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러저러한 기념일이 많습니다. 설날, 경술 국치의 날, 3.1만세 기념일, 해방 기념일, 하늘이 열린 날, 법의 날, 농민의 날, 결혼기념일 등등 참으로 거의 모든 날마다 기념해야 할 무엇이 있습니다.
그런 기념일 가운데 특히 자신의 생일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태어난 날도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대한민국의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입니다. 북괴(이제는 죽어 박물관에 전시된 과거의 유물인 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왠지 요즘에는 슬그머니 다시 박물관 규정을 뜯어고치거나 헌법재판소 재판을 통해 '훔쳐도 도난은 아니다'라는 판결이라도 받아 다시 써야만 할 것 같은 반공 국시의 구호 용어를 한 번 써보겠습니다), 즉 북한괴뢰(그런데 이제는 누구의 꼭두각시지요!!?)), 정식 명칭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한의 생일은 남한보다 며칠 늦은 1948년 9월 9일입니다. 미국이란 나라도 대영제국과의 식민지해방 투쟁에서 승리한 뒤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1776년 7월 4일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11월 13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아주 특별한 날, 생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불구덩이 속에서 선언한 그 순간부터 비로소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자각된 운동으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 한국전쟁으로부터 20여 년 동안 노동운동은 반공 정신병동과 똑같았던 암흑의 남한 사회에서는 빨갱이 운동으로서 아예 싹조차 틔울 수 없었습니다.
전태일의 분신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종교인, 지식인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태일이 밝힌 햇불 아래 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한 임금을 받으면서 청계천의 지옥같은 다락방에서 폐병에 걸린 채 일하고 있던 열 서너살 어린 노동자들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전태일의 외침은 착취와 억압의 굴레 속에서 강제 노동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노예 노동자들, 노예 종교인들, 노예 지식인들에게 자신들이 사실은 노예였음을 깨닫는 일대 각성의 종소리였습니다.
| ▲ 전태일 열사 |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그렇게 전태일과 함께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억압과 착취와 노예 생활
그 이후 오늘날까지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향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내내 노동자들은 전태일의 헌신과 과감한 투쟁을 되살려내며 노동자가 사람 대접을 받는 세상을 위해 싸우고 그리고 또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감옥에 가고,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전태일과 전태일을 뒤따랐던 무수한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 과연 한국 사회는 노동자들이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고 사는 그런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암담한 생각만 듭니다.
전체 1,650만 명의 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약 850만 명이 생활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입니다. 더구나 그 가운데 450만 명이 시간당 5천원 정도의 임금 밖에 못 받는 저임금 계층입니다.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만 해도 자그마치 210만 명이나 됩니다. 물론 정규직도 언제 구조조정을 당할 지 모르는, 파리 목숨의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기는 비정규직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업자 수는 사실상 3백만 명이 넘습니다. 실업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청년실업자들도 해마다 나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살 길이 없어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1987년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노동운동의 폭발과 함께 노동조합이 급증하면서, 해마다 임금과 근로조건이 몰라보게 개선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대 초반에는 이제는 노동자들도 사람 대접 받으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부풀어 오르던 때도 잠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엠에프 이후 구조조정의 칼바람과 함께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쌓아올려 놓았던 노동조건 개선도 하나씩 하나씩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 기업주들은 천문학 숫자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정치권력은 이를 나누어 가지기에 바빴습니다.
민주정부라고 불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오히려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집값은 더 올라갔습니다. 구속되는 노동자들 수도 더욱 늘어났습니다.
결국 급기야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는 실업자는 간첩이 되고야 마는 참으로 참담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최근에 시민들에게 뿌린 전단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여관, 여인숙, 고시원, 원룸, 하숙집, 월세방 등에 장기투숙하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주변사람의 접촉을 꺼리는 사람"을 간첩으로 신고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실업자들이나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가족도 해체되고 만 신용불량자로서 자신의 집도 절도 없는 오갈 데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그런데 간첩(!) 이라니요.
며칠 전인 11월 7일에는 서산 시청 앞에 설치되어 있던 동희오토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농성 천막이 칼을 든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할아버지들에 의해 찢어지고 부서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베트남참전 용사들인 할아버지들은 해고자들은 남녘에서 올라온 간첩들이며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빨갱이라며 폭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북에서 내려온 간첩도 아니고 남녘에서 올라온 간첩이라니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이것이 지금의 한국 노동자들의 처지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국 사회를 착취의 거대한 노동수용소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싸우지 않고는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여전히 싸워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는 이같은 말도 안되는 노동수용소, 노예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전태일이 39년 전 보여주었던 숱한 노력과 투쟁은 이를 충분히 웅변하고도 남습니다. 아니 전태일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예의 삶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사람답게 살고자 몸부림쳤고, 기업주와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무수히 노력했지만, 최후에는 투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수십 배 수백 배 더 싸워야 할 때입니다. 이 말도 안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같이 더불어 고루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예의 순종에서 벗어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더욱 과감하게 불의의 세력과 싸워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혼자서 싸워서는 안되고 노동자들 모두가 뭉쳐서 싸워야 한다고.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남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은 그동안 뭉쳐서 숱하게 파업도 하고 단위노조를 넘어서 연대파업도 하고, 총파업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왜 오히려 점점 더 양극화는 심화되고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나빠졌던 것일까요.
