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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땅에서 이제 편히 쉬십시오"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을 보내며]

'생명 운동의 대부' 인농(仁農)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오전 5시 20분 별세했다. 72세. 고인은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 입학해 4·19 혁명에 참여했다. 1964년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한일 협정 비준을 반대하는 6·3 운동에도 앞장섰다.

박재일 회장은 무위당 장일순 옹과 인연을 맺으면서 1969년 강원도 원주를 중심으로 주민자치운동, 협동조합운동을 펼치며 지역운동, 농민운동에 수십 년을 바쳤다. 특히 1986년 도시와 농촌이 함께 농업에 기반을 둔 생명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신념으로 한살림 운동을 시작했다.

한살림은 현재 22만5000여 명의 조합원과 2000여 가구의 생산자가 참여하는 한국 대표하는 생활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 바로 박재일 회장이 있었다. 박 회장은 최근에는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의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모색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장례는 한살림장으로 강남성모병원에서 치러진다. 발인 21일 6시 30분. 02-2258-5979. <프레시안>은 고인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던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추도사를 싣는다. <편집자>


인농(仁農) 박재일 형

▲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 ⓒ한살림
얼마 전 대구의 천규석 형과 함께 찾아갔을 때,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걸 보고, 왜 형한테 이런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지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현숙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하게 자란 다섯 딸들의 지극 정성이 담긴 눈물겨운 간호를 보면서 어쩌면 기적 같이 형이 살아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일말의 기대를 가졌었는데, 형은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형은 일생을 오직 일속에 파묻혀 일만 하다가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형을 '무던한 사람', '일만 하다가 간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서울로 다투어 몰려오는데 유독 형만이 보따리 짐 싸들고 원주로 내려갈 때부터가 그랬습니다. 원래 일 복을 타고 내어난 탓도 있겠습니다만, 형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선 것이 그 몇 번이었습니까.

원주교구에서의 재해대책본부 활동으로부터 시작된 저 끊임없이 이어지던 일, 해도 해도 끝이 없던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용협동조합 활동, 가톨릭농민회 활동, 그리고 만년의 한살림 운동에 이르기까지 형은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형은 한 번도 그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져야 할 짐이라면, 저 짐에 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한 줌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형은 언제나 그 짐을 기꺼이 맡아 지셨습니다. 형은 또 불의에 짓밟히면서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 가난이 제 탓만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도 언제나 솔선해서 그들의 짐을 맡아 지셨습니다.

또 형은 고생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습니다. 만학으로 대학에 들어와 한일협정비준 반대 투쟁으로 구속되면서부터 형의 고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장가는 갔으되 아직 시집은 안 온 상태에서 부인께서는 당신의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금호동 언덕배기에서의 신혼살림은 또 얼마나 간고했습니까? 그 이후 농민운동을 하면서 1970년대, 80년대에 몸과 마음으로 겪은 고생은 얼마나 컸습니까.

형은 건강한 먹을거리 운동, 우리밀 살리기 운동, 유기농 운동, 농촌 살리기 운동, 한살림 운동을 뼈 빠지게 자신으로 몸으로 시작했습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주거나 덜 준 고추 푸대를 들고 동분서주하던 때가 어제 같습니다만, 지금 한살림 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형이 몸으로 일구어낸 성과라고 저는 믿습니다.

고생, 고생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좀 편하게 쉬었다 갈 만하게 되었는데, 형은 덧없이 이렇게 가시고 말았습니다. 일만 하시다 실컷 고생만 하시다 풍성한 추수로 영화도 보지 못하고 이렇게 가셨습니다. 이는 필경 형이 몸을 너무나 혹사한 탓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일도, 고생도, 고통도 없는 저 세상에서나 이제는 제발 편히 쉬십시오.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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