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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보다 더 위대한 과학자는…

[프레시안 books] 빌리 우드워드의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

몇 해 전, 신종 플루의 공포가 한국 사회를 뒤덮었을 때 나도 떨 수밖에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신종 플루 증세를 보였으니, 부모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평소에 현대 의학을 달갑게만 보지 않던 나로서도 병원이라는 존재에 내 자식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마도, 이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으리라.

질병의 고통에서, 죽음의 위협에서 우리를 구해줄 때 우리는 과학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과학과 의학의 역사는 전염병과 맞서 싸운 이야기, 신체의 비밀을 밝혀내서 질병을 퇴치한 이야기, 품종을 개량하여 가난과 기아를 퇴치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우리 인간의 평균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었고, 그 결과 문화와 지식의 전승이 안정화되면서 발전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이처럼 현대 문명이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데는 과학과 의학이 한 몫 크게 했다.

우리 인간은 현실에 민감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도 현실의 끈은 우리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구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의 저자 빌리 우드워드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개인의 경험(현실)에서 출발하여 놀랍고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펼쳐 보이지만, 그의 과학 이야기는 그의 현실에 한계지어져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의 한계가 아니란 곧 우리 인간의 한계이다. 누구나 자기 식대로 세상을 본다. 저자가 그렇듯, 나도 그렇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붙들어 매고 있는 현실의 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빌리 우드워드 지음, 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 ⓒ푸른지식
저자는 류머티즘의 끔찍한 고통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준 알로퓨리놀이라는 약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지독히 합리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어쩌면 과학에 꽤 어울릴 법한 그런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의 합리성은 자신을 구한 약을 만든 과학자로 향했다.

그러고는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알로퓨리놀과 같은 수많은 약이 존재하고,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심지어 생명을 구하면서도 정작 그 약들을 개발한 과학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인간의 생명을 구한 위대한 과학자들을 찾아 나섰다. 덕분에 우리는 감춰져 있던 과학의 영웅 열 명을 새로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우리 곁에서 묵묵히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것들과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바이다.

이 책의 원제는 "Scientists Greater than Einstein", 즉 '아인슈타인보다 위대한 과학자들'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세계를 열었지만 핵무기의 개발에 기여함으로써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반면에,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숨은 영웅들은 그 반대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니 이들이야말로 아인슈타인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 책은 열 명의 숨은 영웅들, 즉 위대한 과학자들에 대한 헌사다. 그들은 모두 20세기에 활약했으며, 수백만 명에서 수십 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혈액형을 발견하여 수혈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조사와 차단 전략'이라는 혁신적인 접근을 통해 천연두 박멸에 앞장 선 미국의 전염병 학자 빌 페이지, 고집스러움에 행운이 깃든 연구를 통해 인슐린을 만들어낸 캐나다의 의사 프레더릭 밴팅, 철저한 자료 수집과 조사를 통해 비타민A의 효능을 밝혀낸 미국의 안과의사 알 소머, 집요한 연구를 통해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한 일본의 과학자 엔도 아키라, 경구 수분 보충 요법을 통해 탈수 효과를 해결함으로써 콜레라를 비롯한 여러 전염병 치료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온 미국의 소아과 의사 데이비드 날린, 레슬링 선수 출신의 뚝심으로 품종 개량·비료 사용·살충제/제초제 사용 등을 통해 키가 작고 질병에 강한 새로운 곡물 종자를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녹색 혁명을 일으킨 미국의 농학자이자 식물병리학자 노먼 블로그, 획기적인 방식으로 엄청난 양의 바이러스를 배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미국의 세균학자 존 엔더스, 논란의 살충제 DDT를 개발한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뮬러, 페니실린 개발과 대량 생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영국 병리학자 하워드 플로리.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잣대의 간단명료함이다(종종 장점과 단점은 통하는 법이다). 누가 더 위대한 과학자인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책이 추구하는 잣대는 그 과학자의 연구 성과가 살려낸 사람의 수다. 물론, 그 수는 자료와 통계에 기초한 것으로 매우 합리적 방식으로 도출되었다.

