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에 한 번쯤은 비행기에 오르고 그 보다 잦은 시간 버스, 혹은 기차의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처럼, 일정 기간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여행 마니아였던 것은 아니다. 오지 여행은커녕, 배낭여행을 떠나는 일조차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없으니 모험심 넘치는 피를 타고난 것도 아닐 게다.
그래서 '여행 잡지 기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게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여행 가서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 같은 질문을 던질 때면 늘 당혹스러웠다. 서점 진열대 위에 수북이 쌓인 여행 에세이를 참고하거나, 아니면 나의 수많은 출장 스케줄을 짜줬던 한국관광공사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참고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외치고 싶었다.
내 손에 쥐어진 알렉스 숄츠·카트린 파시히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이미선 옮김, 김영사 펴냄)을 바라보는 심정도 막막함에 가까웠다. '여행의 기술'이라니. 그런 게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짐을 효율적으로 싸는 법, 시차에 빨리 적응하는 법, 기간과 목적에 맞는 여행법 등 여행 잡지에서 일한 짧은 기간 동안 여행을 주제로 양산된 수많은 '하우 투(How to)' 기사와 제법 친해졌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색한 말이다. 물론 "교과서에 충실했어요." 같은 당연한 소리는 할 수 있다. 이미 익숙한 도시와 여행지를 비교하려 들지 말 것, 여행지에 대해 어느 정도 미리 알고 떠나는 성의를 보일 것 등.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알렉스 숄츠·카트린 파시히 지음, 이미선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
"아 여행이야말로 소비의 끝판왕이구나!"
항공사부터 비행기 좌석, 공항 라운지, 호텔과 현지의 레스토랑 등 세밀한 등급으로 나누어진 여행 산업의 자손들을 보라. 그리고 우리가 여행에게 바치는 정성을 생각해 보자. 평소 1주일 동안 쓸 돈을 단 하루 만에 탕진하기도 하고, 1년 동안 손꼽아 기다렸던 휴가를 거기에만 투자하기도 한다. 오로지 여행을 위해서!
이토록 소중한, 여행의 기술을 책 한 권으로 알 수 있다면 얼마나 경제적일까. 그래서 여행에 특별한 기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나 역시, 속는 셈치고 희미한 희망을 걸어보았다.
들어가는 말, '길 잃는 것쯤 아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럭저럭 기대에 부응할 것 같은, 솔깃한 얘기다. 저자들은 길을 잃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해주고, 경제적이며, 진정한 휴가이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아 놓은 정보를 근거로 목적지의 모습을 미리 머릿속에 그린다. 그러고서 그 곳을 찾아가 실제와 비교하고, 여행 안내 책이 옳음을 증명한다. 그 이상의 것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여행자들은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마주한 자신을 탐구한다. 이것은 줄거리와 결말까지 다 아는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성실한 여행자'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문장에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여기와 저기를 꼭 가야지!' 하고 결의를 다지며 하루 대여섯 군데의 장소를 여의주 모으듯이 다니는 여행은, 확실히 진정한… 아니, 재밌는 여행이라 하기 어렵다. 솔직히 길을 헤매면서 마주치는 예상치 않던 풍경들은 얼마나 낭만적이며 즐거운가.
스무 살 여름, 손에 쥔 지도책이 무색하게도 나는 홀로 파리 시내를 헤매고 헤매며 처음 듣는 이름의 거리에 반했었다. 관람객들 머리 틈새로 본 다 빈치의 '모나리자'보다, 어느 저택의 벽에 새겨진 마주 보고 있는 남녀 얼굴의 문양이 인상 깊었다.
이후 계속 길 잃기를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우연을 찬양하고, 모험심과 즉흥적인 발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책은 점차 '길을 잃었을 때 당황하지 않는 법', '절망적인 상태에서 살아남는 법'을 다루며 서바이벌 매뉴얼처럼 변모한다.
