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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 이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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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 이달-(3)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9>

허균이 천천히 말을 놓았다.

"나 나름대로 큰스님을 만류할 요량으로 여러 사람에게 통기해 봤지만 그게 능사가 아닌 듯하네. 도리어 유정 스님이 왕명을 수행하고 무사히 귀국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방책을 찾는 게 더 낫지 않겠나. 내 맏형한테도 물어서 좋은 방책을 얻어 볼 것이네."

도원은 잠시 숙연해졌다.

"하하하! 시골서 오셔서 이제야 서울 눈을 뜨셨구만! 그래, 애일당에서는 어떤 글을 썼나?"

이달이 슬쩍 화제를 바꾸자 허균은 이번에 애일당에 있으면서 엮은 시집 얘기를 했다.

"제가 금강산을 둘러보고 쓴 시가 마흔여덟 편인데 그걸 '풍악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엮어 봤습니다. 지난번 서찰로 보내드린 시가 그 중에 한 편입니다. 기회가 되면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혹평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위대한 이름 아래 그 운명은 궁박한 것인가! 교산의 어릴 적 친구였다지? 이정이라는 화원이 그린 그 그림을 나도 본 적이 있지. 교산의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네."

허균은 금강산 장경봉 아래에 있는 장안사에 잠시 머물렀다. 장안사에는 어린 시절 벗인 이정이 열세 살 때 그린 탱화가 있었다. 허균은, 나이답지 않게 도도하고 웅장하기가 극에 달한 분위기와 일찍 죽음에 이른 정의 운명을 연계해 시를 지었다. 그 시를 보낸 건데, 이달은 그 중 한 구절을 외우고 그림까지 되새겨 보였다.

"모든 재인의 운명이 그런 듯해서 혼자 쓸쓸함을 달래느라 혼이 났습니다. 그래도 역시 글밖에는 마음을 채울 게 없어서 애일당에 들어가서는 내내 글에만 파묻혀 지냈습니다."

"위대한 이름 궁박한 운명...... 흐흐흐, 그래 애일당에서 '풍악기행'에만 매달리지는 않았을 테고?"

"그러잖아도 의논드릴 게 여러 가지입니다. 오래 전에 제 누이의 시편을 모아 시집을 내면서 서애 대감께 서문을 받는 영광을 누렸는데요, 애일당에서 지내면서 글 읽고 쓰는 틈틈이 제 중형의 문집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란 통에 잃어버린 걸 다 찾지 못해 한 권으로 묶어내기에는 아직 미흡하기는 한데 나중에 채워지면 이번에는 선생님이 꼭 서문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허균이 성장하면서 일찍이 그 집안 식구들은 허씨 5문장이라 불렸다.

아버지 허엽이 당상의 지위에 오른 바 있는 문장가였으며, 큰아들 성 또한 소문난 문장가였다. 허엽이 재취를 얻어 낳은 봉과 난설헌은 막내 허균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스승이요 혈육이었다.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에 이렇게 허균까지 해서 문장이 빼어난 허씨가 다섯이었다. 허균이 초시에 급제한 것은 17세, 문과에 급제한 것은 26세, 그 재주가 승한 것에 비해 도리어 급제가 늦었다는 세평이었다.

누이 허난설헌이 죽은 것은 허균 나이 21세 때였다. 허균은 이듬해 누이 허난설헌의 시를 엮어 류성룡의 서문을 받았다. 이 시집은 당대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도 두루 읽히는 명시집으로 평가되었는데, 나중에 허균이 중국 사신에게 보여주게 되고 이 중 여러 편이 명나라에서 엮은 시선집에 포함되면서 허난설헌은 일약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로 평가되기에 이른다. 허균의 성장에 영향이 컸던 또 한 사람의 혈육인 형 하곡 허봉은 당상 지위 벼슬까지 했지만 판서 이이를 탄핵한 말로 왕의 미움을 사서 여러 차례 귀양을 살았다. 그러다 조정 대신들이 모두 청원해 유배에서 풀려나긴 했지만 왕명으로 도성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지내다 허균 나이 스무 살 때 죽음을 맞았다.

