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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자 (2)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1>

많은 의심들이 응규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재약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 속에서 어름치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던 응규의 머리 위로 산 그림자가 어른대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했더니 꿈이 아니었다.

유정은 조그만 승방 안에 누워 있다 막 깨어나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로 덩치가 큰 비구승 둘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서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조를 하십시오, 큰스님!"

"저희 뜻이 관철될 때까지 큰스님을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

두 승려는 줄기차게, 유정에게 국가의 일을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봉은사로 가기 위해 뚝섬나루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승려 둘이 다가와서 정관대사 일선의 이름을 대면서 동행을 구했다. 그 순간 유정은 우회해 갈 수 없는 가시밭길이 자신 앞에 펼쳐져 있음을 알았다. 정관대사 일선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해구 가 바짝 따라와 경계했지만, 유정은 해구 일행을 먼저 봉은사로 보내고 홀몸으로 두 승려를 따라나섰다.

임제종의 법맥을 잇는 서산대사 휴정에게는 뛰어난 제자들이 많았다.

유정이 그 중 한 사람이었고, 편양 언기(鞭羊彦機), 소요 태능(逍遙太能), 정관 일선(靜觀一禪), 현빈 인영(玄賓印英), 완당 원준(阮堂圓俊), 중관 해안(中觀海眼), 청매 인오(靑梅印悟), 기암 법견(寄巖法堅), 제월 경헌(霽月敬軒), 기허 영규(騎虛靈圭), 뇌묵 처영(雷默處英) 등이 또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왜란 때 의승군을 이끄는 의승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기허당 영규는 왜란 초기에 스스로 의승군을 이끌고 청주성을 탈환하고 맨 먼저 전사한 승병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승려로서 전란에 참여해 칼을 휘두르는 일이 부처의 뜻에 반한다고 생각한 고승도 있었다. 선수 부휴(善修浮休)와 정관 일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특히 일선은 당초부터 승려의 참전에 반대했다. 승병장을 지낸 고승들 또한 왜란이 종결된 뒤 다시 산중으로 들어갔다. 국왕은 왜란이 종결되고 몇 고승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그 중 유정을 도성 가까이 두었고, 유정은 그걸 뿌리치지 않았다.
▲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 있는 사명대사 탄생지. 복원한 생가

일선은 더 참지 않고 서찰을 보내 유정에게 어서 속세의 연을 끊고 빨리 떠나와 불제자의 본분을 지키라고 충고했다. 그때 유정은 자신이 국가 일에 참여하는 일이 결코 부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고 완곡하게 회신을 보냈다. 그 뒤로 다시 답은 없었지만, 가끔씩 두 눈 두덩이에 살이 두툼한 정관 일선의 굳은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두 승려가 유정을 인도한 곳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벼랑 끝에 지어진 서너 칸 되어 보이는 암자였다. 유정이 어림잡아 보았을 때 뚝섬에서 두모포 뒤쪽 둔덕으로 해서 한 마장쯤 되는 거리였다. 마음속에 행여 일선이 와 있지 않나 하는 일말의 기대도 일었지만 역시 아니었다.

대신, 유정이 벼랑 쪽으로 난 승방 안으로 인도되는 동안 여러 비구들이 서서 지켜보고 있던 걸로 봐서 나름대로 격식을 지키는 승려 무리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두 비구는 무리들에게 유정의 승방을 지키게 하고는 하루 동안 가타부타 기별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군불을 땐 더운 방안에서 유정은 혼몽한 잠에 취해 지냈다.

점점 꿈을 꾸는 듯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유정은 그 어지러움 속으로 생각을 놓아 버렸다. 지나온 세월이 마구 뒤엉겼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벌린 입이 보이기도 했고, 그 뒤로 사천왕들이 흉물스러운 무기를 들고 크게 웃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악마를 쫓기 위해 악마보다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사천왕들의 문을 열고 두 비구가 들어와 있었다.

