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그의 뜻을 이을 '카이사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그의 뜻을 이을 '카이사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서 ①] 박신호 씨

지난 8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1주기에 맞춰서 출간된 <김대중 자서전>(전2권)을 기념해,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삼인은 독후감 대회를 개최했다. <김대중 자서전>을 읽은 다양한 연령 및 계층의 독자들이 저마다 느끼고 생각한 내용을 풀어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8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2개월에 걸쳐서 진행된 이 독후감 대회에 총 130여 편의 응모작이 모였다. 황현산(문학평론가), 김성재(김대중도서관 관장), 김정환(시인), 고종석(작가), 나희덕(시인) 씨 등의 심사위원은 이 중 총 6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프레시안>은 이 중 3편(1등 1편, 2등 1편, 3등 1편)을 추려서 게재한다.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시상식은 11월 19일(금) 오후 5시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리며, 이희호 여사가 직접 시상을 할 예정이다.

1등 (1명) 박신호
2등 (1명) 차효찬
3등 (4명) 유병학, 박찬이, 서지민, 이시우

김대중 선생님 혹은 김대중 대통령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평화민주당은 충격과 실의에 빠졌다. 모든 비난이 야권에 쏟아졌고, 특히 나를 겨냥했다. 다시 야권 통합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문익환 목사는 당사에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합당을 촉구했다. 이태영 여사는 내 앞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이제 다 망했다"고 탄식했다." (<김대중 자서전>(제1권) 中)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깊은 저녁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뜬 얼굴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해남을 지나 곧 이 지역에 오고 계십니다. 여러분 좀 더 기다리면서 다시 한 번 선생님을 소리 높여 불러 봅시다. 김대중! 김대중!"

사회자의 외침은 사나웠다. 그러나 그 날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군중들이지만 잠시 후에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간절함이 사회자의 약해지는 목소리를 살리고 있었다. "김.대.중!, 김.대.중!" 나는 아련하게 퍼져가는 한밤의 연호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와"하는 함성이 완도읍내 새벽 공기를 찢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잠에 깬 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옥상 위로 올라갔다. 시간은 새벽 1시 10분이었다. '아. 오셨구나.' 초겨울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거리에 걸려있었던 노란색의 평화민주당 상징 걸개그림과 현수막은 파란색의 기호 1번 노태우 후보, 붉은색의 기호 2번 김영삼과 함께 정권 교체라는 절박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선생님은 졌다. 그것도 3등이었다. 2등도 아니고 3등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결과였다.

다음 날 구로구청의 참상을 지켜보면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게 아쉬움과 더불어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아. 단일화만 되었다면…. 김영삼에게 양보를 했어야 했는데….' 회한은 깊었다. 모두에게 어두운 하루였다. 보통사람이라는 노태우의 당선 광경을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버렸다. 나는 힘없이 방위병 군복을 입고 군부대로 출근했다.

1992년도 대통령 선거 날. 고향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광주에서 학원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나는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완도에 내려갔다. 고향 분들 표정도 다들 들떠있었다. 얼마 전 초원복집 사건으로 김대중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였다. 친구 형님 왈 "왠지 될 거 같지야. 나도 기분이 영판 이상해야." 해는 저물고 개표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거 다음날 광주에 올라왔다. 출근길에는 무거운 시민들은 표정만큼이나 어두운 비가 아침부터 내리고 있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현실화 되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침묵이었다. 다음 날이 대통령 선거일이기 때문에 공휴일이지만 기쁜 얼굴도 편안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대통령 선거를 애써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다. 내일은 꼭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한 간절한 바람이 몰고 온 침묵이었다. '과연 이 분이 될까.' '여론조사 결과는 맞겠지.'

투표 시간이 끝나자 방송사들이 사전 투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했다. '아. 초조함이여 ' 카운트다운 시작 10∼4, 3, 2, 1, 0 . "김대중 후보 대통령 당선" 화면 가득 김대중 대통령 탄생을 알리는 문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피 말리는 개표 결과 승리를 확인한 후, 나는 동료 선생님 몇 분과 술을 마셨다.

