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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2>

"내가 지금 유마거사를 말하는 까닭은 내 감히 유마거사와 같은 보살이라도 된 양 자만해서가 아니다. 유마거사께서는, 보살이란 본래 병이 없어도 중생들이 병을 앓기에 함께 병을 앓는다고 말하셨다. 이 병 앓음은 중생들과 한마음 한뜻이 된 보살의 경지일 터이다. 나 비록 그에 이르지 못하지만, 내가 속세를 기웃거리는 일은 아직 전란의 아비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과 함께 병 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너희들은 산중으로 가거라, 나는 아직 이땅에 남은 악마의 흔적을 지워서 중생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더 씻고 가겠다."
  
  "바다 건너온 악마만이 악마이고, 세속에서 남과 싸우고 남을 헤치고 남에게 빼앗는 악마는 악마가 아니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큰스님께서는 지금 큰 악마를 치겠다는 명분으로 작은 악마를 돕고 계십니다."
  
  승나가 만만찮게 맞서고 있었다.
  
  "사람들이 속가에 머물고 있는 유마거사에게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가 아버지이고 방편이 어머니라 하였다. 나에게도 부모가 있으니, 그것이 지혜와 방편이라는 부모다. 지혜 없이 방편 없고 방편 없이 지혜 없다. 세상을 구제하는 데는 따로 순서가 없이 본성에서 모든 것을 구제해 나가야 하지만, 그것이 구제되는 때에는 어떤 순서로 나타나는 법이다. 지금은 큰 악마를 물리치는 지혜를 위해 방편을 써야 할 때다. 다만, 이 늙은 몸이 육신으로써 큰 악마를 물리치는 데까지라도 현현해 낼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느냐!"
  
  유정은 모든 중생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말하는 여래장(如來藏)과 또한 일체를 마음의 흐름에 응집(凝集)시키는 유식(唯識)을 바탕으로 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논했다. 두 승려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이날이 오면 부리겠다고 준비한 바늘과 칼들로 짚고 찔러댔지만 유정의 다채로운 변설은 그 예리한 날을 이리저리 피해가다가 마침내 제 스스로 무디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 유정이 감금된 승방 가까이 다른 비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있었다.
  
  승나와 영식이 밖의 심상찮은 기운에 문을 열자, 모여들어 있던 비구 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비구가 툇마루 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큰스님,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방안에 있던 승나와 영식이 당황해서 일어섰다.
  
  그러나 이내 체념한 듯이 밖으로 나와 나이 든 비구 옆에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마당에 섰던 다른 비구들도 아직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나이 든 비구가 비장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준하라는 법명으로 행세하는 불자입니다. 처음에 왜란을 맞아 청매 인오선사를 따라 전란에 참전하였습니다. 명나라 군사가 오고 관군이 다시 규율을 취해 움직일 때는 전라도 일대의 뭉개진 산성을 수축하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산으로 가 살지도 못하고 환속도 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왔습니다. 여기 모인 비구들 또한 모두 어린 중으로 왜란 때 의승군이 되어 싸웠는데, 왜란이 끝나고는 정처를 잃어 버렸습니다. 의승장으로서 구국의 일등공신이신 큰스님이시라면 저희가 가야 할 바를 일러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의승군이라는 말에 유정은 절로 숙연해졌다. 전란에 함께 싸운 승려들이 전란 이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지 못한 죄스러움마저 새삼 일었다.
  
  "승려로서 나라를 구하는 도를 택한 것만으로도 이미 큰 수행을 한 것일 터인데, 마땅히 절에 들어가 용맹정진해서 큰 도를 얻어야 할 것이 아닌가!"
  
  유정은 짐짓 낮은 목소리로 꾸짖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준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저희가 살아갈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은, 목숨을 바쳐 왜적을 막아낸 공으로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희는 왜란에 임하면서 비록 일시의 색(色)으로나마 깨침의 한순간을 보았습니다. 한데 이 어리석고 추한 몸으로 더 오랜 수행을 해서 겨우 얕은 깨침을 이룬다는 것이 무슨 뜻이 있겠습니다. 이 절 저 절 돌아다니며 법문을 듣고 찬불을 했으나 그것은 더욱 혼미한 미몽 속을 헤매는 것과 같았습니다."
  
  영식이 갑갑하다는 듯이 나서고 있었다.
  
  "저는 중이지만 산에서는 더 못 살겠습니다. 하지만 환속도 못하겠습니다. 저희는 모두 그런 중들입니다."
  
  "이런 중들이 오다가다 만나 이리 모여 있습니다, 큰스님. 보살펴 주십시오."
  
  승나도 뜻을 보탰다. 준하가 다시 말머리를 한 곳으로 모았다.
  
