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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구와 프랑스 가구의 차이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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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구와 프랑스 가구의 차이점은?

[김재규의 앤티크 이야기]<2> 정치사와 문화사가 한 눈에

가구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와 문화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면 극명하게 대조적이어서 흥미롭다. 그 이유는 정치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터이다.

프랑스의 루이14세와 비견될 만한 인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 여왕을 꼽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은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자유무역주의가 신봉되면서 국제적인 거래를 통한 경제의 활력을 얻게 되고 의회주의가 발전하면서 전제군주국가인 다른 국가와 달리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어진다.

영국의 가구들을 살펴보면, 가정생활에 필요해 고안된 아름다우면서도 쓸모 있는 좋은 가구들이 상당히 많다. 정치제도와 생활 문화가 일찍이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실용화되었기에 그들의 가재도구들에서도 그러한 정서가 반영되고 있어 앤티크 컬렉터들을 즐겁게 한다.

조지2세 시대의 치펀데일 스타일의 마호가니 티 테이블. 사용하지 않을 때는 상판을 접을 수 있어, 영국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실용적인 가구지만 중국 영향을 받아, 볼을 잡고 있는 동물의 발톱이 인상적이다.

프랑스 가구들이 중앙집권적인 왕권의 취향과 일치하지만 영국의 경우는 중산층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젠틀맨들이 하원을 차지하듯, 수요자의 요구로 시장이 발전하였기 때문에 그 중심에는 실용(實用)이라는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국의 르네상스는 상당히 늦게서야 꽃을 피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그 시대의 인물이듯이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건축도 활발해지고 당연히 가구의 수요도 넓어진다. 당시 가구들은 비교적 고딕적인 요소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목재도 영국산, 즉 오크를 주로 사용한다.

1670년까지를 주로 오크 사용기로 보는데 그러나 점차 가구 수요가 늘어나면서 목재 부족 현상이 대두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다. 이때 고급 목재이면서 표면 광택이 아름다운 월넛, 즉 호두나무를 사용하게 된다.

앤 여왕 시대 스타일의 호두나무로 만든 로우 보이(lowboy-작은 서랍이 달린 책상)로서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을 준다. 앤티크 가구로서 인기가 높은 이유는 호두나무 특유의 색상과 작고 장식적인 요소 때문인데, 영국적인 요소가 잘 드러나는 디자인이다.

호두나무는 주로 프랑스에서 수입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통나무로만 사용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베니어를 만들어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이 나타나고 현재 앤티크 마켓에서 찾을 수 있는 당시 가구들을 고를 때 이 점을 참고하여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정치적으로 자주 마찰이 있어왔기에 수출이 중단되면서 일찍이 묘목을 심어놓았던 호두나무를 베어서 쓰긴 하지만 다른 공급처를 찾게 된다.

이러한 목재부족 상황 하에서도, 이 시기에 영국 가구는 매우 아름다운 디자인과 뒤어난 장인 손맛으로 최고급의 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이때가 예술사조로 보자면 바로크 시대에 해당하는데 종교적으로 프랑스를 피해온 위그노들에 의해 그 영향을 받는다. 당시 왕권의 잦은 교체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정치적 변화들이 그대로 가구에 반영된다.

한 예로서 네덜란드에서 온 윌리엄 앤드 메리 여왕을 들 수 있는데, 그 부부 왕은 당시 상당히 자유로웠으며 예술적으로도 비교적 높은 문화의 질을 구가하던 플랑드르 지방에서 왔기에 문화와 예술도 함께 묻어온다. 이때 다니엘 마로, 젠센 같은 위그노 장인들이 영국에 오면서 가구 디자인도 크게 달라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도와의 교역으로 케인(Cane-등나무)을 의자에 사용하는 기법이 나타나고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중국의 영향은 매우 커서 앤 여왕 시대의 의자에서 확연히 나타나는데, 의자가 인체공학적인 요소로 등받이의 곡면이 등의 굽은 부분과 유연하게 일치하여 종전의 가구들의 갖는 경직성을 탈피하였다.

루이15세 스타일의 코모드라 불리는 가구로서, 금빛 오물로 장식이 한 눈에 영국 가구와는 대별되는 특징이다. 코모드는 대표적인 프랑스 스타일 가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옻칠 가구의 등장이다. 반짝이는 까만 표면의 옻칠 가구는 표면처리 기법에서 당연히 비교될 수 없는 하이테크였으며 가격도 매우 비쌌다. 이때는 이미 중국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물밀 듯 들어오고 차(茶)도 마시기 시작한다. 이러한 중국식 고급문화에 매료되면서 나타난 현상을 시누아즈리라고 부른다. 이후에도 시누아즈리는 영국 가구에서 큰 공헌을 하였다.

조지 왕의 등장을 열리게 되는 조지 시대에 특별히 남방 목재인 마호가니가 등장한다. 이는 영국이 국지적인 경쟁에서 세계적인 국가로의 변화, 즉 해양 제국으로 멀리 남쪽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다양한 목재들이 본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가공도 쉽고 표면 색깔도 아름다운 마호가니는 이후 영국 가구의 또하나의 특징으로 남았다. 브리티시 엠파이어의 깃발을 휘날리면서 세계를 호령하던 조지언 시대는 가구에서도 다양성과 훌륭한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한다.

그 가운데서 치펀데일의 디자인은 오늘까지도 가구 디자인의 전형으로 회자된다. 고딕 전통의 바탕에 프랑스 로코코양식의 장식성과 중국의 이국적인 모티브를 조화롭게 사용한 디자인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히플화이트나 쉐라톤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그 뒤를 이으면서 조지언 시대는 그야말로 가구의 르네상스를 구가한다.

독일의 하노버 왕가에서 온 세 명의 조지 왕은 로코코와 네오클래식, 그리고 앙피르 사조를 걸쳐 있어서 한마디로 그 양식을 규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마호가니를 사용했으며 영국 특유의 질감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편 이 시대에는 미국으로 이주한 장인들에 의해 영국 가구를 본떠서 만들기 때문에 신대륙의 가구는 비슷한 경우가 많다.

오크로 제작된 아트 앤 크래프트 스타일의 맨틀 클락. 특별한 장식 없이 영국 특유의 전통적인 디자인의 특징을 보여준다.

조지 시대가 마감하면서 영국에서는 빅토리안 시대가 열린다. 세계가 급속히 바뀌는 시대였음을 감안한다면 여왕의 재위가 64년이었으니 길고도 길었다. 이 시대에는 기계를 이용하는 대량생산체제로 모든 산업 구조가 바뀌니 가구산업도 예외일 수는 없었으리라. 이로써 영국 가구는 종전까지의 크래프트맨쉽을 상실하고 길드도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

이를 염려한 이들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한 그룹들이 나타나서 아트 앤 크래프트(Art and Craft)운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윌리엄 모리스와 존 러스킨 같은 이들이 있었다.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은 오늘날 학자들과 기업에서 새로이 조명 받고 있다. 문화경제학의 태두로서 노동자들의 문제와도 결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가구로만 보아도 영국은 세계에서 매우 큰 업적을 남긴 특별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만일에 영국조차도 다른 국가들처럼 전제국가로 유지되었다면 오늘과 같은 앤티크 가구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국 가구는 그 쓸모와 다양성에서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혀 앤티크 마니아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필자. 김재규 앤티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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