허균은 봉의 죽음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면서 봉의 글을 모아 두었으나 그걸 왜란 때 거의 다 잃어 버렸다. 사명대사가 허봉에게 보낸 무수한 글도 그때 모두 사라졌다. 허균은 봉의 지인들에게 서신을 보내 겨우 수십편을 더 찾아 문집 한 권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허봉의 문집 서문 얘기가 나오자 이달의 언성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이 사람 교산, 아직도 그런 말을 하나? 조심하셔야지. 내가 자네 중형 문집에 서문을 써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걸 잘 알지 않는가. 실은 자네 중형의 문집이라면 유정 스님이 적격이지. 하나 만일 유정 스님이 서문을 쓴다 해도 조정과 유림의 온갖 선비들이 두고두고 말을 할 게 아닌가. 유학자 집안 대선비의 문집에 땡중이 글을 써 부쳤다고 두고두고 떠들어댈 거야. 만일 내가 서문을 쓰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야. 주자를 안다는 이 나라 중신들이 어떤 고리타분한 아집에 갇혀 있는지를 잊고 아직도 그런 청을 하다니, 자넨 깨쳐도 한참을 더 깨쳐야 해!"

이달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술잔을 비웠다.

"송구합니다. 선생님의 문장을 원한 나머지……"

뒷날 <홍길동전>의 홍길동을 닮은 이달, 그는 바로, 홍길동처럼 서얼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유정 역시 아무리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고 또한 허봉과 막역했던 사이라 해도 숭유억불 앞에서는 최하층 계급인 승려일 분이었다.

"외람되오나 나으리께서 서애 대감을 한번 찾아가 뵙는 것은 어떨는지요?"

방에 춘섬과 홍주를 들이며 술상을 살피던 도원이 다시 끼어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서애 류성룡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옳거니! 서애 대감 좋지!"

이달이 쉽게 맞장구를 쳤지만, 실은 류성룡이 도성에 없다는 사실을 세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서얼 출신 이달이 어찌 명재상으로 물러난 서애 류성룡에 비할까. 그러나 허균은 시문을 쓰고 생각할 때 누구보다 먼저 이달의 시와 시론이 떠올려졌다.

"누이의 시집 서문을 써주셨는데 굳이 낙향해 계신 선생님한테 형님의 문집 서문까지 부탁드리기가 송구해서 서애 대감 생각은 더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허균이 말을 마치자 도원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어 홍주와 춘섬이 덩달아 일어섰다. 도원이 허균에게 절을 하자 두 사람도 덩달아 절을 했다.

"작은나으리, 송운 큰스님 일을 서애 대감을 찾아가 말씀해 주시지요."

"서애 대감은 안동에 낙향해 계신다니까!"

"원하시면 가마라도 준비하겠습니다."

허균의 난처함에 이달이 짖궂게 더 보탰다.

"차제에 자네 중형의 문집 글을 보여 드려서 서문을 얻을 겸 한번 다녀오시게나."

도원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설사 내가 서애 대감께 다녀온다 해도, 그땐 이미 큰스님께서 왕명을 받으신 뒤가 될 것이야."

"서애 대감마저도 큰스님을 대마도로 못 가게 하지 못하시면 저희는 깨끗이 포기하겠습니다. 대신 작은나으리 말씀처럼 큰스님이 무사하게 대마도에 다녀오실 수 있도록 방책을 강구하는 데만 전념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절절함이 이 정도면 하늘도 움직일 만하다 싶었다.

"이거 정말 대단한 걸? 행수의 태도로 보면 유정 스님이 대마도로 가시면 따라 나서서 보필할 기세가 아닌가."

이달은 짐짓 혀를 내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자, 홍주가 불쑥 나서고 있었다.

"나으리께서 바로 보셨습니다. 큰스님께서 꼭 왜국으로 가셔야 한다면, 저희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허, 이거야, 원!"

이달이 실소하고 허균은 더 놀라지도 않고 웃었지만 도원도 홍주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다만 춘섬만이 영문을 잘 알지 못하고 허균에게 재촉했다.

"나으리, 저도 대마도로 가야 한답니다. 나으리께서 큰스님을 잘 붙들어 주십시오. 전 뚝섬에서 뱃놀이할 때 말고는 아직 배를 한번도 안 타봤는데 멀미라도 하면 큰 실수가 아닙니까요."

춘섬의 어이없는 말이 허균을 더욱 난감하게 했다.

춘섬은 도원과 홍주 곁에 나란히 앉아서 금세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이 되어 곧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달이 허균의 심중을 그대로 읽어낸 듯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조선 여자들이 이렇게 무서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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