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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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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2)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4>

이덕형은 임금의 명을 기다리는 대신, 승지에게 눈짓해 자신이 미리 준비해온 책자를 임금에게 올리게 했다. 승지는 책자에 부찰한 면을 펼쳐 임금이 보기 좋게 내밀었다.
  "그 서책은 왜란 때 목숨을 던져 구국에 앞장 선 이들이 쓴 글을 가려 뽑은 것입니다."
  임금이 눈을 뜨고 내려다보았다.
  
  10월에 의병을 일으켜 나아간다.
  나팔소리, 자욱한 깃발들 강산을 뒤흔들고
  갑 속에 든 칼이 어둠 속에서 울부짖나니!
  요망한 것들을 베어 나라에 보답하리.
  
  임금이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리듯 글을 읽어갔다. 율시 한 편을 읽고 난 임금이 고개를 들어 승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갑 속에 든 칼이 어둠 속에서 울부짖나니!"
  
  승지의 인도로 편전으로 들어와 부복한 유정에게 임금은 자신이 읽은 시의 한 구절을 되뇌어 주었다. 유정은 당황스러워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왜란을 당해 소승의 스승 휴정이 격문에 이르기를 나라가 위급을 당했을 때 백성을 구하고 임금께 충성하는 것이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요 진성(眞性)을 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때 소승이 망설이지 않고 승병 일천을 모아 평양으로 향하던 중에 쓴 졸렬한 시이온데, 이제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이런 불충이 따로 없사옵니다."
  
  "그대는 중으로서 칼을 드는 일을 삼가지 않았다. 이제 다시 그대에게 칼을 주어 바다 건너 왜적의 소굴로 보내려 하는데 그대는 마다하지 않겠는가?"
  
  "소승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제자로서 위로 네 가지 은혜를 갚고 아래로 삼도(三途)의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본분으로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위로 네 가지 은혜는 무엇이고, 또 아래로 삼도의 중생을 제도하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네 가지 은혜라 함은 부모와 임금과 스승과 국민에 대한 은혜이며, 삼도의 중생이라 함은 지옥과 아귀와 축생계입니다. 아직 이 강산에 핏물이 가시지 않았고 붉은 바닷물이 들끓기가 가마솥 속과 다르지 않아, 이 늙은 몸을 편히 둘 수 없습니다. 하명하시면 칼을 품고 바다로 건너가 중생을 구하고 은혜를 갚는 일에 정진하겠습니다."
  
  이미 임금이 기다리고 있던 답이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충성을 맹세하는 큰 신하가 필요했다. 그 큰 신하가 자신의 신임을 받는 이상으로 백관들의 신임을 받거나 백성들로부터 크게 추앙되는 일에 대해서는 시기하고 질투해 마침내 내치고 죽이는 것이 임금의 버릇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도, 나라에 충성하는 신하라면 임금에게 충성하는 말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이덕형이,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의 일을 지레짐작하고 망설이는 임금에게 유정이 쓴 시 한 편을 앞세워 풀어놓았고, 유정이 또한 지극한 충성심으로 임금의 심기를 달랬다. 임금은 그렇게 충성심을 확인했다.
  
  "이 책을 본 적이 있는가?"
  
  임금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유정에게 낡은 서책 한 권을 내려 주었다. 얼핏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유정으로서는 금세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임금 가까이 앉은 이덕형이 먼저 알아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웠다. 예문관에서 일할 때 읽어서 익히 기억하고 있던 책이었다. 임금이 그 책을 찾아와 유정에게 내밀고 있다면, 실은 임금이 오늘 유정을 불러서 할 말을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세종대왕께서 보위에 계실 때 대신 신숙주가 왜국에 다녀와서 양국이 서로 교린하는 일을 간한 바 있는데, 이 책은 성종대왕에 이르러 신숙주가 왕명을 받고 저술한 것이야. 왜국이 본시 여러 개의 섬으로 되어 있어 그 섬마다 다른 땅 모양을 하고 풍속 또한 서로 다른데 이를 세세히 적기한 책이 바로 이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인즉, 그대가 섬으로 가기 전에 미리 읽어 가서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야."
  
  왜국은 본국에 해당하는 섬과 일기(一岐), 구주(九州), 대마(對馬), 유구국(琉球國) 등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다. 세종대왕의 명으로 왜국을 방문한 신숙주는 그 섬들의 지형과 정세를 하나하나 책으로 옮기고, 양국이 교린할 때 서로 갖출 예의와 규범을 밝혀서 왜국과 화해롭게 지내도록 해 두었다. 신숙주가 처음에 성종 2년(1417) 12월에 1권 1책으로 편찬한 것을, 2년 뒤 양심조가 쓴 서계를 보태고, 그 이듬해 또 남제가 조사한 3포 즉, 웅천 제포(熊川薺浦), 동래 부산포(東萊富山蒲), 울산 염포(蔚山鹽浦)의 지도 등을 첨가했으며, 또 연산군 7년(1501)에 성희안이 유구국 사신에게 들은 왜 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해 전체를 1권 2책으로 보완해 두었다.
  
  현재까지 전하는 한일 관련 정보책자는 임진왜란이 이후에 저술된 것이 많지만, 이때까지는 해동제국기만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이 책은 물론 오늘날에도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 좋은 사료가 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특히 왜국과 교린에 힘쓰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데 유효한 책이었다. 그마나 그런 사료라도 미리 읽고 준비한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한데, 그러나 임금이 유정에게 해동제국기를 읽으라고 내놓은 진정한 까닭은 전혀 다른 데 있었다.
  
  "한데......"
  
  임금은 다시 말을 멈추었다. 해동제국기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 이덕형은 더는 긴장하지 않았다.
  
  "신숙주는 태평한 때 왜국에 다녀왔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더 힘든 뱃길을 헤치고 다녀왔다. 지금 송운은, 신숙주 때보다는 뱃길에는 익숙한 대신, 아직 그 검은 속을 알 수 없는 왜적의 소굴로 들어가야 해. 신숙주는 대왕께서 내리신 직책을 달고 풍족하게 먹을 것 입을 것을 가져갔는데, 지금 내가 송운에 줄 것은 그렇지 못할 것이야."
  
  "소승이 불제자가 되어 산 지가 이미 반 백년에 이릅니다. 시절이 어수선하여 깊은 산중에서 나물만 뜯어먹고 지내지 못하고 사는 것이 한일진대, 이제 와서 무얼 더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소승은 난이 일어난 때나 지금이나 전하께서 가서 구하라 하시면 다만 그 뜻을 좇아 지옥의 화염 속을 횃불을 든 채로 그대로 뛰어 들어갈 뿐, 다른 방도를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임금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일어섰다.
  
  "충을 말하고 또한 성을 말해도 송운 같은 사람이 없다!"
  
  임금은 그 한 마디로 가슴 깊은 데서 이는 스스로의 치욕과 불안을 씻으려 했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덕형과 유정은 깊이 고개를 숙여 답했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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