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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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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사 (2)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7>

마포나루로 들어서면서 하역 준비를 하던 오동수는 벼랑고개 쪽에서 번쩍번쩍거리는 빛을 보았다. 벼랑고개 위로 멀리 보이는 담담정 터에 웬 사람들이 모여 있나 싶었는데, 빛은 거기서 난 것이 아니었다. 다 허물어진 담담정에서 무슨 일이 있을 턱이 없지 했다.
  
  심상찮은 기운이 솟고 있는 곳은 벼랑고개 아래로 툭 떨어져 강변 모래톱으로 이어지는 평지였다. 사람들이 늘어선 사이로 누군가 말을 달리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성급히 말을 부릴 때 내는 얍! 일얏! 헙! 하는 소리로 들렸다.
  
  "어서 곡물가마를 부려 놓고, 소금가마를 올려 싣도록 해라!"
  
  나루에 배를 대면서 소리를 치다가 오동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루에서 배를 맞은 일꾼은 어린 운길과 늙어 허리가 굽은 공치뿐이었고, 그나마도 둘 모두 방금 전까지 말 달리는 걸 구경하다 배 들어오는 걸 보고 허겁지겁 달려와 있던 참이었다.
  
  공치가 얼른 눈짓을 해서 운길을 모래톱으로 보내 사람들을 불러들이려 했지만, 오동수가 막았다.
  
  "하도 비상한 재주라 다들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치의 변명에 오동수도 화를 누그러뜨렸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인데 저러는가?"
  
  "사람이 말을 타고 재주를 넘는데,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처음 봅니다요."
  
  어린 운길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누가 마상재(馬上才)를 한다는 말이더냐?"
  
  오동수도 더 참을 수 없었다. 왜란 때 마상재를 하는 병사가 있었다는 얘기만 들었지 구경을 한 적은 없었다. 오동수는 배꾼들까지 데리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갔다.
  
  늘어선 사람 중에 오동수를 알아본 수하 일꾼들 몇이 자리 틈을 내주기는 했지만, 다들 모래톱에서 벌어지는 멋진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동수도 그 틈을 비집고 섰다.
  
  멀리서 한 사내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가 싶더니, 그 사내가 잠시 모습을 감추고 한동안 달리는 빈 말만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말 몸뚱이 한켠으로 사내의 두 다리가 거꾸로 곧추 세워졌는데, 그래도 말 달리기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울렸다. 사내는 다시 잠깐 말 등에 앉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날려 반대편 말 몸뚱이 뒤로 몸을 감추었다. 그러고 다시 반대편으로 몸을 옮겨 붙였다가, 또 그 반대편으로 옮겨 붙이는 동작을 반복했다.
  
  "우초마(右超馬), 좌초마(左超馬)....."
  
  사내가 말등을 뛰어넘을 때마다 누군가 말했다.여기저기 박수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허허, 저건!"
  
  구경꾼 중 누군가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나왔다. 곧 이어 여러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내가 말 위에 몸을 뒤집어 마치 죽은 듯 누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동작을 자세히 본 사람이 아니라면 사내가 갑자기 날아든 총탄이나 화살에 맞아 그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진짜 말 위에서 그대로 쓰러져 시신이 된 것처럼 보였다.
  
  신기하게도, 시체를 실은 말이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려가다 뒤늦게 주인이 시체가 된 것을 알았다는 듯이 발걸음을 줄이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말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시늉을 하더니 이번에는 말고삐에 발을 걸고 몸을 아래로 늘어뜨려 손을 뻗어 바닥의 모래를 한 줌 움켜쥐었다 놓아 보였다.
  
  사내는 또 몸을 일으켜 말 안장 위에 두 발을 딛고 섰다.
  
  말 위에 선 채로 사람들 가까이 오는 걸 보니, 꾀죄죄한 삼베옷을 입고 얼굴이 얽고 늙수그레했지만 성혼 전인지 상투 대신 봉두난발에 이마에 끈을 둘러맸다. 말고삐를 잡고 껑충하게 선 꼴이 언젠가 언문으로 된 패설에서 보던 송나라의 양산박 산적 두목 같아 보였다.
  
  "아, 행수어른!"
  
  마상재를 즐기던 구경꾼 중에서 승나가 오동수를 알아보고 다가왔고, 다른 이들 몇이 말에서 뛰어내리는 마재인(馬才人)을 데리고 오동수에게로 모여들었다. 승나가 마재인을 오동수 앞으로 들이밀었다.
  
  "보기 드문 마재인이라 우선 구경부터 했습니다."
  
  "철배라 하옵니다."
  
  마재인이 가볍게 인사했다.
  
  "구경은 잘 했소만, 아직 해가 중천이고 할 일이 태산인데 이러고들 있으면 어떡합니까?"
  
  오동수는 마뜩찮다는 눈빛으로 승나와 일행을 둘러보았다. 승나는 별로 미안하다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쳐들어 벼랑고개로 얼굴을 향했다.
  
  "저기를 보시지요, 행수어른."
  
  오동수가 담담정 쪽을 쳐다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담담정 터에 서서 강변 모래톱을 내려보고 있는 사람들은 여럿이었고, 그 중에는 여인네도 있었고 승려들도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마상재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올라가 있은 행색이었다.
  
  오동수는 그 한가운데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보았다. 다름 아닌 사명대사 유정이었다. 유정이 마상재를 여러 사람에게 구경시키기 위해 일부러 날을 잡았다는 뜻이었다.
  
  "아니, 저 여인네들은......?"
  
  오동수는 금세, 도원과 홍주가 유정을 따라 그곳까지 올라가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정은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고 있는 오동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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