우리 시대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프레시안(손문상)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감옥에서 무슨 즐거움이 있겠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감옥에서도 분명한 낙이 있었다. 첫째 즐거움은 단연 독서였다. 1977년 진주교도소 생활 때도 그랬지만 청주교도소의 2년간은 온통 독서에 빠져 지냈다. 철학, 신학,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 다방면에 책을 읽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김대중 자서전>(제1권) 中)


나는 1984년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1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김대중 선생님께서 미국에서 귀국한다고 주위에서 수군거렸다. 선거 유세장에서도 민정당 후보를 제외한 모든 입후보자들이 김대중 선생님과 함께 하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 무렵 <김대중 옥중 서신>이 출판되어 나왔다.

그때까지 나는 정치인 김대중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김대중 선생님을 전설 속의 영웅처럼 말씀하셨고, 친척 한 분은 김대중의 연설을 직접 들었다며 늘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나 나에게 김대중이란 실체가 보이지 않는 불온한 바람과 같았다.

나에게 인간 김대중의 실체를 처음으로 알려준 것은 <김대중 옥중 서신>이었다. <김대중 옥중 서신>은 나에게 커다란 내면의 울림이었다. '성적이 좋은 인간이 아니라 공부를 평생 좋아하는 인간이 되자.' <김대중 옥중 서신>을 독파한 후 결심은 지금껏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 생활 속에서 자신의 실학 사상을 완성했다. 다산에게 귀양이란 삶의 기간이 없었다면 그저 훌륭한 청백리 정도로 후세인들에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옥이란 인고의 시절이 없었다면, 다선의 목포 출신 국회의원 또는 국회의장 정도로만 후세인들은 기록했을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아침 기자들 앞에서 통역하던 유재건 의원의 오역을 바로 잡아주던 김대중 선생님의 포스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한국 사회에서 명문가 후손도 명문 대학의 졸업생도 아닌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이 된 것은 기적 같은 하늘의 도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보면 한 인간의 지극한 삶에 감동한 하늘이 허락해 준 것은 아닐까?

흔히 서울대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 파탄을 초래했고 고졸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를 경제 위기에서 구했다고 말한다. 특정인을 비꼬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능력과 학벌이 무관함을 입증해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고 한다. 물론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 스님 같은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속(俗)에서 한 발짝 떨어진 성(聖)의 세계 속에 사는 분들이다. 그러나 속(俗)에 살면서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란 어렵다. 사실 정치란 속(俗)의 최전방이 아니던가. 정치를 하면서 인격적으로 꽃을 피워내기란 힘들 것이다.

김대중 선생님은 지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정치의 미'를 보이셨다. 마치 탁한 물에서 연꽃이 피어 오른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김대중 자서전>에 부록으로 나온 DVD를 학생들과 함께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좋은 대학을 못가도, 위장 전입을 하지 않고도, 논문 표절 없이도 한 생을 잘 살고 갔던 분이 있다."

로마에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김대중 대통령이 계셨다.

피어나는 인동초 - 6·15 정상 회담과 노벨상 수상

"김정일 위원장이 출연했습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나는 마침내 트랩 위에 섰다. 하늘과 주위를 살펴보았다. 북한의 조국강산을 처음 보는 심정은 감개무량했다. 참으로 형언키 어려웠다. 순간임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북녘 하늘과 땅 사이에 대한민국 대통령, 내가 있었다. 울컥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 물론 회담에서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민족을 생각했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 부었다. 모든 힘을 풀어 최선을 다했다. 내 평생 가장 긴 날이었고 가장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날이었으며, 가장 보람을 느낀 날이었다. 나는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김대중 자서전>(제2권) 中)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가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이번 자서전에 포함되어 있던 DVD를 보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때는 6·15 정상 회담 시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냉전에 찌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의 대통령으로서 북녘 땅을 밟은 감회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6·15 정상 회담은 시대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이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 동안 정적들한테 참혹한 색깔론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남북 정상 회담이 시도되었지만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무위가 되고 말았다.

결국 역사적인 남북 정상 간의 첫 만남은 김대중 대통령에 의하여 성사되었다. 시대는 역사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 또 자격이 있는 인간에게만 기회를 주나보다.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북을 TV를 통하여 시청하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수업 중 들려 온 그 소리에 환호를 지른다. 물론 아이들의 환호성은 수업에서 해방된다는 기쁨의 소리이다. 이윽고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촌스런 북한 주민의 머리모양과 한복 그리고 꽃다발을 흔들며 지르는 함성.

아! 이건 드라마야. 사실이 아니야.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화면 속에서는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환한 얼굴로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불편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평양 땅을 향하여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남북 지도자가 웃으며 포옹하고 있었다. 교실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신기했고 행복했다.