  "절에도 못 있고 속가로도 내려가지 못하는 중들이 이렇게 모여 살아갈 일을 도모해 온 지 수년입니다. 하오나, 함께 있으면서 밭을 경작하고 탁발을 하는 한편으로 경전을 읽고 예불을 올리지만, 저희는 이미 정심을 잃었고 깨침의 방도를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은 자가 염불을 한다 하여 도를 얻을 것이며, 또한 속세로 내려가 백성을 금수처럼 여기는 관아의 제도에 빌붙는다 한들 시원스레 곡식이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 큰스님 같은 분이 가시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따르는 것으로써 저희가 갈 바를 정하려 합니다. 부디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나마 준하가 우두머리 구실은 제대로 하는 듯했다. 다른 비구들의 얼굴에 준하가 하는 말이 행여 하나라도 유정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안쓰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바로 너희들이 말하지 않았느냐, 나야말로 비승비속처럼 장삼을 입고 도성을 출입하고 있는 떠돌이 중이 아니냐. 게다가 이젠 늙어서 너희 같은 행자들을 거느릴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유정은 이제 곧 어전으로 나가 어명을 맞아야 했다. 하지만 비구들이 이미 그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듣자 하니 송운 큰스님께서 왜란 때 큰 공을 세우시고 나서 도성을 떠나지 않고 임금을 보필하시던 중에 장차 왜국으로 건너가는 소임까지 맡게 되셨다 했습니다. 큰스님을 돕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알고 있으나, 큰스님과는 연이 없었던 저희들 또한 실은 이보다 훨씬 일찍 만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큰스님의 의중에 흔들림이 없다면 비루하고 구차한 저희들이지만 수행을 허락해 주시면 짚을 지고 불길 속으로 달려들으라고 하셔도 그대로 이행할 터이니 부디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준하에 이어 승나와 영식이 나섰다.
  
  "실은 큰스님의 깊은 뜻을 다시금 헤아려 큰스님께 저희를 의탁하고자 이리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저희는 큰스님이 바다 건너가실 때 함께 따르고자 모두 뜻을 합하고, 큰스님이 봉은사로 가실 때를 택해 뚝섬에서 며칠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란 때 맨 먼저 의승군을 일으킨 승려는 기허당 영규였다. 영규는 적의 수중으로 들어간 청주성을 탈환하는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휘하의 많은 의승군과 함께 전사했다.
  
  실제로 의승군이 전 지역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임진년에 의주까지 몽진을 간 국왕이 서산대사 휴정을 불러 8도16종 도총섭이라는 직책을 내린 이후부터였다. 휴정은 8도의 전 사찰에 격문을 보내 의승군을 일으켰다. 강원도 건봉사에서 유정이, 전라도 지리산에서 처영이, 황해도의 해서(海西) 지방에서 의엄(義嚴)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왜란 중에 의승군이 주로 활약한 때는 초기 1년여 동안이었다. 특히 명나라 원군이 오기 전의 의승군은 실질적인 전투군으로 왜군의 북진을 막고 빼앗긴 성을 되찾는 공격을 수행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임진년 12월 명나라 원군이 도착한 뒤로 의승군의 일부는 군량미 운송에 동원되었다. 또 땔감을 베어들이는 일도 의승군의 역할이었다.
  
  이듬해 4월 왜군이 남으로 퇴각하고 상당 기간 휴전 상태에 들어갔을 때는 의승군의 대부분은 의승장들의 지휘 아래 축성을 담당했다. 전라도 건달산성과 수인산성 수축도 의승군의 몫이었고, 이어 가야산의 용기산성, 지리산의 구성산성, 삼가의 악견산성. 합천의 이숭산성을 수축한 것도 이들이었다.
  
  숭유억불 시대의 중은 실은 천민과도 다름없는 신분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란에 맞서 싸울 때는 목숨을 내던졌으되 사람다운 지위로 지낼 수 있었다.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도를 행하니 막힘이 없다'라는 말 그대로였다.
  
  많이 죽고 많이 다쳤지만, 그래도 그것이 눈앞의 선이요 법이요 길이었다. 한데, 왜란이 끝나고 다시 산으로 들어간 그들에게 산과 절은 절해고도요 사방 두터운 벽이었다. 그들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헤어날 줄 몰랐다.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산을 빠져 나와 세속으로 돌아갔다. 준하, 승나, 영식 들은 세속으로 가지도 못하고 헤매도는 비승비속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깨침의 기운을 유정이 가는 길에 걸었다. 그들은 유정에게 매달렸다.
  
  "다시 왜적과 맞서는 일에 저희 같은 경험을 한 이가 또 있겠습니까? 저희가 큰스님을 수행토록 해 주십시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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