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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3)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24>

"소란을 피워 송구하옵니다, 큰스님!"

불혹쯤은 되어 보이는 얼굴에 점이 많은 사내...... 말쑥한 도포에 반듯하게 갓을 쓴 걸로 봐서 지체 높은 사람인 게 분명했지만,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는 본새가 어딘지 억지스러워 보였다.

매화당 앞에서 이달과 홍주가 강진석와 하명구를 추궁하고 있을 때 법당 쪽에서 허겁지겁 올라온 사내였다. 사내는 강진석와 하명구를 크게 꾸짖고 용서를 구했다. 법회를 마치고 염화실에서 혼자 묵상하던 유정에게 세 사내가 인도된 것은 이미 해가 기울고 있을 때였다.

"큰스님, 소인을 기억하시겠습니까?"

사내는 다시 한번 허리를 꺾었다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뜻밖의 말에 유정은 사내를 똑바로 응시했다. 얼굴 생김새보다 말씨가 귀에 익었다.

"큰스님께서는 저를 기억하시기 어렵겠지만 저는 큰스님을 여러 차례 뵙고 큰스님 뵌 일을 평생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경상도 달성 땅에서 사는 김충선이라 하옵니다."

"아, 바로 그 김충선!"

유정은 김충선이라는 말 대신에 먼저 '사야가(沙也可)'라는 말을 내뱉을 뻔했다.

왜란 초부터 왜군을 접했고 특히 강화를 위해 왜군들이 쌓은 울산성 안으로 들어가 세 번이나 가토 기요마사를 만난 유정한테는 조선말을 하는 왜인 통역관들의 말투가 귀에 익었다. 김충선은 바로 그렇게 왜인들이 조선말을 쓰듯 말하고 사람, 이름은 조선 이름이되 원래는 왜인이었다.

"그럼, 항왜?"

이달이 옆에 앉은 허균과 눈을 마주치며 중얼거렸다.

사야가는 임진년 4월에 왜군의 선봉으로 나서 부산에 상륙했다가 수하 병사들을 이끌고 경상도 좌병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이런 왜군들을 일컬어 항왜(降倭)라 했다.

왜란 중에 이미 이 항왜의 숫자가 일만이 넘는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는데 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걸로 추정되고 있다. 투항한 이들은 대개 조선군에 편성되어 왜군과 맞서 싸웠고, 특히 조총과 화약 제조법이며 총포술을 조선군에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왜란 초에 왜군의 조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조선이 오래지 않아 진영을 갖추면서 왜군과 당당히 전투를 해낼 수 있었던 데는 이 항왜의 역할이 컸다. 불패의 신화를 기록한 이순신의 수군에도 이들 항왜가 다수 활약했는데 그 중에도 난중일기에 '준사'라는 이름을 가진 항왜의 활약이 돋보인다.
▲ 사명대사탐색사행렬도(제천 신륵사 대웅전 외벽)

사야가는 투항 직후 밀양 부사 박진의 관군에 편성되자마자 조총과 화약을 제조하는 법을 전파했다. 그리고 직접 전투에도 참전해 울산, 경주, 영천 등지에서 왜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었던 항왜 사야가는 왜란이 종결된 뒤 국왕으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이름과 종2품 벼슬을 하사받고 진주목사의 딸과 결혼해서 경상도 달성에서 후학을 기르며 지내고 있었다. 뒷날의 일이 되지만 이 김충선은 인조반정 직후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힘을 보태고, 병자호란 때는 명을 받지도 않고 나아가 오랑캐를 치는 공을 세운다.

김충선이 조선의 승려 유정을 만난 것은, 유정이 영남 일원에서 명나라 장군 유정의 부대에 무기와 식량을 보급해 줄 무렵이었다. 조총에 능한 항왜들이 무기 수선과 제조를 도맡아 할 때 김충선이 그 지휘자로 있었다.

"제가 큰스님이 이끄시는 의승군을 비롯해 여러 군대의 보급군에 가담한 일로 큰스님을 우러러 뵈었고, 그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고 살았사온데, 이번에 북방의 야인을 수비하는 일로 국왕의 부름을 받고 입성한 차에 큰스님이 송법회를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뒷전에서 김충선의 말을 듣고 있던 홍주는 이달과 허균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달이 홍주의 뜻을 알아채고 헛기침을 하면서 나섰다.

"저도 김공이 왜인으로 이 나라에 와서 이 나라의 공신이 된 일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당장 큰스님 앞에서 밝혀 주셔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김공이 대동한 저 두 사람은 누구이며, 두 사람이 등에 매고 온 보퉁이는 또 무엇입니까? 국가 대임을 맡아 적국으로 들어가실 큰스님 앞에 한 치 사기(邪氣)도 생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달은 매화당 앞에서 수상한 짓으로 지목을 받은 두 사내에 대해 따지고 들었다.

김충선은 전혀 쫓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임금께서 저에게 이름을 주시고 벼슬을 주시고 거처를 주셔서 제가 장가를 들고 녹을 먹고 배불리 살 수 있게 되었사온데, 점차 제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이는 저에게 배움을 청해왔고 저는 그 사람들에게 일본의 총포술과 무기 제조법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일본의 지리, 말씨, 풍습, 역사, 기후, 사람과 동물과 풀나무의 생김새까지 다 가르쳤습니다."

"가만......"

