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제도가 비교적 잘 정착돼 있다는 이탈리아 역시, 해가 져도 돌아갈 집 없이 불안한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루를 구걸로 연명하기도 하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소품을 팔거나, 악기 연주를 대가로 먹을거리를 얻기도 한다.
이중에 일부는 운 좋게 단순 노동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은 큰 변화 없이 계속된다. 볼로냐에서 이런 노숙자들이 함께 모여 결성한 협동조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종류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노숙인 자활 쉼터의 사람들
노숙자들의 협동조합이 수행하는 활동 중 대표적인 하나는 노숙인 자활 쉼터의 운영이다. 그 중 한 군데를 찾아갔는데,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Coop La Strada)을 비롯해 네 군데의 노숙인 협동조합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 곳 쉼터에는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통해 주거 불명자들이 입소할 수 있다.
이곳 쉼터는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 형태를 고려하여 낮 시간에는 닫혀 있다가 해질 무렵에야 상근자들이 출근하고 시설이 개방된다. 우리가 쉼터에 도착했을 때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는 입소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때 맞춰 들어오는 입소자들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니던 회사가 재작년에 갑자기 부도가 나서 준비 없이 일을 놓게 되었는데, 다시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는 일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사했고, 따라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어 혼자 남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지금은 일주일에 사나흘 공원 청소를 한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낼 예정이다."
"원래 고향은 폴란드인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혼자니까 오히려 간편하고 좋다. 일단 깨끗이 씻을 수 있고, 편안한 잠자리까지 있으니까 사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노숙인 자활 쉼터라고 하여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쉼터 앞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깨끗한 차림새에 자신의 의사 표시를 명확하게 하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곳 쉼터를 관리하는 노숙인 협동조합은 각각 1명씩 간사를 파견해 저녁 입소부터 다음날 아침 퇴소 때까지 입소자들을 돌보고 시설도 관리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노숙인을 위한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이 주간·월간 단위로 잘 짜여 있어서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의사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이들이 적합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다.
"가정 의학 전문의로 일하다가 얼마 전에 퇴직했다. 마냥 노는 것보다는 보람이 있을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서 진찰과 상담을 한다. 밤늦게까지 일은 고되지만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계속하게 된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병원에 가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작게라도 도울 수 있으니까 내 생활에도 활력이 된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의사 안드레아 아콜티(Andrea Accolti) 박사는 대부분의 노숙인이 적시에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작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작은 염증으로 시작했는데, 미처 간단한 치료를 받지 못해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노숙인이 발생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생활이 안정 되지 않는 사람들은 작은 불편함에 무신경한 경우가 많아서 가능하면 자신이 입소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챙긴다고 한다.
▲ 노숙인이었지만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찾은 바티스티니 씨. ⓒ한살림 |
길거리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된다는 것
쉼터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중에 침대 정리를 하고 있던 한 청년을 만났다. 눈에 띄는 신체 부위 구석구석에 빼곡하게 문신을 그려놓은 그는 입소자 같기도 하고, 쉼터 관리자인 것 같기도 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한 때는 이곳의 입소자였다. 이제는 라 스트라다(La Strada) 협동조합의 간사로서 이곳 쉼터가 직장이다. 또한 라 스트라다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바티스티니(Giordano Battistini) 씨는 한 때 그 자신이 노숙인이었다.
"12살부터 대마초와 헤로인에 손을 댔다. 그러면서 주로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했는데 그 뒤로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니까 직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집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이곳 노숙자 쉼터에서 머물며 정부 보조금을 받다가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을 알게 되었다."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은 비영리단체, '피아자 그란데의 친구들(Amici di Piazza Grande)'이 전통적인 노동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조합으로서 1997년 피아자 그란데(Piazza Grande)의 워크숍,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은 주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노동 기회를 제공하면서 주거권이나 시민 기본권 회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설립 후부터 노숙자, 또는 마약·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야간 쉼터를 관리하고 있는데, 현재는 외국인과 기타 소수자들을 위해서도 쉼터를 개방하고 있다.
마약이나 절도 금지와 같은 기본적인 쉼터의 규칙만 지킬 수 있다면 누구라도 라 스트라다의 상담을 거쳐 쉼터에 머무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라 스트라다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사회성을 회복하고, 이들이 지닌 자원과 능력을 고취하기 위해 청소 용역이나 컴퓨터 교육과 같은 사업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바티스티니 씨는 이렇게 강조했다.
