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포를 덜어 주는 상점가의 전깃불, 여전히 판매대 군데군데가 비어 있지만 어쨌든 제 기능을 하고 있는 편의점, '휴업' 간판을 볼 수 없는 주유소 등, 17일 니가타에선 여전히 도시의 활기가 살아 있었다.
역 앞 술집 '캇포기'의 종업원 후지사와 유미 씨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 따른 방사성 물질 유출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긴 거리가 멀어 안전하다"고 고개를 저으며 하던 일에 집중했다.
▲ 니가타 시내 한 술집에서 TV의 지진·원전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
술집 TV에서는 여전히 재난 방송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술상에는 지진과 방사성 물질 유출이 화제에 오르긴 했지만, 손님들은 여전히 일상적인 웃음과 담소를 시끄러이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알람소리와 함께 방송 화면이 '지진 경보'로 바뀌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잡음 많은 라디오의 볼륨을 'MAX'에서 '음소거'로 돌린 듯한 극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잠시 후 경보 발령 지역이 도쿄, 치바 등 태평양에 면해 있는 곳임이 확인되자, 사람들의 분위기는 언제 놀랐냐는 듯 반전돼 다시 떠들썩해졌다.
이번 지진으로 당장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은 이곳 주민들은 이번 참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추가 피해에 대한 걱정은 미뤄두는 눈치였다. 젊은 남녀 한 쌍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구성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진압 영상을 보면서 "저게 뭐냐"고 낄낄대기도 했다.
▲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 동북 지방에는 이날 엄청난 폭설이 내려 이재민들을 더욱 움츠리게 했다. 센다이에서 니가타로 가는 길 야마가타(山形)현 난요(南陽)시의 거리 풍경 ⓒ프레시안(최형락) |
▲ 일본 동북부 히가시마츠시마 대피소에서 주민들이 방송 보도를 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멀리, 저 멀리… 현 바깥으로 떠나는 피난민들
그러나 비교적 평온한 이곳에도 불안을 한 짐에 지고 온 사람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정부의 구호나 지원을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일찍이 자신의 힘으로 임시 피난소와 고향을 떠나 온 '자발적 피난민'들이다.
JR 니가타역 '미도리노 마도구치'(녹색 창구)에서 만난 대학생 다케다 마치코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센다이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날 밤 니가타로 온 그는 다음 날 하룻밤을 묵고 도쿄로 향한다고 했다. 도쿄의 직장에 다니고 있는 언니와 만나 앞으로의 거처와 생활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커다란 수트케이스 손잡이를 쥐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겨우 들릴 정도로 힘이 없었다.
다케다 씨는 "지진 때문에 학교 개강이 4월 말로 미뤄졌는데, 그때까지는 일단 센다이를 벗어나 있을 작정"이라며 도쿄의 언니 함께 큐슈(九州) 나가사키(長崎)시에 사는 고모 집으로 이동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자발적 피난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방사성 물질 유출에 대한 정부 발표가 명확하지 않아서 언제까지 이런 불안한 기분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커피전문점 '도토루'도 식재 부족과 정전 등으로 이미 할 일이 없어진 상태다. 언제까지 기약 없는 이동 생활을 계속할 거냐고 묻자 그는 "일단 학교 수업이 시작하는 4월 말까지"라고 답했다. 그는 그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직장 때문에 센다이를 떠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니가타 지역의 민방 <BSN 니가타>도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일시적 '이산'을 선택한 가족들의 사례를 보도했다. 2살 난 여아 오구라 미치루 양의 부모는 후쿠시마(福島)현의 한 대피소에서 생활하던 중 자신들이 먼저 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독감에 걸려 현재 대피소에 마련된 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오구라 부부는 아이가 낫는 즉시 자신들이 새로 튼 둥지로 데려 올 계획이지만, 이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렇듯 지진 피해 권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이들이 늘면서, 호텔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니가타역 근처 대부분의 호텔은 지진 발생 이후 '만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린 호텔'의 관리인 사카이 켄지 씨는 "최근 1주일 사이 손님이 급격히 늘었다"면서 "예전에는 이곳에 출장 손님이 많았지만 요즘은 후쿠시마에서 피난 온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판단을 할 수라도 있었으면"
일본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난민은 38만 명 이상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살던 지역의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피난소가 꽉 차면서 정부·지자체의 지원에 따라 좀 더 먼 곳으로 몸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南相馬)시의 주민 213명은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지원에 따라, 군마(群馬)현 산간부의 리조트 호텔로 전부 피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을 잃거나 몸을 다치지 않은 경우 정부의 인솔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케다 미치코 씨와 같은 자발적 피난민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된 공포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 언제 어디로 퍼질지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물질에 대해 기자 역시 취재 내내 마음을 졸이며 움직였다. 원전 지역으로부터 반경 100km 바깥에 떨어져 있어도 눈과 강풍을 맞으면 찝찝했다.
▲ 도쿄 한 슈퍼마켓의 텅 비어가는 진열장. 사재기가 없다고 하지만 물자 부족은 눈에 띄지 않는 사재기가 있음을 방증한다. ⓒ김성하 |
수도 도쿄에서도 이 불안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비행기 편, 물자, 정보가 가장 많이 몰려드는 도쿄이지만 인근에까지 방사성 물질이 미량 검출됐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중되고 있지만, 판단을 내릴만한 분명한 단서가 있는 게 아니라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도쿄 스기나미구 고엔지(高円寺)에 사는 유학생 김성하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도대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으니)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집에서는 일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돌아오라"고 야단이지만, 자신의 생활을 제쳐두고 갈 만큼 위험한지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멀리 떠나거나 한국에 잠시 피신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의 일정 결정에 기준이 되는 학교마저도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는 학교 측에 개강 일시를 묻자 "아직 우리도 회의중"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의 여자 친구인 노시타 마사요 씨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원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큐슈의 오이타(大分)현에 사는 그의 부모님은 공영방송 <NHK>의 보도를 전적으로 믿고, 정말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올 때까지 일단은 기다리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네다나 나리타 공항이 붐비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서울 명동에 해당하는 신주쿠·시부야 등지에서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의 행렬과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자신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버해서 어디론가 도망갔는데 나중에 아무 일도 없다면 확실히 바보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는 힘들다"면서 "제발 도쿄전력과 정부가 정보를 확실히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집을 잃은 피해 주민들과 달리, 위험 물질이 멀리까지는 퍼지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면 금세 '돌아갈 곳'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학업, 직업 등을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안한 날을 이어가고 있을 수밖에 없다.
▲ 피난소의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프랑스나 미국이 하는 것처럼 한국 정부에도 귀국 권고 공문서가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과연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떠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에 본사를 둔 의류 기업 'H&M' 일본지사가 도쿄 내 점포 휴업 결정을 내리고, 본부 기능도 도쿄에서 오사카의 호텔로 옮긴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H&M 일본지사는 17일 도쿄 시부야에 근무하는 직원과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사원 및 아르바이트까지 총 800명을 간사이(關西) 지역 호텔로 피난시키기로 결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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