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 말에 행자는 가벼운 신음소리를 냈다.
유정과 손문욱, 박대근 등 사절단의 상상관 일행은 소 요시토시의 인도로 삼나무숲으로 제방을 이룬 자그마한 산중에 있는 작은 신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 곁에서 수직할 수하들 외에 해구, 오동수, 노진수 등이 이끄는 무리들 일부는 그대로 정박한 배에 남아 자고 다른 이들은 항구 가까운 민가에 나눠져 잠을 잤다.
"여기가 어찌 오랑캐들의 땅이란 말인가!"
사스나우라에 머무는 사흘 동안 사절단 일행의 입에서는 자주 이런 소리가 났다. 일찍이 왜인 출신 항왜 김충선으로부터 수도 없이 왜국 풍경 얘기를 듣고 다른 일행들에게 왜국의 풍광을 보고 감탄하지 말라고 했던 강진석과 하명구마저도 그런 소리를 수시로 입밖에 내곤 했다. 다다미로 된 방은 겨울이면 아주 춥겠다 싶었지만 아직 가을이라 견딜 만했고, 정갈하게 내오는 음식도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입에 맞아 깨끗이 비워낼 수 있었다.
대마도의 풍경이나 음식에 비해 어쩌면 더 놀라운 것은 왜인들이 사절단을 대하는 태도였다. 허리에 칼을 찬 사람들을 포함해 모두 공손했다. 특히 조선인 앞에 앉을 때 무릎을 꿇고 대답을 할 때는 큰소리를 내며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는 이들이 도리어 '저 왜인이 이제 곧 날 해치기 위해 부러 공손한 체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저 사람들이 입은 치마 같은 옷이 앞섶이 터져 있어서 앉을 때 우리 조선사람들처럼 양반다리를 하면 속이 훤히 보이게 되니까, 아마 그래서 무릎을 꿇고 앉는 듯합니다."
승나가 왜인들의 옷을 유심히 보고 제법 예리하게 짚어내자 하명구가 답했다.
"그건 그렇지요. 또 하나, 저 사람들은 일단 맞아들일 상대한테는 스스로를 낮추어 먼저 경청하고 잘 들었다는 대답을 명백하게 합니다. 내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칼을 찬 무인들이 서로 모든 뜻을 분명히 해서 쓸데없는 쟁투를 미리 막으려고 애쓰는 데서 생겨난 풍습입니다."
"그래도 귀로 들은 것과 와서 실제로 보는 것과 달라서 도무지 불편해 보이는구만."
옆에 있던 강진석이 곁들였다.
왜인들이 손님에 대해 배려하는 풍습이 원래 그렇지만, 소 요시토시는 이번 사절단 영접을 위해 참으로 성심을 다했다. 통사 박대근이 사스나우라 항 곳곳에 붙은 방을 보고 그것을 설명했다. 그 방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 모든 뱃길에서 조선 사절단 배를 만나면 우선 지나게 하라.
- 말과 풍습이 다른 조선 사람들에게 무조건 양보하고 친절히 대할 것. 만일 분쟁을 일으킬 시 엄벌에 처함.
- 집과 도로를 깨끗이 할 것. 특히 숙소로 정해진 집은 머무는 곳을 매일 청결하게 유지할 것.
- 조선 사절단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 있지 말 것. 특히 상륙할 때는 더욱 엄금함.
- 조선 사절단에게 물건을 달라고 하지 말 것. 특히 붓이나 필적을 요구하지 말 것.
- 조선 사절단의 개인과 사사로이 물건을 교환하면 엄벌에 처함.
