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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스펙' 쌓니? 우리는 '기적'을 만든다!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를 찾아서·5]

키친코프(kitchen Coop) : 홍보 기획 서비스 협동조합

대학가의 '스펙 쌓기'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스펙이라는 말은 영어, 'Specification'의 준말인데 원래의 뜻은 설명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취업 준비생이 갖추는 외적 조건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를 반영하듯 급기야 2004년에는 국립국어원의 신조어로 등록되기도 했는데, 학벌·학점·토익·인턴·자격증·봉사 활동을 갖추면 스펙 6종 세트요, 거기에 성형수술 이력까지 추가하면 7종을 마스터했다는 얘기까지 도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 그들, 협동조합을 두드리다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열중인 이 때 몇 명 안 되는 젊은이들이 모여 결성한 작은 협동조합을 수소문했을 때 키친코프(Kitchen coop)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연합 단체인 레가 코프(Lega coop)에 소속된 협동조합 중 가장 작은 규모라고 했다. 키친, 즉 부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음식과 관련한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인쇄 홍보물을 만들고, 그 외에 광고와 프로모션, 이벤트, 웹사이트 제작도 진행한다. 홍보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일은 모두 다 맡아서 하는 셈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안토넬라 디 비타(Antonella Di Vita) 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키친코프는 종합 광고 홍보 대행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이다. 디 비타 씨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우연히 레가 코프의 홍보물을 제작해 주었는데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 일반 회사에서 조직 생활도 해 보고, 프리랜서로서 자유롭게 일해 보기도 했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 방식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제도적 틀 안에서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그렇게 해서 2005년에 뜻이 맞는 다른 친구 2명과 함께 소규모의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한 사람은 편집 디자인을, 다른 한 사람은 웹 디자인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두 분야의 경력자들이 함께 합친 것이다. 부엌이라는 공간이 창조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키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많이 떠오르고, 무엇보다 '부엌'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을 사업체에 반영하고 싶었다. 또한 가정집에서 창업했는데, 실제로 주방에서도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일을 만들어 나갔다."

디 비타 씨는 키친코프의 출발에 대해 설명하며 본인이 대표를 맡기는 했지만 협동조합의 원칙대로 모두가 동등한 관계로 출발했음을 강조했다. 공동으로 출자했고,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은 함께 나누고, 출자한 만큼 배당한다고 한다. 디 비타 씨는 협동조합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이 모두 같은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작은 규모이고 일감이 불규칙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을 많이 한 사람이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구조였지만, 조만간 조합원 모두가 동일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개편할 예정이다.

▲ 키친 코프는 종합 광고 대행을 맡고 있는 협동조합이다. 집안에서 가장 창의적인 공간인 키친, 즉 부엌이라는 뜻으로 협동조합의 이름을 지었다. ⓒ한살림

힘을 합치면 더 강력하다

3명이 각각 3000유로씩 출자하여 설립했던 키친코프는 4년 만에 조합원이 6명으로 늘어났고, 한 해 매출은 약 9억 유로로 빠르게 성장했다. 일감은 넘쳐나서 프리랜서를 고용하거나, 외부 기획사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기도 한다. 광고·홍보 업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경기에 민감하지만 키친코프는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이탈리아 경기 전체가 좋지 않았을 때에도 큰 어려움 없이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는 작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고,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위험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협동조합은 우리 같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생각을 나누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혼자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키친코프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죠반니 바티스티네(Giovanni Batistine) 씨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도 협동조합으로 창업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이 내부에서 다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특히 공동 작업이 필요한 곳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그 안에서도 경쟁보다는 상호협력이 더 우선되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도 적다.

수평적 구조, 그러나 개인의 색깔은 선명하다

작은 규모라고는 하지만 키친코프는 분명 협동조합으로서 법적으로 정해진 기본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합원 전체가 참여하는 총회. 키친코프는 1년에 두 차례 총회를 여는데 한 번은 결산 보고와 예산 계획을 세우고, 한 번은 사업의 방향이나 주요 프로젝트에 대해 함께 논의한다.

이와는 별도로 키친코프를 처음 설립한 3명의 조합원이 사무국 운영을 맡으면서 회사 경영을 직접 챙긴다. 그러나 주요한 결정 사항은 총회나 사무국 회의 외에 조합원 전체가 모여서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이 역시 조합원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최근에 사무실을 옮긴 것도 전체의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

조합원 모두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자기만의 색깔이 강하고 민감한 편이지만, 단순한 직장 동료 이상으로 가족처럼 서로를 오랫동안 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첨예한 대립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키친코프의 조합원들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아트 디렉터를 하면서 창의적인 디자인 업무를 총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웹 디자인, 어떤 사람은 글을 쓴다. 그 안에서 다시 대표, 부대표, 평조합원 역할을 나눠 맡는데, 나의 경우는 경영 전반을 총괄하면서 카피라이팅을 하고 있다."