"쉼터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획일적인 교육이나 구직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노숙자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나 자신이 마약에 빠져본 경험이 있고, 직장과 집 없이 떠돌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무턱대고 무언가를 가르친다거나, 일터로 내보내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설 수 있는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티스티니 씨의 경우, 1년 6개월에 걸쳐 라 스트라다의 엄격한 훈련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훈련 과정을 통해 그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다양한 직업 교육을 받았고,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으며, 이곳을 일터로 삼을 수 있었다. 바티스티니 씨와 같이 갱생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약·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기술이나 재봉 기술 등을 익힐 수 있으며, 공원 청소와 자전거 수리와 같은 단순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라 스트라다는 단순 노동이나 기초 교육이라 할지라도 개별 노숙자들의 수준이나 능력, 의지 등을 철저히 고려해 맞춤 일자리나 교육을 제공한다.
라 스트라다는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조합원이 되기 위해 출자를 할 필요는 없지만, 조합에서 마련한 훈련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 필수다. 라 스트라다의 조합원이 되면 바티스티니 씨처럼 일자리를 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훈련을 무사히 수료하여 조합원이 되는 경우는 신청자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 절도를 저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훈련을 하겠다는 노숙인 모두가 얼마든지 다시 입소할 수 있다.
▲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에서는 무료 진료도 받을 수 있다. ⓒ한살림 |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사회 안전망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는 노숙자들에게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의 기본 목적은 일자리 기회 창출과 노동 안정성 확보에 있다. 이를 위해 설립 초기부터 조합이 선택한 전략은 지역의 다른 협동조합, 어소시에이션, 공공단체와 폭넓고 끈끈하게 연대하는 것. 이렇게 협력하는 단체나 기관들은 사무실 청소나 공원·공공 목욕탕 관리, 자전거 수리와 같은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해 준다.
이런 노동의 현장에는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을 통해 배출된 일꾼들이 어김없이 배치된다. 오갈 곳 없는 노숙자이거나 마약·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었던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마련한 사회 안전망을 통해 미약하지만 다시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첫 계단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역에서의 이러한 통합적 연대는 노숙자들과 그들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더욱 깊고 폭넓게 확장시키는 데 큰 뒷받침이 된다.
볼로냐 시는 공공 시설 관리와 노숙자 지원을 이러한 협동조합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데,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과 같은 성격의 조합이 볼로냐에만 7개 정도가 있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훈련 과정을 이수한 후 조합원으로 정식 가입하면 단순 기능직이지만 평범한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현재보다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할 수 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심약하기 때문에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보수적이고 엄격한 부모 밑에서 마찰이 끊이지 않았는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 라 스트라다 협동조합이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마약도 완전히 끊고, 고정적인 급여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장까지 얻을 수 있었다. 생활이 안정이 되니 여자 친구도 생기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한다."
지독한 마약 중독자였던 바티스티니 씨는 이제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당장 집과 일자리를 잃고, 편치 않은 몸 하나 가지고 거리로 나앉았지만 이렇게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다.
빈곤층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도록 한다
노숙으로 대변되는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볼로냐 시의 경우처럼 지역 공동체의 결속이 유효해 보인다. 특히 정부 기관과는 별도의 사회복지 체제로서 관련 협동조합을 결성해 지역이 자치적으로 지역 내의 가난과 노숙의 문제를 직면하고, 개개인이 처한 문제들까지 함께 고민해 협동의 과정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숙자들은 갑자기 부자가 되는 길을 마련할 수는 없지만 그 지역에서 자립과 갱생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고, 또 다시 지역 내 다른 이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로 이끌어줄 수도 있다. 생활·문화·복지·신용·의료 등 다양한 협동조합이 운영 중인 원주나 성미산마을처럼 이른바 협동조합 지역 사회의 건설이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힘없는 약자를 지역 내에서 함께 돌보고 이들이 지역민의 일원으로서 기여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는 것이다.
