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ssippi find yourself another country to be part of
(오, 네가 심장을 찢어내 버린 그 땅을 위하여
미시시피는 저리 떨어져 나가 다른 나라가 되소서)
필 오크스의 "Here's to the state of Mississippi(미시시피를 위하여)"
소련과 핵폭탄을 쏘느냐 마느냐 갈등하던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미국의 1963년은 앨리버마 주의 주지사가 된 조지 왈라스가 "영원한 분리(segregation forever)!"를 목청껏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후 6월에는 흑인 인권 운동가 메드가 에버스가 KKK(Ku Klux Klan) 단에 의해 가족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 총격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오하이오 주의 흑인 교회에서는 폭탄 테러가 일어나 네 명의 흑인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10월에는 소울 음악 최초의 대형 스타였던 샘 쿡이 백인만 묵을 수 있는 호텔에 숙박했다는 죄로 체포되었다. 미국 행정부는 베트남 전쟁에 계속 지원할 것을 선포했으며, 대통령 존 케네디는 2월에 쿠바에 대한 제재를 발의하고 11월에 암살당했다.
'분리는 하지만 같다(Separate but Equal)'는 어불성설의 논리는 1870년대에 시작된 짐 크로우 법의 악명 높은 구호였다. 흑인은 백인이 흑인 쪽이라고 정해준 곳에서만 제한된 인권을 누렸다. 1963년은 이 법이 폐지되기 2년 전이었지만, 어디서도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1963년은 그런 때였다.
이렇게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8월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워싱턴에서 "나는 꿈이 있다"는 전설적인 연설로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영국에서 온 꽃미남들이 너의 손을 잡고 싶다며 미국의 여성을 홀리던 해에, 아직은 저항 가수였던 밥 딜런은 뉴욕에서 기념비적인 데뷔작, <프리윌링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을 발매했다.
| ▲ <헬프>(전2권, 캐스린 스토킷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2009년 미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낸 <헬프>는 바로 이 1963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있다. 미국 전체가 변화와 혁명의 기운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가장 단단한 수구 논리를 지탱하던 미시시피 주가 그 공간적 배경이다.
미국 남부의 노예제의 전통이 남아있던 당시 미시시피 주에서 흑인은 여전히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흰 하녀 옷을 입고 백인의 집에서 음식을 해주거나 아이들을 돌봤다. 미시시피 대학에서 최초로 배출된 흑인 졸업자는 온갖 테러의 위협 속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졸업식에 참석해야 했다.
비참하고 불안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헬프>는 무겁고 엄숙한 투쟁의 느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자칫 비참하게만 비춰질 수 있는 소재상의 맹점을 교묘히 피해가고자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을 내세우고, 인종 분리 정책 시절의 개인의 삶과 관계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화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흑인 인권 운동의 필요성과 역사적 당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미스 스키터는 조금 일찍 계몽한 백인 여성이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가족은 '이제 결혼을 하라'며 그녀를 몰아붙인다. '사랑하는 사람이냐' '꿈의 실현이냐'라는 젊은 여성이 어디서나 할 법한 질문은, 미시시피라는 배경을 만나면서 '어떤 꿈인가' 하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녀의 '꿈'은 정체성에 대한 윤리 문제로 확장된다.
또 다른 인물인 흑인 유모 아이블린의 얘기도 흥미롭다. 그녀는 아들을 잃은 비극을 이겨내고 다시 삶으로 몸을 던진다. 백인 고용주의 인종 차별적 제의를 견뎌내며 꿋꿋하게 일하는 그녀의 유일한 보람은 고용주의 백인 아이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일이다. 백인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갈등 대신에 보편적인 가치인 모성을 선택하고자 애쓰는 그녀의 신념은 스키터와의 관계 속에서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진다.
다른 주인공인 미니도 마찬가지다. 강인한 성품으로 주인에게 쉽게 굴복하지 않는 미니는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집에는 주정뱅이 남편과 아이들도 있다. 작가는 드라마 속에서 나올 법한 현실 속의 미니에게 인종 차별의 에피소드를 더하면서, 그녀를 점점 더 가련한 현실 속으로 빠뜨린다.
이 세 명의 주인공은 스키터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책을 쓰면서 거대한 갈등 속에서 만난다. 스키터는 뉴욕의 유대인 편집자와 함께 미시시피 주에 사는 흑인 여성의 일상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터뷰는 불합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비참한 삶을 살던 흑인에게 최초로 용기를 내어 발언할 기회이자 변화의 단초가 된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인종 차별의 일화는 때로는 가련하고, 때로는 잔인하다. 분노를 마음속에 억누르며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담한 필체로 묘사하는 통에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답답함은 스키터와 흑인 유모의 소소한 반란을 통해 희석되면서 해소된다. 이런 극적 리듬 덕택인지 이 소설은 '영화화'라는 성공 궤도를 타게 됐다. <나 홀로 집에>를 흥행시킨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질 예정이다.
원래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을 문명이라는 차갑고 날카로운 힘으로 밀어내고, 다른 대륙으로부터 피부색이 다른 인종을 노예로 흡수해오기 시작하면서 애당초 갈등의 원천을 품고 있었던 미국의 역사는 내전, 1930년대 흑인의 대이주, 1960년대 인권 운동을 차례로 겪으면서 수많은 드라마를 낳았다.
이 드라마들은 계급과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서사적 매력으로 인해 수많은 텍스트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KKK 단의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당하면서도 꿋꿋이 제 삶을 지탱하는 흑인의 이야기는 물론이요 백인의 자기 반성적 고백까지, 이제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을 정도의 소재다.
소설이 발간된 지 1년 뒤 미시시피 주에서는 학부모들이 졸업 파티를 열어주면서 오직 한 학생을 제외한 사건이 있었다. 제외된 학생은 동성애자였고, 수많은 미국인은 '역시 미시시피'라는 오명을 다시 상기했다. 여전히 다수의 권력에 의해 차별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지역이지만, 저항의 역사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헬프> 같은 소설 역시 꾸준히 발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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