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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이 왜 무서워요?"…경제 위기 없는 도시가 있다!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를 찾아서·1]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의 파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장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면서도 공황, 실업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주목해야할 곳이 바로 이탈리아 볼로냐다. 이곳은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금융 공황의 타격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인 실업 문제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볼로냐 경제의 틀인 '협동조합'에서 찾고 있다. 길게는 1000년 이상을 이어온 협동조합이 '오래된 대안'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이런 상황에 주목해 10회에 걸쳐서 볼로냐의 협동조합의 현장을 살피는 기획을 선보인다. 이 기획은 국내의 대표적인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공동으로 진행한다. 한살림은 해외 연수단(김태열·김현경·우미숙·전홍규)을 꾸려 미국발 금융 공황의 파장이 심각했던 2009년 8월 30일부터 9월 7일까지 볼로냐를 직접 방문했다.

이 연재는 매주 화, 목요일 발행된다. <편집자>

▲ 볼로냐 마조르 광장 근처 100m 높이의 아시넬리 탑에서 내려다 본 시내의 모습. 촘촘하게 들어선 저층 주택과 좁은 골목, 온통 붉은 빛을 만들어내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한살림

볼로냐 마조레 광장 근처 100m 높이의 아시넬리 탑에서 내려다 본 시내의 모습은 붉은 벌판이었다. 촘촘하게 들어선 저층 주택과 좁은 골목과 도로. 온통 붉은 빛을 만들어내는 지붕들.

붉은 지붕으로 대표되는 붉은 색은 볼로냐 시를 상징하는 동시에 정치 색깔이기도 하다. 일찍이 사회주의 정당이 영향력을 가졌던 도시이고 그 정치적인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온다.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중심 도시 볼로냐는 로마·밀라노·피렌체·베네치아처럼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이드북에 소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름 없는 도시였다. 외국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년에 여러 차례 열리는 박람회 덕이다. 어린이 책 박람회나 유기농 박람회는 꽤 알려진 행사다.

주요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도시 전체가 번잡하지 않다. 70여 년이 지난 성곽 같은 건물이 시내 중심가인 첸트로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건물과 건물로 이어지는 아케이드는 볼로냐 건축만이 갖는 특징이다. 비오는 날 우산 없이도 비를 맞지 않는다는 말은 아케이드를 빗대서 나온 말이다.

거무튀튀한 보도블록이 돌출되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이곳저곳에 떠도는 담배꽁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겉으로 보기엔 도시 미관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풍경이지만, 낡고 더러워도 허물고 다시 만들지 않으며, 오래된 것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모습에서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옛것에 대한 고집이 보인다.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이 많이 배출된 것도 이유가 있었다.

고풍스런 건물과 장인들이 만들어낸 고급 의상·구두·장식품·가구는 이탈리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문화다. 피자와 스파게티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먹을거리는 세계인의 입맛을 당기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 이탈리아는 지역 경제의 큰 기둥 역할을 하는 협동조합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협동조합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 이탈리아이고,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중심 도시이다.

볼로냐 대학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경제학과)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성장의 원리인 경쟁이 뒤로 밀려나고 협동의 방식이 오늘날 경제 발전의 키워드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은행·소비·노동·문화·서비스 전반에 걸쳐 경제의 중심에 서 있다.

협동조합의 수도 볼로냐

볼로냐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5개 지역에 속한다. 경제적 악재의 영향도 덜 받는 곳으로 그 이유가 조직력이 강한 협동 기업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도시다.

볼로냐에만 4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있으며, 볼로냐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 50개 중에 15개가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GDP의 30%, 볼로냐가 속한 에밀리아로마냐 주 모든 생산 경제 활동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임금은 국가 평균의 2배이며, 실업률은 3.1%에 불과하다.

이렇듯 볼로냐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활발한 배경은 뭘까? 자마니 교수는 그 이유를 역사 속에서 찾는다.

"볼로냐는 중세 시대부터 군주제나 공화국의 형태가 아닌 자치 형태를 띠는 도시였다.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왕족이나 귀족이 없었다. 또 타인의 간섭이나 수직 지위 체계를 싫어했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서로 평등한 위치를 가지며 정착해 나갈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서로 돕는 걸 중요하게 여긴 관습도 한몫했다. 레가코프의 홍보 담당 마티아 미아니 씨는 "1000년 전부터 땅이 많은 사람이 주위 농민에게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경작하도록 한 일이 있었다. 지금도 큰 땅의 농사를 번걸아 짓는 풍습이 있다. 경작권을 골고루 나눠 갖는 형태가 오늘날 협동조합 정신의 기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볼로냐가 속해 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협동조합은 조직력이 강하기로 유명한데, 1800년대 후반의 가톨릭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도 이런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볼로냐에는 대기업이 없고 수동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려는 지역성이 협동조합 발전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 볼로냐 중심부 첸트로의 마조르 광장. 옛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도서관이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정치적 사안이 있을 때는 시민들의 토론이 벌어진다. ⓒ한살림