물론, 정량적 방법이 그렇듯 '그 수'는 매우 명쾌해 보이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하지만, 더 많은 생명을 구할수록 더 위대한 영웅이라는 상식적 인식론에 따라 이 책의 잣대는 나름의 합리성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모두 떠나서 이 책이 숨은 과학자들의 업적과 과학하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 자체만으로 그 존재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저자의 글쓰기 솜씨(번역 상태도 훌륭하다!)와 문제 핵심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꼽을 수 있다. 책은 술술 잘 읽히고, 이야기는 참 재미있으면서도 핵심을 놓치는 법이 없다. 상당히 전문적인 과학적 내용을 전혀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놀라운 경험을 전해준다.

우리의 목숨을 질병과 죽음에서 구해준 위대한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소방관, 경찰관, 구조대원 등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표지의 제목처럼 '세상을 구한 사이언스 히어로즈'와 같이 존경과 경의를 넘어서서 칭송의 단계(거의 메시아 수준으로)로 들어서면, 우리는 경보를 발령하면서 신중 모드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지나친 칭송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과학의 건전성'에 해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맹신이니 기술 관료주의(테크노크라시), 생물학주의(유전자 결정론, 사회진화론 등), 기술적 해결(사회 문제도 기술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 가령, 식량 부족이 분배에 있음에도 유전자 조작(GM) 작물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 등은 과학기술을 좀 먹는 것으로, 모두 과학에 대한 무조건적 의존과 칭송에 기인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단순한 과학 저술가가 아니라 일종의 과학 운동가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썼을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ScienceHeroes.com)도 운영하고 있다. 궁금해서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위대한 과학자들에 대한 정보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조금은 놀라우면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웹사이트 왼쪽 편에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린 과학자'(따라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순위를 매겨져 있었는데, 맨 윗자리를 프리츠 하버가 차지하고 있었다.

하버가 누구인가? '독가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가 아니던가? 이런 그를 20억 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로 맨 위에 올려놓다니? 그와 카를 보슈가 함께 만든 하버-보슈 제법이 이뤄낸 성과(암모니아 합성을 통해 인공 질소 비료의 개발)를 높이 평가한 결과였으리라.

작은 궁금증이 일었다. 저자는 하버에게 과학의 빛과 함께 독가스 개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다면 왜 하버를 가장 위대한 과학의 영웅으로 다루지 않았을까? 가장 많은 목숨을 구하지 않았던가! 독가스는 독가스, 비료는 비료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하버의 딜레마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는 대학교에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가르친다. 우리가 과학과 과학자 그들의 활동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험실과 사회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과학자의 '순수한' 과학 활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학을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가령, 아인슈타인과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 사이에는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 실험실, 대학, 군대, 심지어 나치 독일이 존재했다.

이렇듯 핵폭탄은 과학과 정치는 물론 갖가지 요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파스퇴르의 백신도 예외는 아니다. 황우석은 '나쁜' 과학자로, 파스퇴르는 '좋은' 과학자로 알기 쉽지만 그들 모두는 정치적인 동시에 과학적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다른 모든 과학자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과학자들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가장 쉽게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는 녹색 혁명의 아버지 노먼 볼로그와 DDT의 개발자 파울 뮬러를 들 수 있다. 녹색 혁명은 제2의 녹색 혁명인 유전자 변형(GM) 작물과 연결되는 것으로 약탈 농법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고, DDT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생태학과 환경 운동을 촉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도 관련 내용이 일부 다뤄지고 있지만, 사회적 파급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관심도 더 뜨거웠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과학자들의 활동 무대와 소속, 연구비 출처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빌 페이지, 알 소머, 데이비드 날린, 노먼 볼로그 등은 모두 미국 과학자들로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기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또 이 과학자들이 목숨을 구해낸 사람들의 국적, 성별, 계층, 연령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는 과학 활동과 외교 활동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선교사가 서양 제국의 문화적 침투로였으며, 인류학이 제국주의 학문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과연, 냉전 시대의 과학은 제국의 정치와 무관했을까?

최근에 영화 <배트맨> 시리즈가 새로운 종류의 영웅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화제가 된 바 있다. 인간적 고뇌를 담아내고 있는 새로운 배트맨은 영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달라진 시선을 담아냈다는 평가다. 이 책에 비슷한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일까? 위대한 과학자들의 훌륭한 연구 정신은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도 함께 담아냈다면 훨씬 더 인간의 모습을 한 과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 책이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담아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훌륭한 과학자를 예비하고 증명하는 것 이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개인이나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더욱이, 과학자들의 연구가 인간의 생명을 구한 것 외에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놓여 있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크다.

어쩌면 저자가 현실적 끈에 붙들린 결과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주목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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