두 비구의 이름은 승나, 영식이라 했다. 그들은 유정 같은 큰스님이 세속에 참여하게 되면 수만 불자들이 부처의 뜻을 곡해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부처의 힘으로 세속의 일을 해결하려 들게 되면 거기에 참 부처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불가를 대표하는 유정 같은 큰스님은 산중에서 수도하고 간간이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참 부처를 널리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 했다. 그들은 유정에게 산에 귀의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조하지 않으면 감금을 풀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유정하게 무례하게 군 일이며 방에 불을 너무 덥게 때어서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 일 들을 사죄하는 등의 예의는 지키는 자들이었다. 유정이 해우소를 쓰거나 세수를 할 때 돌봐주는 아래 비구들도 마냥 땡중들이 아니었다.

유정의 대답은 아침 공양까지 마친 뒤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너희들이 나한테 이리 무례하게 대하고 있는 것도 다 불법을 바로 세우려는 높은 뜻에서라고 여기고 너희에게 물어보겠다. 내가 국왕의 부름을 받아 궁을 드나드는 일이 어째서 불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여기느냐?"

승나가 나섰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본시 억불을 하면서 세워진 나라입니다. 조선 개국 때까지 불교는 천 년 동안 이 나라 백성 모두의 종교였는데, 그런 이 땅에 어째서 억불하는 나라가 세워진 것일까요? 바로, 불교가 너무 오래도록 세속에 관여한 탓입니다. 불교는 깊은 산에서 얻은 깨우침으로 세속을 구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가 삽니다. 억불을 기화로 우리 불교는 깊은 산중에서 속을 끊고 묵언함으로써 깨우치고 그 깨우침으로써 속을 구제하려 해 왔는데, 스님은 왜란 때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세속에 내려가셨고 그러고는 그 세속에서 얻은 연(緣)만을 소중히 여겨 여전히 그 연에 집착하고 계십니다. 스님은 어떤 영광을 얻을지는 모르나 도리어 불교를 다시금 도탄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어서 산으로 가십시오, 스님!"

유정이 다시 물었다.

"너는 부처가 어디 있다고 배웠느냐?"

"부처는 제 마음에도 있고, 그 누구의 마음에도 있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하다면, 내가 궁궐에 가서 국왕의 명을 받고 있든 산에 가 있든 다 부처의 마음과 더불어 하는 것인데 어째서 나더러 산으로만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냐?"

이번에는 영식이 나섰다.

"나라 백성들이 침략자들에 손에 죽어갈 때 하도 다급해서 중이 그 침략자의 목을 따는 일에 나선 것은 부처님도 가납하실 불가항력이라 하겠으나, 난이 끝났으면 본분을 지키는 것이 불자 된 도리가 아닙니까? 칼을 쓰는 자의 어리석음에 칼로 맞서 피비린내를 내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서야 어찌 불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병들지 않으면 내 몸의 병도 사라지는 법이야!"

"스님께서는 유마거사 시늉으로 참을 구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유정의 말이 유마거사로 유명한 마힐이 한 말임을 알아들은 승나의 힐문이었다. 유마경을 통해 널리 알려진 유마거사는 그 이름이 마힐(摩詰)이었다. 마힐은 거리의 도인이라 불리는 사람으로, 재산도 많았고 속세의 정치인, 천민, 종교인, 서민 가리지 않고 교제해서 이후 대승불교의 형성에 영향이 컸다. 그는 부처를 알기 전부터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나중에 그 가르침 역시 이미 부처의 뜻을 대신한 거라 하여 부처의 가르침에 붙는 경 자가 붙어 '유마경'이라는 경전이 세워졌다.

"나는 유마거사를 핑계로 세속에 남아 있는 게 아닐뿐더러, 유마거사 또한 너희가 말하는 얕은 경지의 선지자가 아니다!"

둘은 유정의 단호한 어조 앞에 알 수 없는 조바심으로 숨을 꿀꺽 삼켰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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