994년 월드컵에서도 너무 안정적인 경기만을 고집하다가 힘 한번 못써보고 스페인에게 패했던 사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쿤 감독도 결국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스위스는 전형적인 역습 위주의 팀이다. 중원 압박은 강하지만 오버 페이스를 하며 경기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대신 패스를 돌리면서 상대가 빈 틈을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스위스는 빈 공간을 찾게 되면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한 패스 연결로 상대 수비라인을 궤멸시킨다. 스위스와 쾨비 쿤 감독은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셈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사실상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에는 스위스 전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는 한국 지휘봉을 잡고 펼치는 마지막 경기로 기록될 수도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스위스 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 비해 준비기간도 부족했고, 원정경기의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던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는 것은 훌륭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쿤 감독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동 개최되는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대회까지 스위스 대표팀과 계약이 돼 있는 상태다. 스위스 기자들은 "젊은 선수들이 많은 스위스는 2~3년 뒤 더 강한 팀이 될 것이다. 독일 월드컵은 스위스에게는 리허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쿤 감독은 아드보카트 감독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다.
'신기의 용인술'과 함께 '카멜레온 전술'로 한국을 이끌고 있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화두가 '변화'라면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축구'를 하는 쿤 감독의 화두는 '안정'이다. 두 감독이 펼칠 지략대결이 더욱 흥미로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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