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으로 몰려 조국의 감옥에 갇혀 있던 두 형 서승, 서준식의 석방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틈틈이 유럽의 미술관을 돌며 그가 보고 느낀 미술 작품들에 대한 감상은 나와 같은 보통의 독자들에게 미술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당시 나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던 '서경식 표 감상'의 요체는 미술품을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고통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보는 것이었다. 소월의 산유화처럼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것이 미술이 아니라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삶에 개입하고 역사의 진행을 반영하는 '거울'이 그림이요 조각이라는 사실을 나는 서경식의 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역시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 두어야 아름다운 것인가! <나의 서양 음악 순례>를 통독하고 '숙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자니 새삼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물론 이 책 역시 앞선 책에 못잖은 감동과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 그러나 책을 감동 깊게 읽는 것과 그 책에 대해 무언가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깜빡한 것이다. 게다가 감동이 클수록 부담 또한 커지는 법….
나에게 서평 청탁을 한 담당 기자는 최 아무개가 음악을 좀 안다는 그릇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틈나는 대로 들으려 하고는 있지만, 청탁자의 기대만큼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는 못하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데에 가장 큰 장애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 <나의 서양 음악 순례>(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창비 펴냄). ⓒ창비 |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나의 서양 음악 순례>는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의 방법론을 음악에 적용시킨 책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났던 서양 음악 이야기를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치열한 역사의식에 버무려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쓰인 이 책이 나와 같은 보통의 독자들에게 주는 효과 역시 전작과 비슷하다. 음악을 듣는 새로운 귀를 얻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이런 장면. 두 아들이 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세상을 뜬 몇 개월 뒤인 1983년 11월 파리의 살 플레옐 홀에서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파리 국립관현악단 연주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듣는 순간, 그는 "등줄이 오싹 서늘해지는 감각, 살갗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물론 공포가 아니라 관능과 매혹이었다. 그런데 음악회가 끝난 뒤 소란하면서도 화사한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어떤 상태였던가. "처절할 정도로 고독했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생애 최초였던 당시 그의 유럽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국제 인권 단체를 찾아가 형들의 처지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속내에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서양 미술의 거장들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리해 있었고(<나의 서양 미술 순례>가 바로 이때 유럽 여행의 산물이다), 마침 기회가 생겨서 음악회에도 갔던 터였다.
인용한 구절에서 보듯 연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그 감동 또한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서경식은 그 감동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지 못한다.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자의식 때문이었다. "내가 몸을 두어야 할 곳은, 예컨대 한국의 감옥이 그렇겠지만, 음도 색도 없이 치열한 투쟁만이 있는 그런 세계"라는 것이 당시 그의 착잡한 심사였다. 요컨대 음악은 그에게 행복과 고통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과 거리가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노라고 지은이는 쓰는데, 분열과 갈등은 '서경식 표 음악 감상'의 키워드라 할 만하다. 그가 안내하는 구스타프 말러 음악의 요체가 분열과 갈등이다. 말러는 국내에도 상당수의 마니아 팬을 거느린 작곡가지만, 그의 음악은 결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서경식 자신 2001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빈 필의 연주로 말러 교향곡 5번을 들으면서(아마도 말러에 접근하기 위한 최상의 레퍼토리요 최상의 연주자 및 지휘자가 아니었을까?) "도대체 이 음악은 무엇을 전달하려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노라고 고백한다.
"오랫동안 말러의 음악에 대해 안개가 낀 듯한 애매한 이미지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그에게 말러에 이르는 문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였거니와, 그가 파악하는 말러 음악의 요체는 바로 분열이었다. "말러는 분열된 존재다―이 인식이야말로 말러의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러가 분열된 존재라는 것은 그가 독일-오스트리아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서 말미암는다. 그보다 반세기 가까이 먼저 태어난 '정통' 독일인 바그너와 말러를 비교하면서 "바그너는 구축하고, 말러는 탈구축했"다고 서경식이 쓸 때, 그 말은 두 음악가의 존재론적 조건과 그들 음악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일러 줌과 동시에 그들의 음악에 다가가는 중요한 팁으로 머리에 새겨 둘 만하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고, 나 같은 아마추어 음악 애호가가 그것을 음악적 경험으로 실감하기까지는 또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빈에 있는 말러의 묘지를 참배하고 와인을 마시면서 "분열된 존재" 말러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서경식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과 같군요…." 아내의 이 말은 <나의 서양 음악 순례>를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서경식이 서양 음악에 다가가는 주된 통로는 역시 자신의 삶과의 관련성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윤이상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도 동백림 사건으로 조국의 감옥에 갇혀야 했던 윤이상에게서 서경식이 자신의 두 형을 보았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개인사적 배경은 윤이상의 낯설고 까다로운 음악에 대한 접근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었고, "예술적 면모와 정치적 면모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통일시키려 했던 드문 천재" 윤이상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첩경으로 구실했다.
예술과 정치의 밀접한 관계는 그가 2000년 이후 11년 동안 해마다 찾았다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기술에서도 만날 수 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잘츠부르크에 '개근'하면서 그가 확인한 것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기획이 후퇴하고 관객 동원력을 중시하는 상업주의가 승리하는 흐름이었다.
"음악제는 실로 정치와 예술이 상극(相剋)하는 장이고, 예술에서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장"이라 믿는 그의 감성에서는 예술적 전위와 정치적 진보가 행복하게 결합하는 모양이다. 서경식 부부는 부록으로 실린 '베스트 연주 3' 목록에서 말러와 쇼스타코비치, 베베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는 물론 이름도 생소한 모턴 펠드먼 같은 작곡가의 현대 음악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데, 아직 걸음마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나 같은 초보 음악 애호가로서는 까마득해 보이는 경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 대본을 썼던 유대계 작가 프리츠 뢰너베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돼 부헨발트 수용소로 끌려가서는 그곳에서 <부헨발트의 노래> 가사를 썼던 사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여성 수인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져 이송돼 오는 수인들을 환영하는 음악을 연주했다는 일화 등에서도 예술과 정치의 불가분리적 관계는 아프게 확인된다. "음악 자체에 (…) 폭력성이 감춰져 있"으며 "아우슈비츠 이후의 음악은 도취와 각성 사이에 매달려 있는 불편함을 받아들이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음악을 대하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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