다시 사람들은 말합니다. 노동자들 일부만 뭉치면 힘이 없고, 전체 노동자가 뭉쳐야 한다고. 일이십만 명이 아니라 수백만, 아니 천만 명의 노동자가 다 뭉쳐야 한다고.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단위 노조에서도 전 조합원이 참여하지 않는 파업은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전국단위 총파업에 고작 몇 십만 명이 참여하고 만다면 파업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전태일은 단 1명의 투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투쟁을 수십년 동안 이끌어 왔습니다. 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수십만 노동자들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공감을 얻고 지지를 얻는 투쟁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요.
전태일이 추구했던 노동사회, 모범업체
문제는 노동자들의 투쟁 목적이 단지 자신의 더많은 임금, 더 좋은 근로조건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솔직히 그저 배부른 노예를 지향하는 투쟁일 뿐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제 아무리 고상한 구호를 내걸고 투쟁한다해도 그 투쟁은 결코 수많은 노동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대안없는 파괴와 대책없는 요구에만 머문다면 그것 또한 솔직히 오직 이윤만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기업주들의 외눈박이 착취 억압과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킬링필드처럼 기업주들을 모조리 죽이는 흉폭한 투쟁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모두가 사람답게 살자고 외치면서 상대방을 모조리 죽여버리자고 배제하는 투쟁이라면 한국전쟁의 소름끼치는 민간인 학살이 증언하듯이 결코 인간다운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뚜렷한 사회정의의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명확히 상부상조의 공동체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투쟁은 결국 노동자들 자신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전태일은 결코 자신만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은 점심 사먹을 돈으로 풀빵을 사서 점심을 굶고 있는 나이 어린 시다들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사랑을 실천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기업주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도 설득하려고 애쓴 대화와 소통의 실천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전태일은 한국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과 투쟁 사회가 아니라 만인이 서로 돕고 서로 협동하는 상부상조의 공동체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 젊은 청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근본에서부터 순수한 그의 이상이 있었기에 수많은 노동자들과 학생들, 일반 시민들이 전태일의 투쟁에 공명했던 것입니다.
전태일은 단지 불평불만과 요구와 투쟁만 하는 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고 무엇보다 불의와 경쟁의 사회를 정의가 실현되는 공동체 사회로 바꾸고자 했습니다.
전태일이 죽기 전에 구상했던,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지키는 모범업체 설립 구상을 보면 그가 추구했던 이상의 한 단초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투쟁을 넘어서서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11월 13일, 공동체의 날
한국 노동운동은 위기을 넘어 희망의 근거조차 사라진 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기업별 노조의 구렁텅이에 갇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의 소리마저 들립니다.
이제 한국 노동운동은 이런 모멸의 평가와 한탄을 들으면서 억울해하는 소아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에서는 우선 내 코가 석자라는 주식회사 사장들과 똑같은 단기 성과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입니다. 노동자들끼리도 서로 우애가 없다면, 서로 환대하는 정신이 없다면 단결은 커녕 결코 새로운 공동체 사회로의 전환은 불가능합니다.
한국 노동조합은 모래알처럼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서로 도우면서 살자고 뭉친 공동체였습니다. 1970년대 내내,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인 기초 공동체 성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에 노동조합은 공동체 정신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만, 이해관계와 주판알, 그리고 권력집단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정파만 난무하는 교섭단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정규직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정규직을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노동조합을 공동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이 공동체 정신을 다시 되살려 회생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지역공동체 재조직화의 기초로 들어가야 합니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다름아닌 지역노동조합 조직화입니다. 또한 노동자는 기업체의 조직원이자 또한 지역 주민이기 때문에 지역의 수많은 협동조합과 공제조합같은 기초 공동체 운동에 나서야 합니다.
39년 전 전태일은 노동자가 인간이 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사람들에게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공동체 사회가 전혀 아닙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과 투쟁만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받는 노예 검투사들의 사회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막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잘먹고 잘사는 권력자들이나 정치인들, 기득권자들이 아닙니다. 밑바닥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각성해서 바꿔내야만 합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부르짖음이, 4대강 삽질의 신음소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탄이 전국 방방골골에서 처참하고도 암울하게 환청처럼 들려오는 오늘날 이 파괴와 절망의 한국 사회에서 다시 전태일은 우리에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말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생일인 오늘, 11월 13일, 전태일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고, 불의를 깨부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공동체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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