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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잃은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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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잃은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의 사랑

[프레시안 books] 한강의 <희랍어 시간>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이노은 옮김, 민음사 펴냄)나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나는 한강의 새 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펴냄)을 읽었다. 막막하고 고요한 침묵 한가운데를 돌연 훑고 지나가는 서늘한 고통, 가만히 엎드린 채 그 감각이 찾아왔다 머물렀다 떠나가는 순간들을 숨죽여 기다리는 마음으로.

전혀 감상적이지 않지만 깊숙이 숨어 있는 감정선(感情線)을 건드리는 이 소설을, 나는 온전히 사랑 이야기로 읽고 싶었다. 사랑 이야기로서 <희랍어 시간>은 천천히 실명(失明)을 향해 가는 '남자'의 이야기들과 언어 없는 정적 속에 갇힌 '여자'의 이야기들이 스치듯 엇갈리며 조금씩 얽혀드는 더딘 만남의 이야기겠지만, 그보다 더욱 생생하고 강렬하게 와 닿는 것은 아주 오래 전 남자가 겪은 '어리석은' 사랑 이야기다.

독일에 살던 열일곱 살 무렵, 남자는 독일인 아버지와 벵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병원집 딸'(이미 시력이 불안정했던 남자를 진료한 안과 의사의 딸)에게 열렬히 빠져 있었다. 어려서 열병을 앓다 청력을 잃은 그녀는 일렁이는 검은 눈으로 남자의 입술을 들여다보며 말을 읽었고, 날렵한 손놀림으로 수첩에 글씨를 써서 필담을 나누곤 했다. 언젠가는 눈이 멀어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으며 필담이나 수화로도 말을 나눌 수 없게 되리란 사실이 못 견디게 무서워진 남자는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한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 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그녀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남자를 외면했고, 필사적으로 사과하며 매달리는 그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당장, 나가!"라고 외친다.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로.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날이 가까워진 지금도 남자는 여전히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희랍어 강좌에서 만난, 언어를 잃어버린 여자에게 "……혹시 내 말을, 들을 수 없나요?",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사죄하는 그의 절박함은 그날 이후로 결코 벗어난 적 없는 자책과 후회로 얼룩져 있다.

▲ <희랍어 시간>(한강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이 이야기는 열에 들뜬 황홀한 사랑이 어떻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고통을 볼 수 없게끔 만드는지, 그런 열정과 맹목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얼마나 잔인한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아프게 깨우쳐준다. 사랑할수록,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고 확신할수록,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너를 더 깊이 이해한다고 자신할수록, 나는 점점 더 너를 모른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우리는 모두 점점 눈이 멀어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자의 이야기들 속에는 그녀에게 부쳤다가 반송된 편지, 여동생 란에게 보내려다 몇 번이나 다시 쓴 편지, 죽은 친구 요하임(어려서부터 병에 시달렸고 남자의 몸을 열망했던 동성 친구)에게 너무 늦게 전하는 끝내 쓰이지 못한 편지 등이 포함돼 있다. 그 편지들을 통해 남자는 사랑하는 이들이 그에게 준 상처와 그가 그들에게 준 더 큰 상처들을 떨리는 목소리로 되살려낸다.

"당신이 문득 내 팔에 가무잡잡한 손을 얹었던, 그 손등 위로 부풀어 오른 검푸른 정맥들을 내가 떨며 어루만졌던, 두려워하는 내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았던 순간들은 이제 당신 안에서 사라졌습니까. (…) 나를 용서하겠습니까. 용서할 수 없다면, 내가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겠습니까." (37쪽)

"너도 나에게 그런 절망을 느꼈니. (…) 오빠를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너는 말했지. 나는 오빠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80쪽)

"그 쓸쓸한 몸은 이제 죽었니.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125쪽)


남자는 묻고 또 묻지만, 여전히 그는 알지 못한다. 남자의 물음은 그들에게 가 닿지 않고,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이 모든 간절한 물음에 "명석하고 아름다운 결론"을 답으로 들려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모두,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기도 할지 모른다.

남자의 이야기에 비하면, "언어 없이 생각"(62쪽)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훨씬 모호하고 흐릿한 편이다. 당연하게도 여자의 이야기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로 서술될 수 없으며, 그녀에 대해 말하는 익명의 서술자는 흔들리며 지워지는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어쩔 수 없이 언어로 번역해야만 한다. 그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거리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여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불일치 또는 어긋남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잃어버린 이유도 무어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양육권 소송에 패하고 때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이 심리적 병인(病因)으로 작용했다는 심리 치료사의 논리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 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워 "토하고 싶었"던 여자, 단어들마다 "겹겹이 무거운 그림자처럼, 악취와 오심처럼, 끈적이는 감촉처럼 배어 있던 감정들"이 끔찍했던 여자, 자기 입에 가득 찬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에 자신이 먼저 찔렸던 여자. 그녀에게 언어란 끝내 "화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와 남자의 사랑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나는 방식으로만 가까스로 피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그러나 이 "모른다"는 말은, 냉소와 체념이 아닌 절망과 안타까움에 감싸여 있는 한, 섣부르고 자의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이해합니다"라는 말보다 한결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하여 놀랍게도 어떤 날에는 여전히 그녀를 모르는 채로 그에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얼핏 다가오기도 하고, 그녀의 입술에서는 "거품처럼" 가냘픈 소리가 "처음으로" 새어나오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그토록 어리석지만, 우리의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곧잘 모든 걸 망쳐버리곤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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