'Imagine'이란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you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

"잠시 후, 노벨 평화상 발표가 있습니다. 각 학급은 잠시 TV를 켜고 시청 바랍니다." 드디어 우리 민족에게도 노벨상을 수상한 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6·15 정상 회담이 노벨 평화상 수상의 가장 큰 이유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부여한 멍에를 보듬고 숱한 모멸과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한 인간에 대한 역사의 선물은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은 통치자로서 국민이 부여한 시대의 소명을 충실하게 이루어냈다. 시청을 다한 후 우리 아이 반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환한 미소가 지금도 떠오른다. 참으로 인동초가 만개하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처럼

봄기운이 조금씩 스며들던 4월의 어느 날, 큰 아들 홍일에게서 편지가 왔다. 발신지는 대전교도소였다. (…) 편지 겉봉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몇 시간을 어루만지기만 했다. (<김대중 자서전>(제1권) 中)

마냥 혼자 있고 싶었다. 봄꽃이 지고 푸른 잎들이 돋아났건만 청와대 뜰에는 정적만 고였다. 아내도 내 눈치만 살폈다. 나는 그것이 더 아팠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몇 시간동안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막내가 구속되었다. (<김대중 자서전>(제2권) 中)


우리는 한때, 올 곧은 길을 걷던 이들이 변절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완용, 최남선, 이광수 등이 그렇고 3·1 만세 운동을 일으켰던 일부 민족 대표들의 변절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리고 1970, 80년대 운동권의 리더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나라당에서 뉴라이트의 첨병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분노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특히 김동길 박사의 경우는 그 얼마나 참담한 블랙 코메디인가. 무엇이 이들을 변절케 했을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자신으로 인한 가족들의 희생 때문이 아닐까. 어느 가장이 가족의 희생에 괴로워하지 않으리. 그래서 정의와 양심을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인동초'라 불릴 정도로 고난의 길을 걸었을 때, 가족들도 그 시련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옥중 서신>에서 가장으로서 자식들하고 놀이 공원 한 번 같이 가주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진정한 소울 메이트가 아닐 수 없다. 미국까지 유학 갔다 온 처녀가 아이가 달린 가난한 무명의 홀아비 정치인에게 시집간다는 것은 지금의 관점으로도 쉬운 결정은 결코 아니다. 만약 이희호 여사님이 안 계셨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삶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부부들이 있지만 서로 간에 존경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드문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때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일이 있다. 장남 김홍일 전 국회의원의 앙상하게 무너진 몸이 보았을 때다. '저럴 수가~' 고문의 후유증은 무서웠다. 아들의 무너져가는 육신을 바라보았을 김대중 대통령의 참담한 마음을 무어라 형용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의 고통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 아들의 고통이 자신 때문이라는 고뇌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씨를 용서한다고 했다. 이게 어디 보통사람들이 흉내 낼 수 있는 일인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화해와 용서'를 평생 화두처럼 지니고 사셨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을 용서하셨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셨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의 사과에 크게 감사했다고 했다. 또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 했고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씨도 용서했다.

사실 아들 김홍일 의원의 병은 전두환의 신군부 일당이 가한 고문 때문이 아니던가. 그리고 평생의 라이벌이자 끝없이 독설을 퍼부었던 김영삼 씨에게도 김대중 대통령은 늘 침묵으로서 대하셨다. 어디 이것이 범인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

청와대를 나서며 - 다시금 '행동하는 양심'을 말씀하시다

아내 없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 않으면 좋겠다. 어떤 때는 아내와 같이 종일 같이 있을 때가 있다. 그래도 기쁘고 즐겁다. (<김대중 자서전>(제2권) 中)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김대중 자서전>(제2권) 中)


전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듬뿍 취했던 2002년. TV에 비춰진 김대중 대통령은 많이 늙고 지쳐 보였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나의 마음도 쓸쓸해졌다. 두 아들의 연이은 구속에 크게 상심했다고 하셨다. 국가 최고의 수반으로서 자식들이 비리로 인해 구속 수감 당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봐야하는 힘없는 통치자,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야당의 끝없는 국정비협조 그리고 보수 언론의 독기 서린 무차별 공격을 김대중 대통령은 그저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넘겼고, 복지국가로 가는 초석을 놓았으며, IT 강국의 위상을 갖추었다. 그리고 남북 분단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5년간의 시대적 사명을 마무리하고 회한 가득한 청와대를 나와서 그리운 동교동으로 향하셨다.