이러한 방은 사절단의 배가 사스나우라를 떠나 와니우라, 도요우라[豊浦], 니시도마리우라[西泊浦], 고후나고시[船頭港]를 거쳐 부중 이즈하라에 드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즈하라에 도착한 이튿날 이른 저녁 무렵에 소 요시토시는사절단을 환영하는 연회를 크게 열었다. 열흘 가까이 있는 동안 대마도 전역의 헐벗고 굶주림이 눈에 잡혔지만, 조석으로 나오는 음식이 소홀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만큼 성심을 다하고 있다는 게 역력해 보였다. 그렇게라도 사절단의 마음을 풀게 하려는 것이 소 요시토시의 계획이기도 했다. 이즈하라의 객사에서의 연회는 그런 중에도 가장 극진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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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음식이 남달랐다. 미역이나 다시마, 감태, 톳, 우뭇가사리, 모자반 같은 것만 하더라도 육지 사람들이 자주 즐길 수는 없는 것들인데, 방게, 꽃게, 말똥게, 홍게 등의 게 종류도 다양했고, 전복죽이나 조기졸임, 꼬막졸임, 홍어절임이나 새우구이 같은 건 참으로 별미였다. 여기에 일본 본토에서도 귀족들만 마신다는 사케가 곁들여져 쉽게 흥취가 돋구어졌다.
사절단 일행의 얼굴에 화색들이 돌자 소 요시토시는 유정에게 조선과 일본의 강화에 교량 구실을 해야 하는 대마도의 사정을 간곡하게 설명했다.
"대사께서는 승려의 몸으로 친히 칼을 들고 전장에 나서신 분이라 저희 쓰시마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믿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쓰시마는 기실 일본의 나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깝기도 조선에 훨씬 더 가까울뿐더러 은혜를 입었으면 조선에 더 입었지 일본 본토(혼쥬)의 은혜를 입은 것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말도 일본 말을 쓰고 옷도 집도 모두 일본 풍에 더 가까웠습니다. 일본 혼쥬가 힘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혼쥬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또한 조선의 도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조선과 일본이 싸우면 정작 먼저 등이 터져 죽는 게 바로 저희들입니다. 부디 두 나라가 강화를 해 주셔야 합니다."
대마도의 승려 겐소와 통사 박대근이 소 요시토시의 말을 유정에게 옮겨 주었다. 유정은 고개를 꼿꼿이 들어 소 요시토시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마도의 사정을 내가 왜 모르겠소? 일본 국왕 또한 조선과 강화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면서 조선 조정에 친서를 보낸 게 아니오? 한데 지금 듣자하니 조선이 서둘러 나서서 일본과 강화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하는군요."
"아,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오라......"
나름대로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인 연회로 마음을 열겠거니 했던 소 요시토시는 이내 자세를 바꾸고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 에도[江戶]에서 관백 도쿠가와 이에야스 쇼군이 조선의 사절이 왔다는 기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막 조선의 사절이 쓰시마에 당도해 계심을 알리는 파발을 보냈으니, 에도에 머물러 계시는 관백께서도 그걸 읽고 경도로 나오실 것입니다. 대사께서도 그때를 맞추어 경도로 입경을 하시고 만나서 강화에 대한 논의를 하시면 되실 것입니다."
"도주는 어째서 교토에 일본의 국왕에 대해 말하지 않고 에도에 있는 쇼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요? 일본에서는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국왕이 아니라 바쿠후의 쇼군인 게요?"
유정은 짐짓 일본 조정이 어떻게 편성되는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진영에서 강화 문제로 일본 사람들과 대적할 때만 해도 일본 국왕과 쇼군의 관계를 얼른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탐색사로 발탁이 된 뒤로 도일 준비를 하면서야 비로소 일본의 국왕은 중국의 황제나 조선의 국왕과는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겐소가 소 요시토시를 대신해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국왕을 덴노[天皇]라 하는데, 덴노는 마치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새 같은 구실만 할 뿐 나라를 직접 통치하는 일은 모두 쇼군이 합니다. 쇼군이 주도하는 조정을 바쿠후[幕府]라 하지요. 조선 침략을 명령한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쇼군의 지위는 그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 태자에게로 승계되었으나 지금은 히데요리 태자의 후견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이묘께서 쇼군으로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지금은 관백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교토가 아니라 다이묘 시절의 본거지인 에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관백이 교토로 오십니다."
"그 동안 조선과 강화를 하려고 여러 차례 포로를 보내고 사신을 보내온 것이 도쿠가와 쇼군의 뜻이오, 아니면 대마도 번주의 뜻이오?"
유정은 알고 있으면서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쇼군이 여러 차례 친서를 보내 저에게 이르기를 반드시 조선과 강화를 해야 한다 했습니다."
소 요시토시는 진땀을 흘렸다.
(이 소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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