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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 뜯기고 '강간' 당하는 지옥, 서태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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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 뜯기고 '강간' 당하는 지옥, 서태지는 없다!

[프레시안 books] 황시운의 <컴백홈>

대중음악 마니아나 서태지 팬클럽 회원이 아니라도 19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서태지 음악의 충격과 전율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1992년) 수록곡인 '환상속의 그대'는 주로 '무도회장'의 숨 막히는 백색 섬광과 레이저빔 아래서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아찔한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3집(1994년)에 실렸던 '교실 이데아'의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에서는 혹시 당신도 혁명의 기운이라 부를 만한 또 다른 두근거림에 휩싸이지 않았는지? 울컥, 하며 피가 끓는 그 낯선 감정은 어쩌면 이전 세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느꼈을 감동과도 닮아 있었던 건 아닐지? (이런 표현은 혹시 지나치게 불경한 걸까?)

하지만 서태지를 '문화 대통령'이자 불멸의 신화로 우뚝 세운 곡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4집(1995년) 타이틀곡인 'Come Back Home'일 것이다. 가사에서 느껴지듯 그는 집을 뛰쳐나간 청소년들의 답답함과 두려움, 분노와 증오마저도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이 사회'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그가 "아직 우린 젊기에 /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 COME BACK HOME"이라고 노래할 때, 그들은 마음을 열고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 You must come back home / 나를 완성하겠어"라는 그의 속삭임은 그렇게, 주문처럼 그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아저씬 누구세요?"라는 격세지감의 '서태지 폰' 광고도, 뒤늦게 드러난 비밀 결혼과 이혼 스캔들도, 이 시절에 뿌리를 둔 서태지의 신화를 쉽사리 흠집 내진 못할 것이다.

▲ <컴백홈>(황시운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컴백홈>(창비 펴냄)이란 제목을 달고 2011년에 나온 가출 소녀 이야기는 그래서 단번에 눈길을 잡아끈다. 주인공 유미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날아온 듯, 2011년의 고등학교 교실에 뚝 떨어진 '서태지 세대'의 소녀다. 그녀는 몸무게가 13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슈퍼 울트라 개량 돼지"이자 며칠에 한번씩 "삥"을 뜯기고 "다구리"를 당하는 "공식 지정 왕따"이기도 하다.

그런 유미에게 버텨낼 힘을 주는 존재는 오직 서태지뿐이다. 그녀는 "달에서 온 사람"인 서태지가 언젠가 그의 세상으로 돌아갈 때 그와 함께 달로 가길 꿈꾸고 있다. 그녀가 프로아나(Pro-Ana : 거식증에 찬성한다는 뜻의 신조어)라는 과격한 다이어트 방법을 선택하고 음식을 먹은 뒤 "폭토"를 반복하는 것도 "날아서" 달에 가기 위한 "변태"의 과정으로 묘사돼 있다.

"베프"인 동시에 "일진"인 지은(학교에서는 앞에 나서서 유미를 패고 저녁에는 파스를 사들고 집에 찾아와 함께 수다를 떠는)이 임신을 하고 가출해 미혼모 시설에 들어간 뒤부터, 유미는 더욱 참혹한 일들을 겪어내야 한다. 지은의 행방을 추궁하며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패거리들 때문에 엄마의 패물을 훔쳐 파는가 하면, 지은의 "남친"인 공고 "짱"에게 강간당하고 그 광경이 찍힌 동영상으로 협박당하기도 한다. 결국 딸의 도둑질을 눈치 챈 엄마에게 "호스"로 맞던 중 엄마를 "까고" 가출한 유미는 지은이 머무는 시설(철저한 프로그램으로 임신부를 관리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팔아 운영비를 얻는)에 얹혀 지내게 된다.

이 대책 없는 가출 소녀들에게, 서태지의 'Come Back Home'은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까? 이들에게도 이 노래는 진정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꾸역꾸역 떠먹는 지은을 바라보며, 결국엔 돌아갈 수밖에 없을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집안의 패물이라도 훔쳐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삥을 뜯기고, 온몸의 멍이 가실 날 없이 다구리를 당하고, 심지어 얼굴 길쭉한 양아치 새끼에게 강간까지 당해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었던 세상, 뜻밖의 임신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열일곱 살짜리 임신부에게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않았던 세상, 만년 왕따인 슈퍼 울트라 개량 돼지와 후까시 만땅 학년 짱이 친구라는 사실을 결코 인정해주지 않았던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서태지에게 그랬듯, 세상은 우리에게도 지나치게 가혹하기만 했다.

이 장면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이라는 서태지의 속삭임은 이들이 결국 저 끔찍한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지독한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되뇌는 저주처럼 들린다. 너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만 한다.

"너무 많은 불행과 고통 들을 곳곳에 숨겨둔 채 태연을 가장하고 있는 세상에서, 견뎌내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너는 "타인의 상처를 뜯어먹고 사는 각다귀의 유충들이 버글거리는 시궁창" 같은 학교로,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관심도 없는 주제에" 당당히 '권리'를 행사하는 부모들의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 어떻게든 살아내야 할 것이다. 만년 왕따인 "슈퍼 울트라 개량 돼지"와 "후까시 만땅 학년 짱"이었다가 열일곱 살짜리 임신부가 된 너희를 진정 받아줄 수 있는 곳은 이 사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 집과 학교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너는 그곳으로부터 정녕 도망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뛰쳐나온 그 역겨운 세상은 누구도 벗어날 길 없는 이 지독한 사회의 축소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과연 서태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컴백홈>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귀환하는 불량 비행 청소년들의 식상한 성장 이야기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점, 동시에 그들이 튕겨 나온 바깥세상에서 손쉬운 화해나 유대의 환상을 제공하길 거절한다는 점, 그럼으로써 기만적인 가정과 폭력적인 학교 '안'의 현실뿐 아니라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이 사회 전체의 실상을 여과 없이 까발린다는 점.

자, 이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언제까지 그저 견디며 이렇게 살아내야 하는가. '달'이 아닌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나가는 일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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