응? 혹시나 하는 마음, 나는 현명한 독자의 태도(!)로 책의 판권 페이지에서 원제를 찾아낸 후 'Verrien'이라는 단어를 구글 번역기에 돌렸다. (이 책의 원제는 "Verirren : Eine Anleitung fur Anfanger und Fortgeschritten"다.) 아니나 다를까, 'Verrien'의 뜻은 바로 '길을 잃는 것(to get lost)'이었다.
이 책은 기실, 길 잃은 상황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할 참이었던 것이다! "사진 찍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카메라의 뷰 파인더가 아닌 두 눈으로 여행지를 봐라" 등, 제목대로 여행 지침을 기대했던 나는, 배신감에 가느다랗게 몸을 떨었지만 어쨌든 책장을 계속 넘겼다.
저자의 의도를 알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고, 책은 점점 '초급자 편', '중급자 편'으로 단계를 달리하며 본격적인 내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길을 잃었으니 되돌아가자는 친구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산에 오르다가 결국에는 사망한 대학생, 한밤중 화장실 때문에 야영장을 벗어났다가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조난당할 뻔했던 미국인 저널리스트…. 사례들은 '길 잃음의 미덕'이 아닌 '길 잃음의 공포'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가지 사례를 제외하면 일상에서 경험할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가령, 어린 시절 애리조나 주의 숲에서 자라 방향과 자취를 가늠하는 일에 능숙한 톰 브라운은 수많은 실종자들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낸 추적의 명수다. 그는 그의 스승으로부터 "자연과 합일이 되고 패닉에 빠지지 않는 한, 자연은 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한다. 당황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 위, 바람, 태양, 동물, 냄새와 향기로 길을 기억하라" 같은 조언들은 들었다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이렇듯 수많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사례들로 채워져 있고, 이는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경험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치 영화 <127시간>을 볼 때처럼 경외심과 거리감을 두고 읽게 된다. 나아가 이런 조언도 나온다.
"컴퓨터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기 위해 한두 가지 요소들을 획득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길 잃기'의 단계를 높이려면 길을 가는 중에 한두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한다. 걷는 중에 멈춰 서야 하고 주변의 사물과 지물들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누가 알겠는가!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부싯돌이 붉은 눈의 잔인한 거북이 군단이 공격할 때 나를 지키는 필수 아이템이 될지 말이다."
이쯤 되면 비장한 각오로 사명에 임해야 하는, 국가 요원을 위한 책을 읽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차라리 이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그냥 '실수'라고 생각하고 마는 길 잃기를 학문처럼 연구하고,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정도다.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스웨덴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잃게 만드는 요정인 '스콕스누바'가 알아보지 못하게 스웨터 앞뒤를 돌려 입는다거나, '길 잃기 연구가'인 에릭 존슨이라는 사람이 있다거나, 독일에서는 알프스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지 않는 변형 등산이 인기라거나, 스코틀랜드의 고원 지대의 생태 공원은 "황무지의 느낌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길에 표지판이나 돌탑을 일부러 설치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원제와 한국어판 제목 사이의 간극을 감안하더라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여행의 기술>은 확실히 생소한 분야의 책이다. 2006년 자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과 최고의 독자상을 최초로 수여한 카트린 파사히, 그리고 역시 스타 작가인 알렉스 숄츠가 저자임을 떠올리면 아쉬움은 한층 커진다. 도입 부분에 살짝 비쳤던 '일부러 길을 잃는 삶의 방식'을 설득력 있게 끌어내지 못하고 여러 매뉴얼과 사례들을 정리한 데에 그치고 만 이 책에서, 두 저자의 이력에 걸맞은 입담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어차피 여행의 기술에 대해 말할 게 아니었더라면 한글판 제목을 <나는 길 잃기 전문가다>나 <잃어버린 길 위에서 희망을 외치다>로 했다면 어떨까. 둘 다 별로 읽고 싶지는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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