안토넬라 디 비타 씨는 철저히 민주적으로 운영하면서 조합원 각자가 지닌 강점들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키친코프의 운영 노하우라고 말한다.

"물론, 총회를 통해 대표를 새로 선출할 수도 있지만, 내가 관심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 일은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현 대표가 가장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 팀워크를 이룰 수 있어서 즐겁기도 하고, 이렇게 그림 그릴 수 있는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바티스티네 씨를 비롯해 다른 조합원들 모두 수평 속 구조 속에서 구성원들에게는 분명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 협동조합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 키친 코프는 6명의 조합원이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고 운영한다. ⓒ한살림

돈보다는 사람이 좋다

"사기업을 하면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일을 하는 건 돈만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다.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 가치를 뛰어 넘어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철학이 있는 것이다."

디 비타 씨는 뜻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삶과 일을 즐겁게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키친코프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합의 사업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창의성과 삶의 질을 해칠 정도로 무리하게 일감을 수주하지는 않는다.

이를 증명하듯 창립 조합원 중 한명인 파비아나 테렌지 씨는 2005년 설립 후 지금까지 단 한차례 야근을 해봤을 뿐이라고 한다. 단순 경제 논리를 벗어난 '협동'의 힘은 역설적이게도 경제 가치도 더불어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영업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우리에게 일을 맡기는 고객들은 대부분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협동조합이다. 고객사도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키친코프를 찾게 된다. 다른 사기업보다는 우리가 아무래도 작업을 의뢰하는 곳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맞춰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단체인 레가 코프도 많은 일들을 의뢰하는데, 다른 협동조합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또 지역의 대학이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도 저희의 고객이 된다. 이 지역 안에서 일감이 계속 순환되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 안에서 우리 역시 필요하면 지역 내 다른 협동조합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디 비타 씨는 이 때문에 키친코프가 빠르게 경영 안정화에 이를 수 있었고, 매출 자체의 증진보다는 업무 자체의 수준을 높이는 데 더 힘쓸 수 있었다고 한다. 내부 구성원 간의 끈끈한 협력이나 원활한 소통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외부의 다른 협동조합이나 지역 단체와의 협력 역시 사업의 확장과 발전에 큰 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삶과 꿈을 나누는 좋은 일터 만들기

협동조합은 불안한 미래를 전망하며 스펙 쌓기로 구직 활동을 이어가거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실현지를 찾아 헤매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도 가장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협동조합은 나 홀로 창업에 나서기보다는 그 위험도를 나눌 수 있는 면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또 협동조합의 가치가 점차 인정받고, 그 영역이 실제로 넓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볼로냐와 같이 협동조합 간 연대가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협동조합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주류의 세계를 곧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과 꿈을 함께 나누고,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노동의 주인으로서 일터에 설 수 있는 그 자체에 있다.
워커스 코프(Workers' Coop)·워커스 콜렉티브(Worker's Collective)

스페인의 몬드라곤에서 발달한 노동자 생산 협동조합의 형태로 '이곳에서 일하는 자가 자본도 경영권도 소유한다'는 가치에 기반을 둔다. 공동 출자를 기본으로 소외되지 않는 일의 방식과 분배는 물론, 근무지와 주거지의 지역 내 결속도 전제로 둔다.

일본에서는 워커스 콜렉티브(Worker's Colloective)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주로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는데,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협동조합'으로 발전한다. 일본에서 워커스 콜렉티브는 출자와 운영, 이용을 중심으로 내부 구성원 및 지역 사회가 결속한다. 같은 지역 내에서 출자, 운영, 이용하는 주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고, 동시에 경영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워커스 콜렉티브의 기본 가치에 따라 지역에서 꼭 필요한 업종이라면 어떤 분야라도 자유롭게 결성되는데 음식(배달)서비스·빵집·반찬 가게·육아 서비스·노인 복지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설립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일본식의 워커스 콜렉티브가 국내에 소개되었다. 2004년 강원도 원주에서는 교육·문화 워커스 콜렉티브 '멋살림'이 설립되어 지역 내 문화 행사를 기획하거나 홍보 인쇄물을 제작했었던 적이 있다. 이외에 한살림에서는 워커스 콜렉티브를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의 주요 활동 중 하나로 두고 지역이나 지부별로 워커스 콜렉티브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바느질을 전문으로 하는 '목화송이'와 '고운매', 반찬과 샌드위치 등을 만드는 '맛깔손', '행복한밥상'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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