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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호 7번 박근혜입니다"

[총선 현장] 진화하는 '친박개그'…대구는 헷갈려

2일 오후 5시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청구코아 앞 사거리, 건널목 초입마다 하얀 티셔츠를 입은 선거운동원들이 저녁 장을 보러 오는 주부들을 맞으며 곱게 허리를 숙였다.

"기호 7번 박근혜입니다."

무심코 명함을 받아든 한 주부는 '박근혜'란 소리에 퍼뜩 넣던 명함을 다시 꺼냈다. '살아서 돌아오라!! 박근혜'라고 쓰인 명함엔 과연 박 전 대표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웃는 남자가 바로 '기호 7번'의 주인공 무소속 이해봉 의원이었다.

'박근혜가 아닌데 박근혜라고 인사해선 안 되지 않냐'는 지적에 운동원 쪽에서는 "'친박 무소속 연대 이해봉'이란 풀네임이 너무 길어 줄이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후보를 소개하는 '키워드'가 제 이름 석자가 아닌 '박근혜'가 돼 버린, '친박 무소속'의 웃지 못 할 현주소였다.

이해봉 "나를 뽑아 오만한 한나라당을 심판"
▲'친박 무소속' 이해봉 후보의 유세. 차량 전면에 박근혜 전 대표와 나란히 한 사진을 넣은 것이 눈에 띈다. ⓒ프레시안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달성 농성'의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힌다. 박 전 대표야 측근들이 대거 낙천된 이번 공천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타지역 유세를 마다하고 있지만, 지역구가 달성군에 맞닿아 있는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온기에 힘입어 한나라당 권용범 후보와 경합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발표된 YTN-TBC-영남일보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의원은 40.9%의 지지를 얻어 권 후보(31.5%)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 한나라당 후보가 누리는 '여당 프리미엄'과 조직세 등을 고려할 때 이 의원 측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격차는 못 된다. 표본이 500명 수준인 여론조사마다 낙차가 존재해, 3일자 <매일신문>은 '이 의원과 권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간 여가가 날 때마다 달성군을 방문해 박 전 대표와 친분을 과시했던 이 의원은 유세에서도 '박근혜 마케팅'의 수위를 높여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이었다.

유세차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쳐내고 권력을 독점하려고 나를 버렸다"며 "당선돼 돌아가면 박 대표와 함께 한나라당을 개혁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이 오만한 세력을 이번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고도 했다.

선거 초반 '박근혜 지킴이'를 강조했던 연설이 '한나라당 견제론'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의원이 떠난 자리에는 경쾌하게 바꾼 애국가 곡조에 "한나라당 표적공천 국민이 심판해/ 이해봉이 앞장선다/ 우국충정으로"란 가사를 붙인 이른바 '심판가'가 울려 퍼졌다.

홍사덕 "나를 뽑아 박근혜를 당 대표로"
▲'친박연대' 홍사덕 후보의 사무실. 홍 후보는 자신의 당선을 차기 대권에까지 연결시켰다. ⓒ프레시안

박 전 대표의 지역구에서 도심 쪽으로 좀 더 멀어진 서구에는 홍사덕 전 의원이 '친박연대' 후보으로 출마해 있다. 홍 전 의원 측 역시 매일 쏟아지는 여론조사 간 격차가 상당해, 현재로서는 판세를 가늠키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일보>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홍 전 의원이 41.7%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종현 후보(30.1%)를 넉넉하게 앞서고 있었다. <KBS> 대구방송총국과 대구일보가 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홍 전 의원이 41.5%로 이 후보(25.7%)를 15.8%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매일신문>이 지난달 29일부터 1일까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분석한 판세에서 서구는 '오차범위 내 접전 지역'으로 분류됐다. 2일 <영남일보>는 홍 전 의원과 이 후보가 1.5%포인트 차로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홍 전 의원은 무선 마이크를 귀에 걸고 지프차 짐칸에 올라 지역구를 종횡무진하는 내내 "제가 홍사덕입니다. 제가 일을 아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란 두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 초반 주요멘트는 "박근혜당 후보입니다"였으나 뒤늦게 선거전에 합류한 이 후보의 추격세가 높아진 이후부터 소개말을 바꿨다고 한다.

사람들이 좀 모인 자리에선 "박 전 대표와 함께 총선 후 한나라당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홍 전 의원은 "총선 끝나자마자 강 대표는 대표를 내놓을 텐데 당에 온 지 석 달밖에 안 된 정몽준 의원을 대표로 모시겠냐"며 "자연히 박 전 대표를 대표로 모시자는 분위가 형성될 테고 그때 박 전 대표를 도와 당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정치적 선택에 앞서 '박근혜에게 좋은 쪽'을 고민하기 시작한 대구 정서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박 전 대표를 도와야할 자신의 역할을 함께 강조하는 방식으로, '홍사덕은 없고 박근혜만 있다'는 비판론을 피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근 10년 간 한 당만 찍었는데, 요새는 경기할 지경"

'당선 후 돌아가겠다'며 공약도 정책도 내놓지 않는 친박 후보들의 초반 발언도 논란 거리였지만, 복당을 약속한 마당에 이제와 견제론과 심판론을 구사하는 것도 어쩐지 아귀가 맞지 않는 듯 했다. "박근혜가 야당으로 나왔다"는 한 택시기사의 우스개 소리는 '친박 개그'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3일 비산동 롯데마트 앞에서 홍 전 의원의 유세를 지켜보던 40대 남성들의 '답 안 나오는 대화'는 친박 무소속 후보들과 친박연대 깃발 아래 모인 후보들, 그리고 자유선진당 후보면서 '박근혜 지킴이'를 자처한 곽성문 의원까지, 소속과 지향이 모호한 후보들의 난립한 양상에 헷갈리는 대구 민심의 단면인 듯 하다.

A: "친박은 한나라당 아이가?"
B: "와 아이라. 박근혜가 한나라당이니깐 친박도 한나라당이지."
C: "근데 와 6번이고? 저 앞에 2번은 뭐꼬?"
B: "한 당에서 두키(둘이)는 몬 나온데이. 저 사람은 한나라당 나온 사람이고 2번이 한나라당 사람이고."
A: "한나라당도 아인데 박근혜 얼굴을 저래 붙이나가 되나."
C: "내사 아나. 그런데 무소속은 뭐고, 친박연대는 뭐꼬. 우리 동네는 친박이 무소속으로 나왔든데."
B: "…"

곁에서 차장사를 하던 또래의 상인은 "근 십년 간 선거만 하면 한나라당 당만 찍었는데 요즘은 뭐가 뭔지 몰라서 경기할 지경"이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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