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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교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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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교린(1)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9>

"제가 왜란 전에 왜국에 다녀온 적도 있고 또 그 전후로도 왜국이나 중국으로 가는 여러 사신들을 보았지만 이번에 큰스님을 보내드리는 것과 같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러고도 조정에 앉아서 벼슬을 한다고 하는 있으니 심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비변사를 나오면서 허성이 유정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허성은 왜란이 나기 이태 전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로 하는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왜에 건너갔다 이듬해 귀국한 바 있었다. 결국 왜란도 막지 못했고, 왜란이 종결된 뒤로도 힘 하나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그에 비하면, 왜군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또 막중한 임무를 띠고 왜로 떠나게 된 유정은 나라에서 보물처럼 받들어 수행해야 할 분이었다. 그러나 사정은 아주 딴판이었다. 사사로운 친분으로 봐도 유정은 허성의 죽은 아우인 허봉과 절친한 사이였고, 그 뒤로 막내 아우 허균을 잘 보살펴 주고 있는 고마운 분이 아닌가.

조선 후기에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왜국에 다녀가는 사절단 행렬의 규모는 클 때는 거의 5백명에 사신 셋이 각각 1척의 배를 썼고, 식량과 예물을 실은 종선 3척까지 해서 모두 6척 선단이었다. 왜란 전에 왜에 다녀온 통신사의 규모도 이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2-3백명 규모로 3척 이상의 배로 행렬을 이루었다. 정식 통신사가 아닌 양국의 수교를 위해 주로 대마도까지 교통하던 도해역관사(渡海譯官使) 행렬도 백 명을 넘기기가 보통이었다.

그러나, 왜란 직후 정식 사절로 처음 왜를 방문하게 되는 이번 사절단의 행렬은 뭐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무관 출신으로 여러 차례 대마도를 드나든 바 있는 녹사(錄事) 손문욱이 서장관 격으로, 통역을 담당할 역관 김효순과 박대근이 통사라는 직함으로 따라가게 되었고, 이들을 수행하는 관원들과 배를 모는 격인(格人)들, 여러 잡인들, 그리고 유정을 사사로이 보좌하는 승려들과 잡인들까지 해서 채 백에도 못 미치는 인원에 운항하는 배가 불과 두 척이었다. 당연히 먹고 입을 것들도 풍족할 수 없었고, 호피와 표피, 인삼, 은자(銀子), 콩과 쌀 등 왜인들에게 베풀 하례품 구색만 겨우 갖출 정도였다.
▲ 류성룡(징비록-독립기념관 전시)

더구나 이 사절단의 명칭은 통신사가 아니었다. 왜가 재침할 기미가 있는지 그 정황을 살피고 온다는 뜻으로 탐적사(探敵使)나 탐색사(探索使)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나아가 왜에 문호를 열어야 하는지 협의하는 권한을 준다는 뜻을 포함해 강화사(講和使) 같은 칭호를 쓰기도 했다. 따라서 사절단을 이끄는 사명대사 유정에게는 별다른 직함이 얹어지지도 않았다. 탐정(探情)과 교린(交隣)이라는 막중한 대임을 유정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서 성취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을 허성이 모를 리 없었고, 유정 또한 모를 리 없었다.

- 탐정이든 교린이든 모두 명나라의 뜻이 아닙니다.

- 하다면 우리 조선은 왜가 또 쳐들어오려는 건지 아니면 참으로 강화를 바라는 건지 알아둘 까닭이 없지요.

- 그 또한 명나라가 바라는 바가 아니지요.

- 그러니 명나라 몰래 왜에 사신을 보내 적정을 탐색해야 한다는 거로군요.

- 송운은 그래서 적역이지요. 나중에 명나라에서 안다고 해도 불법(佛法)을 전하는 승려로서 하고자 한 일이라 조정에서 허락해준 거라 해명을 하면 될 테지요.

- 하긴, 명나라에서도 송운 큰스님이라면 달리 의심할 수 없겠습니다.

- 왜적의 땅에 가서 겁내지 않고 제 소신대로 말하고 행하고 돌아와 적정을 제대로 말할 사람이 그 누구이겠습니까!

- ......

- ......

- 송운의 명성은 왜가 익히 잘 알지요.

- 하긴, 그 무지하고 험악한 가등청정을 감복시켰으니......

- 제가 승정원에 있을 때 본바, 송운이 난 중에 가등청정을 만나 강화 문제를 논의하고 나서 올린 장계가 여러 통입니다. 도무지 적장을 만나서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또한 명나라의 장군들에게 보고하고 설명함에도 전혀 꿀림이 없으면서도, 명 장수의 좁은 비위를 그슬리지 않았더군요.

- 왜에서 온 사신들 입에서도 수 차례 송운 큰스님 이름이 거명됐지요.

- 부처를 숭상하는 왜국에서 얻기 어려운 고승이 사신으로 가는데 왜국에서 감히 어쩌겠습니까.

- 조선에서 문장께나 쓰는 사대부 중에 송운과 시를 화답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예로부터 조선의 사신이 가면 글씨를 받아가는 풍습으로 요란을 떠는 왜적들이었으니, 송운 큰스님이 여러모로 적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하지만......

- 하지만?

- 역시 불씨(佛氏)라는 게지요?

- 불씨가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이라면, 공맹이 비웃고 주자가 비웃을 일이지요. 이 나라 유생들이 조정을 얼마나 업수이 여기겠습니까?

- 권당(捲堂)......

- 상소(上疏)......

- 허허, 참! 왜적이 재침할 수도 있고, 재침이 없다 해도 왜에게 문호를 열고 않고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일을 불씨한테 맡긴다고 성균관을 비우고 상소에 매달리다니요! 유학을 한 조정의 대소신료들을 대신해 그 막중한 탐정과 교린의 일을 전담하고 적지로 가는 사람을 불씨라 해서 능멸하다니요!

- 흥분하신다 해서 권당과 상소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 송운이 섭섭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 섭섭해 하겠지요. 하나, 불씨가 어째서 불씨이겠습니까? 산에서 풀로 연명하면서도 배부른 극락의 길이 있다 해서 마음 여린 백성들이나 아녀자들이 믿고 의지하는 게 아닙니까? 송운이 진짜 불씨라면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결코 섭섭한 티를 내지 않을 겁니다.

- 탐정도 교린도 모두 송운이 하는 대로 두고 기다려 볼 수밖에 없군요.

- 그렇지요.

몇 달에 걸쳐 비변사에서 이루어진 논의가 그러했다. 그 말들이 허성의 머릿속에서 뱅뱅거렸다. 수많은 논의 중에 겨우 가닥을 잡아 유정이 이끌 사절단에 지원할 인원과 물품과 일정을 정하고 품의해 임금을 하명을 받아내는 것이 그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 과정을 일일이 다 유정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유정은 그 속을 다 알겠다는 듯이 한동안 미소만 짓고 묵묵히 걷다가 광통교쯤에서 허성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미욱하게 늙은 몸이 산중에서 조용히 늙어 죽는 일만으로도 광영된 일인데 불러서 국가 대임을 맡겨 주시니 그저 감읍할 뿐이지요."

"허허, 큰스님. 정말 이제야 알겠습니다. 고집이 너무 센데다 때로 자기 재주를 믿고 교만하기까지 한 제 아우들이 어째서 스님 일이라면 만사 젖혀놓고 나서고 받들고 하는지 전에는 도무지 몰랐습니다."

"덕 없는 중을 굽어 살펴주는 분들이 많아 이 나이 먹도록 외롭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수표교에서 말에 올랐다. 비가 오려는지 청계천에서 썩은내가 진동했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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