협동은 자연스런 삶의 방식

볼로냐 특유의 역사적 상황과 공동체 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한 협동조합이 새로운 경제적 대안으로, 새로운 사회의 모습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아갔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선택하게 했을까?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힘을 협동조합에서 찾는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사회적 문제는 실업이다. 고용 불안정으로 노숙자와 빈곤층이 늘어나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된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실업자를 수용하고 사회 서비스를 통해 생활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협동조합 안에서의 고용 불안정은 어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심각하게 떠오르지 않다. 미아니 씨는 "한 협동조합에서 실업자가 생기면 다른 협동조합에서 그 실업자를 고용하는 형식으로 협동조합의 틀 안에서 고용 불안을 해소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더 잘하는 것을 하고자 협동조합을 선택한다. 농업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유통의 지속성을 가지고자 여러 농업인이 조합을 만들 수 있다. 판매와 교환의 편리성을 위해 상인들이 조합을 만들어 상점을 낼 수 있다. 아이들을 돌봐줄 보육원이 필요할 때, 시설과 교사 아이들 모집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일을 마련하기 위해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내고 협동조합 연합체의 도움을 받으며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일을 시작할 때 협동조합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협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법과 사회제도가 밑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헌법 제45조는 협동조합 운동이 존재함을 알고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어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자연스럽다.

사기업과 달리 세제 혜택이 있어 협동조합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 협동조합은 일반 사기업과 똑같이 세금을 낸다. 하지만 이윤에 대해 사기업은 이윤 100%의 27.5%의 세금을 내지만, 협동조합은 이윤의 70%는 면제되고, 나머지 이윤 30%의 27.5%만 세금으로 낸다. 새 협동조합에 재투자하면 이에 대한 면세 혜택도 있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150여 년의 역사를 가졌다. 긴 역사만큼 협동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서비스를 하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그들에게 협동의 방식은 생활의 한 방법이고 살아가는 도구다.

21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 경쟁이 아닌 협동에 있다는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진단이 이탈리아에서 볼로냐에서 적용되고 있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

1981년부터 볼로냐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스테파니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에 관한 권위자다. 자마니 교수를 만났다.

▲ 볼로냐 대학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경제학과). ⓒ한살림
- 볼로냐 대학이 볼로냐 지역에서 어떤 공헌을 하는가?


1088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은 볼로냐에서는 가장 큰 기업이다.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 대학에 협동조합에 관한 과정이 있는가?

볼로냐 지역이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활발한 곳이니 만큼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비롯한 여러 과정이 만들어졌으며 세미나도 열린다.

- 석사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나?

졸업한 사람은 90%가 취직이 된다. 대부분 협동조합 시스템에 들어가고 중간 관리자로 들어가서 몇 년 안에 매니저가 된다.

- 볼로냐에서 협동조합이 활발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협동조합이 이곳에서 번성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계급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왕자, 백작, 공작이 없었다. 시민들은 주인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일해 왔기 때문에 협동조합이라는 구조는 평민들을 위한 최적의 시스템이 되어 주었다.

이러한 경제 체제 속에서 경제적, 사회적 약자 역시 보호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볼로냐에서는 일찍이 1257년에 노예를 폐지하는 법률이 생겼을 정도로 평등을 추구하는 지역이었다.

- 협동조합과 정치적인 성향과 관계가 있는가?

이탈리아에는 세 가지 뿌리가 있다. 가톨릭, 사회주의, 공화당(우파). 국기 색깔에도 나타난다. 협동조합도 각 계열마다 나뉘어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 달리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높은 실업률 속에서 실업자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일자리 창출은 당연히 지역 경제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어떤 정권이든지 성향에 관계없이 대부분 협동조합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다.

-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탈리아도 빗겨갈 수 없을 텐데, 협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하나?

특별히 대응하는 것이 없다. 망하거나 실업 문제도 없다.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선 충격이 크지만 이탈리아는 덜하다. 협동조합이 자동차의 서스펜션 역할을 해준다.

- 협동조합이 규모가 커지면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원칙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을 텐데….

그럴 위험이 많다. 덩치가 커지면 관리가 어렵고, 시작했을 때 가졌던 정신을 잃을 수 있다. 예전엔 협동조합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태어났지만 지금은 이탈리아가 부자가 됐다. 점점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리더들이 민주주의를 적용시키는 형태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 위험이 있다면 망하든지 사기업으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볼로냐에선 협동조합 정신을 잘 이어가고 있다.

- 협동조합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나?

산업화 이전에는 다른 이를 물리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개인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협동하는 것이 모두가 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서로 간의 협동을 통해 발전하는 양상은 사회가 평등한 구조를 이룰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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