당시 세상의 인심은 이회창 씨가 대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었다. 특히 보수 언론의 경우는 언론의 기본자세도 망각한 채 노골적으로 이회창씨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부산 사나이 노무현 씨가 차기 대통령에 선출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이 연속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크게 고무됐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 김대중 대통령은 비교적 순탄한 노후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도 얼마가지 않았다. 대북 송금 사건이라는 개인적인 아픔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보면서 민주화의 퇴행을 우려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2009년 봄 퇴임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로 나타나고 말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진정한 가치가 한나라당에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당에서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에 노정객은 다시금 '행동하는 양심'을 말하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때 김대중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휠체어에 앉아 분향하는 모습이 마냥 서럽게 보였다. 참으로 애잔한 두 전직 대통령의 인생이었다.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반쪽이 사라진 것 같은 아픔'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금 '행동하는 양심'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악의 세력에 침묵한 것도 악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분께서 분노하고 계시구나. 우리 국민들에게 사실상 유언을 남기고 계시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행동하는 양심'은 우리에게 남겨주신 김대중 대통령의 유언이었다.

2009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마지막으로 몸을 눕히고 계셨다.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평생 라이벌이라던 김영삼 씨도, 연희동의 전두환 씨도 병문안을 했다고 뉴스에서 알리고 있었다. 한 여름에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민초들의 '카이사르'를 기다리며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지난날들을 펼쳐 보니 모두 아름답다. 나의 자서전은 미래 세상의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자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주인인 세상에서 모두 평화롭기를 빈다. (<김대중 자서전> 1권 中)

당신이 세상을 떠나신 지 1년이 가까워 옵니다. 우리 집은 당신이 살아 계시던 그때 그대로입니다. (…) 당신이 저 아름다움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당신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기만 해도 마음 구석이 저려 옵니다. (<김대중 자서전> 1권 中)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의 한 가지 과오는 분명히 해야 한다. 외환 위기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덫에 걸리게 한 오류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이 땅엔 천박한 물신주의가 꽃을 피우고 말았고 특히 과도한 부동산 규제 완화는 훗날 노무현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와서 사실상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궤멸을 가져오고 말았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비록 수동적이라 하더라도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 정치의 일정한 수혜자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면서 옛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를 생각한다. 이들 형제는 로마민중을 위하여 대토지 개혁을 시도하다가 보수인 원로원 귀족들과 대립한 끝에 먼저 형이, 훗날에는 동생이 살해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가 제시했던 꿈과 개혁은 물거품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로마 민중들은 그라쿠스의 가치를 실현할 그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그 인물은 그라쿠스 형제 사망 후 한 세기가 끝날 무렵에 나타난다.

귀족원로회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했던 로마의 통치자 '슐라'는 민중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게 된다. '슐라'의 탄압에 의하여 귀족 신분이었던 그는 민중파로 찍히게 되었고 결국 로마를 탈출하여 소아시아로 도망치는 등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때가 오자 놓치지 않고 능숙한 웅변과 교묘한 지혜 그리고 단호한 용기로 마치 전광석화처럼 원로회 귀족들을 무력화시키고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법을 통과시켜 버린다. 이에 로마 시민들은 열광하게 된다. 그는 갈리아 원정에서 보여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귀족원로회의 마지막 보루였던 폼페이누스마저 붕괴시켜버리고 귀족원로회 자체를 무력화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이렇게 그락쿠스 형제의 꿈을 이루어낸다.

이젠 우리에게도 그라쿠스 형제의 정신을 완성시켰던 '카이사르'가 필요하다. 이 시대의 '카이사르'는 참된 가치를 지향하는 모든 이들의 시대정신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우리가 던지는 투표가 곧 '카이사르'다. 김대중 대통령이 마무리하지 못한 자유와 민주 그리고 통일의 마침표를 우리가 찍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늘 말씀하셨던 '행동하는 양심'에 따라 마무리해야 한다.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야무지게, 좀 더 '카이사르'답게….

자서전의 깊은 맛을 느꼈던 여름이었다. 여름 피서지에서도 <김대중 자서전>에 흠뻑 빠졌던 나를 용서해 준 가족들과 좋은 책을 만드신 삼인출판사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