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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괴담…석유 빨아먹는 사람들의 최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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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괴담…석유 빨아먹는 사람들의 최후는?

[프레시안 books]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

흔히 농사라 하면 일반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시골에 내려가 농사짓는 생활을 자연에 귀화하는 행위라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식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것 같은 농사일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실제로 도시와 농촌의 평균 수명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으며, 오히려 도시에 건강한 노인들이 더 많다는 유의미한 통계도 있다.

도시 사람이 실제 농사일을 해보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주말 농장의 열 평 남짓한 텃밭 가꾸기에도 쩔쩔 매는 경우가 흔하다. 농약 안 쓰고 화학 비료 안 쓰고 하는 주말 농장은 애써 키운 작물로 벌레들을 사육하기 일쑤고, 장마와 폭염에는 잡초가 심은 작물보다 무성하게 자란다. 사실 인간이 키우는 작물과 사육하는 가축은 인간의 돌봄 없이는 자연 상태에서 살아가기 힘든 존재다. 더군다나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행위에는 지독한 노동이 따른다.

농사는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자연 친화적인 행위가 아닌 자연 파괴적인 행위이다. 다른 식물들이 자랄 터전을 빼앗아 인간이 자신만을 위한 종자만을 번식시키고, 그 종자도 자연의 이치인 자연 선택이 아닌 인간만을 위한 개량으로 자연의 가혹한 조건에서 살아남는 능력이 사라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벼와 밀과 옥수수는 이미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이 불가할 정도로 변화되었다. 대신 자신의 번식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무한힌 증식시킬 수 있는 악마의 거래를 한 셈이다. 어디 농산물만 그러랴. 인간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가축들도 인간의 필요를 최대한 맞출 수 있는 종들만 살아남았다.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박중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이렇게 일상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농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물음부터 시작한다.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하고도 사냥해서 얻은 고기와 열매를 가지고 생활했던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 여유로운 생활을 포기하고, 흙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거름과 물을 대며 몇 개월을 기다려 수확하고, 다시 이를 말리고 찧어 알곡을 얻어내는 고된 노동의 행렬로 들어섰는지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 <식량의 세계사>(톰 스탠디지 지음, 박중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또는 지식과 관찰의 누적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농업은 인간을 크게 변모시켰다. 영양상으로는 수렵·채취 시대보다 못하였겠지만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고, 여분의 식량 때문에 전문직과 지배 계층이 나타날 수 있었으며, 군집 생활과 도시의 생성과 같은 집약적인 면모는 문명의 탄생을 가져왔다.

실제로 농사의 괴로움은 비교적 편안하고 공정한 수렵·채취 생활보다 힘이 들었을지는 몰라도, 포유류의 한 종으로 다른 동물들과 자연에서 경합했던 인류를 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종으로 만들었다. 식량 생산의 증가에 따라 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했으며, 인간은 지독한 불모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구 위에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성장한 인류는 이제는 지구 자원의 고갈과 기후 변화로 인하여 자신의 장래에 대한 걱정까지 할 정도로 온 지구를 휩쓸고 있다.

이 책은 '세계사'라는 제목처럼 인류가 살아온 역사를 펼쳐놓고 보여주는 책은 물론 아니다. 식량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상의 변동의 단면들을 이슈별로 들여다본다. 물론 저자가 유럽 전통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체의 시각은 유럽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령 계급의 탄생, 향신료에 중독된 유럽인들이 후추와 육두구와 정향을 찾아, 아니 그의 판매를 통해 생기는 막대한 수입을 좇아 인도와 그 주변 지역으로 가려는 힘겨운 노력들 때문에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이를 통해 구대륙과 신대륙의 종자가 교환되어 식량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이는 또한 안정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산업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식이다.

산업 혁명 이후에 맬서스의 <인구론>이 등장하는데, 토지의 생산성이 인구의 증가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인구론>의 예언은 맞지 않았으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산업화는 새로운 식민지에서 경작지를 늘리고 노예 노동을 통해 식량 생산을 늘린다. 급기야는 화학의 발달로 공기 중의 질소를 인위적으로 고정시킬 수 있게 되어 질소 비료를 만들어내고 이를 전쟁에 폭약으로도 썼다. 이 질소 비료의 사용과 종자의 급속한 개량은 적은 토지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었고, 현재의 사상 유래 없는 인구 증가를 이룩한 원동력이었다.

질소 비료를 중심으로 해서 녹색 혁명이 이루어졌기에 지금 지구상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인류 전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굶주림은 비교적 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는 사람들의 농업과 식량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재화와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 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녹색 혁명이 이룬 업적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여곡절을 겪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도 개발을 명목으로 많은 열대우림들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화학 비료의 사용으로 토지의 산성화와 민물과 바다의 오염이 가속화되고 있고, 더 이상 개간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늘어나는 인구를 앞으로 부양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더군다나 화석 연료의 고갈은 농작물에서 연료를 뽑아내려는 시도로 이어지기에 식량 사정의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고, 지금 현재도 곡물 가격은 부침이 아주 심하다. 결국 식량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언제 맬서스의 예언이 다시 현실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사실 우리의 식량에 대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들은 이미 다른 매체나 책들에 의해 다뤄진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관점을 모아 놓고 나면 식량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추동력을 지녀왔으며,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뀌었나를 톺아보게 해준다. 현대 산업 사회로 들어오면서 개발 국가에서는 식량의 중요성이 쇠퇴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농업을 통한 바이오 연료 개발이나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감산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우리 생활과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식량이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변수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크게 보면 화석 연료를 이용한 에너지의 이용도 식량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에너지는 식량의 재배에 필요한 화학 비료의 생산과, 온실 재배, 농경과 완제품의 운송에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러기에 앞으로 인류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에 식량과 에너지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더군다나 식량 자급률도 3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고 에너지와 같은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제적인 식량 생산과 에너지 생산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기업의 이익이 우선한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제도가 우리의 식량과 미래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가 여느 책들과 달리 아주 쉽고 편안하게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데에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학자들의 논증에 대한 지루한 설명과 쟁점들을 생략하고, 문제에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독자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적절한 속도로 제시한다. 그래서 그다지 짧은 책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금세 책의 맨 뒷장을 읽게 된다. 원서의 제목에 있는 "먹을 수 있는 역사(Edible History)"라는 표현이 그저 그냥 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자 책의 초반에 있는 유목을 수렵·채취에 포함시킨 부분은 두고두고 앙금이 남는다. 유목과 수렵·채취가 같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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