피아자 그란데의 친구들(Amici di Piazza Grande) 이탈리아의 주요 노동조합 중 하나인 CGIL(Confederazione Generale Italiana del Lavoro·이탈리아노동총연맹)은 사회적 소외와 빈곤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갖추지 못한 노숙인에게 노동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3년 새로운 단체를 설립한다. 이른바 '큰 광장의 친구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피아자 그란데의 친구들'의 시작이다. 피아자 그란데의 친구들은 노숙인을 복지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활동의 주체로서 인식한다. 이를 토대로 가장 먼저 벌인 사업은 신문 <피아자 그란데(Piazza Grande)>의 창간이었다. 주로 지역 소식을 담고 있는 신문의 제작과 배포는 노숙인이 직접 참여하여 이뤄진다. 특히 노숙인들은 신문을 무상으로 받거나 저렴하게 구입하여 길거리에서 판매하는데 이를 통해 약 150~200유로의 수익을 매월 거둬들일 수 있다. 이는 노숙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종자돈이 될 뿐 만 아니라 자신감과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도 큰 몫을 한다. 이 외에도 피아자 그란데의 친구들은 주로 길거리 협동조합을 통해 노숙인들의 갱생을 위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공공시설 관리·자전거 수리 등 외부 용역 사업을 통해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있다. 또한 문화 부문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극단을 운영하면서 노숙인 문제를 중심으로 연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연극 워크숍도 개최하고 있다. 피아자 그란데의 친구들은 2004년 본부에서 발생한 큰 화재로 인해 여러 사업 부문이 활동에 큰 지장을 입기도 했지만 현재 대부분 복구되어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이들의 권리와 갱생을 위해 그 활동 범위를 계속해서 넓혀나가고 있다.
|
협동으로 희망을 일궈가는 공동체 사람들 갈거리 협동조합 우리나라에도 미소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그 문턱이 높다는 것이 신청자들의 하소연이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없는 영세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미소금융의 혜택을 받는 데 필요한 자격은 여전히 엄격하고 갖춰야할 서류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와 같은 제도권 사업을 뒤로하고 강원도 원주에서는 국내 최초로 노숙인과 영세민들이 주축이 되어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을 2004년 설립했다. '갈거리협동조합(www.kalgury.com)'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일종의 신용협동조합이며 원주 지역의 노숙인, 고물 수거인,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극빈층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난방비와 같은 생활 지원비, 목돈이 필요한 치료비, 월세 보증금, 소규모 사업비, 자녀 학자금, 사채 변제금 등을 보증인 없이 200만 원 이하의 소규모로 대출할 수 있다. '노숙인에게 돈을 빌려 줘 떼기 십상일 것'이라는 초기의 우려와는 정반대로 2010년에는 조합원 200명에 자산 규모도 2억 원을 넘어섰다. 최소 출자금 천원으로 이 정도 수준의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동안의 대출 건수도 67건으로 정말 어려울 때 기댈 곳 없는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이 도움을 받아 큰 위기를 넘기고 기본 생계를 지켜낼 수 있었다. 갈거리협동조합으로부터 대출을 원하는 영세민은 본인 스스로 조합원이 되어 출자를 하고 대출금 사용 용도 등을 기입해 신청서를 내면 된다. 소정의 심사를 거쳐 대출이 이뤄지며 일반 생활비나 전자제품 등의 구매 용도는 대출에서 제외된다. 넝마공동체 우리 사회에서 구걸에 의지하는 거지를 제외하고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던 이들은 넝마주이였다. 1980년대까지 골목길 어귀에서 큰 망태기 등을 어깨에 짊어진 그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올림픽 개발로 대변되는 대대적인 도시 정비와 함께 넝마주이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버려진 옷가지와 가방, 구두, 장신구 등은 여전히 상당수가 다양한 경로를 거쳐 수집되어 재활용된다. 초고층 마천루와 잘 정비된 도로만이 즐비한 서울 강남의 한복판, 그곳의 다리 밑에서 넝마공동체를 이뤄 일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넝마공동체는 1986년 당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팔병 씨가 넝마주이 조직을 이끌고 있던 문영삼 씨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나눔과 섬김의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다. 윤팔병 씨는 '다리 밑의 마르크스'라 불리며 현재 아름다운 가게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넝마공동체는 '국가의 보조를 받지 않는 자활공동체'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처음 6개월간의 적응기간을 거쳐 일할 의욕이 생기면 일거리를 마련해 준다. 주로 강남 주변 아파트에서 나오는 재활용 옷가지를 모아 주말에 벼룩시장 등지에 내다 팔아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넝마공동체 식구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 다리 밑의 컨테이너에는 이들이 하고 있는 넝마주이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그동안 우리는 월평균 40t의 넝마를 수집했으며 그중 80%의 넝마가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되었으며 2t의 넝마가 국내에서 다시 소비되었다. 또한 월 800여 벌의 옷을 어려운 다른 이웃들에게 기증했으며 7000여 벌의 옷을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주기도 하였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