유정이 손을 들어 김충선의 말을 막았다. 이달과 허균, 그 뒤로 해구와 여러 승려들, 그리고 문 쪽에 도원과 홍주에 이르기까지 일부러 좌중을 일별하고 난 유정이 물었다.

"말씀을 하시는 김에 공이 지금 우리 조선에서 일찍이 바다 건너 섬나라를 왜라 부르고 있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일본이라 부르고 있는지 말씀을 해 주시지요."

"조선에서 왜라 함은 예로부터 부르는 말을 따르는 것인데, 정작 바다 건너 섬나라 사람 자신들은 자기 나라를 왜라 부르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조선의 삼국시대부터 일본, 일본 말로는 니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 조선을 부를 때는 정식 국호로 부를 때만 조선 즉 조센이라 하지만, 통상은 한국 즉 칸코쿠라 부르거나 조선이 예로부터 중국에 속한 나라라는 뜻으로 당인(唐人), 즉 도진이라 비하해서 쓰는 일도 많습니다."

좌중에서 가벼운 탄성이 일었다. 조선을 침략한 원수의 나라 왜국이, 김충선의 말을 들으면서 뚜렷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큰스님께서 해협을 건너가 일본의 정세를 살피고 오셔야 한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저는 생각해 왔습니다. 큰스님이 배를 타시고부터 길잡이를 해주는 조선, 일본 양측 관원들이 있을 것입니다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합니다. 큰스님이 가 계실 곳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입니다. 조금이라도 일본을 아는 사람이 큰스님 곁에서 수행해야 합니다. 게다가 일본의 무술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큰스님, 이 두 사람들이 제가 십년간 가르친 제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쇠붙이하고 대장간의 풀무만 있으면 조총 정도는 거뜬히 만들 줄 압니다. 무기가 없다면 몸으로 큰스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들입니다. 큰스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죽으라 일렀습니다."

"이건 입으로만 큰스님을 걱정해온 저 같은 사람들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놀라운 생각입니다!"

허균의 입에서 먼저 탄사가 터져나왔다.

김충선의 말을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큰스님, 예가 아닌 줄 알지만 저의 이 두 제자가 큰스님 앞에서 조총을 만지는 법을 선보이겠습니다."

말릴 틈도 없었다. 하명구와 강진석은 김충선의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잠시 전 홍주에게 수상한 물건이 든 짐이라 지목당한 보퉁이에서 쇠붙이를 꺼냈다. 조총이었다. 두 사람은 각기 한 자루씩의 조총을 단번에 분해해 놓아 갈고리처럼 생긴 긴 쇠붙이 조각 몇과 뭉치처럼 생긴 방아쇠틀로 만들어 놓았다.

"자, 이걸 다시 조합해 보게!"

김충선이 보란 듯이 그 두 자루 몫의 쇠붙이를 마구 뒤섞어 놓자 두 사람이 서둘러 다시 한 자루씩의 조총으로 만들어 보였다. 그러는 동안 김충선은 조선과 일본의 전술과 무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저는 조선에 와서 두 번 놀랐습니다. 우선, 조선의 활이 그렇게 강궁인 줄 몰랐습니다. 힘 있고 숙달이 된 궁수들이 날린 화살은 마치 먼 바닷속 고래 등을 뚫을 듯 강하고 멀리 날아가는 데다 정확하기도 고구려 장수가 당나라 태종 눈알을 명중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군대가 일본 군대가 들고 온 이 조총을 당해내지 못해 그렇게 쉽게 무너진 것이 또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아직도 일본군의 조총을 신기(神器)라 지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조총은 한자 말 그대로에서 보듯 저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잡는 정도의 총에 불과합니다. 즉, 총알이 날아가는 비거리가 아주 짧습니다. 게다가 총알을 장전해서 쏘고 나서 다음 총알을 장전하는 데 드는 시간이 조선 궁수가 활을 활 시위에 새로 멕이는 시간보다 훨씬 깁니다. 그런데도 일본군이 초반에 승승장구한 것은, 조총 든 일본군을 세 패를 나누어 한 패가 쏘고 나서 장전하는 동안 다음 패가 미리 장전한 총으로 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또 그 다음 한 패가 장전한 총으로 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전술을 썼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일찍이 원흉 도요토시 히데요시에 앞서 그 다이묘(大名)인 오다 노부나가가 서방에서 온 조총으로 무장한 군대로 일본 천하를 제압하면서 썼던 전술을 왜란의 장수들이 응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충선이 말하는 왜군의 무기와 전술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유정이었다. 유정은 실제로 조총의 사정거리가 길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왜군과 각축을 벌일 때 의승군을 소리 없이 왜군에 근접하게 해서 일시에 공격하는 전법을 구사한 바 있었다.

"큰스님, 당부 드리옵니다. 저의 두 제자가 큰스님을 수행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김충선은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홍주도 얼른 무릎을 꿇고 입을 떼려는데, 이달이 재빨리 눈총을 주어 홍주의 입을 막았다.

"무인으로서 왜의 사정의 잘 아는 사람이 부족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공이 적절하게 두 사람을 데리고 와 주셨구려."

유정이 김충선의 청을 쉽게 받아들이자 결국 홍주가 나서고 말았다.

"큰스님, 이 두 남정네가 무기를 빨리 만들어 사용하는 데 재주가 있는지 모르나 다른 일에는 어리숙해서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좀전에도 법당 뒤에서 수상한 짓을 하다가 쇠붙이가 든 보퉁이를 저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큰스님, 제가 큰스님을 따르겠습니다."

홍주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도원까지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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