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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 메뉴' : 검은 맛 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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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 메뉴' : 검은 맛 주스!

[프레시안 books] 마고 래너건의 <블랙주스>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먼저 항목들을 몇 종류로 분류한다. 해야 할 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한 묶음으로도 충분할 수가 있다. 시설이 모자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면 그렇게 한다. 이제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에 조금씩 하는 것이 너무 많은 양을 한 번에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한 번의 실수는 그 대가가 비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무엇을 설명한 글일까? 위 글의 제목은 '세탁기 사용법'이다. 브랜스포드와 존슨은 독자들이 '세탁기'라는 단어를 듣기 전과 들은 후에 이 글을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실험했고, 그 결과 전자는 후자보다 이 글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이 실험은 독서 교육 이론에서 읽기 전 배경 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자주 인용되곤 한다.

▲ <블랙주스>(마고 래너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펴냄). ⓒ사계절
처음 마고 래너건의 <블랙주스>(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출판사 펴냄)를 읽었을 때, 나는 바로 저 글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정보를 전달하는 글에 비해 문학은 자유로운 상상이 허용되고, 독자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작품을 만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세탁기'와 같은 단서를 단 하나도 내어 주지 않는다는 건, 좀 매정한 것 같다.

이 바람은 비명도 신음도 내뱉지 않는다. 그럴 만큼 인간적이지 않다. 지난봄 강물이 지니 렘프윅을 잡아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반쯤 죽여 놨을 때처럼, 이 바람도 그 강물과 똑같이 사람 같은 하찮은 것이야 어떻든 거리낌 없이 몰아닥친다. (273쪽)

동심의 순수한 상상력을 상실한 내게 <블랙주스>는 저 거대한 바람과 같은 작품이었다.

"여기서 나는 골목길로 빠지려고 해"

<블랙주스>는 <엘로 케이크>, <레드 스파이크> 등의 '색깔 편집작'의 시작점이었던 만큼 색깔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 것 같지만 작가는 조금도 자신의 곁을 내어 주지 않는다. 검은 타르 늪과 괴물이 사는 산기슭, 천사가 사람들로부터 공물을 받고 토해내는 황금총알 등 배경과 전개가 불가사의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친절하게 설명해 달라고 꼬치꼬치 캐묻는다면 그녀의 얼굴 표정이 얼마나 새침할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블랙주스>에 실린 단편 '야울리닌'은'요괴 퇴치 설화'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이다. 야울리닌이 부모님을 죽이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나'는 지금 막 그 상처를 입은 헤로 아저씨의 아들을 위로한다. 딱지 앉은 상처가 생채기 난 상처를 감싸는 장면은 꽤 훈훈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장면마저도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

헤로 아저씨의 잘생긴 아들은 '나'가 그를 야울리닌으로부터 구해줬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용기 있는 소녀의 마음을 저 멀리 밀어내 버린다. 나는 열 편 중 아홉 번째 실린 이 단편을 보면서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하는 해피엔딩을 기대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 거렸다.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결말보다 이 주인공이 그를 마을로 내려 보내며 건넨 마지막 말이 훨씬 감동적이고 통쾌했기 때문이다.

"(난) 신경 쓰지 마. 찾을 줄만 알면 여기는 먹을 게 많거든." (269쪽)

'나무로 만든 신부'는 신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주인공이 결혼식에 가는 길을 다루고 있다. 잘 주차된 리무진과 흰 말, 꽃 뿌리는 사람들 틈에 섞이지 않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로 갑자기 이런 결심을 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골목길로 빠지려 한다." (164쪽)

그녀가 대체 누구와 결혼하는지, 꼭 오늘 같은 날 골목길로 빠져야 했던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없다. 그녀가 선택한 골목길은 온통 막혀 있고 갈려 있고 그녀를 내쫓기만 하는, 축축한 내리막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길에서 햇빛과 하늘, 케일의 보랏빛 이파리,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갈림길에서 선택한다. 그녀는 놀랍게도 자신이 맨발로 걷거나 치맛자락을 둘둘 걷고 뛰면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나는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고 말 것이고 모두가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173쪽)

주인공들은 꽤 멋진 선택을 했다. 괴물과 싸우거나 푹푹 빠지는 진창길을 걸으면서 그들은 '그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재산이나 가족도 없지만 내가 곁에 있길 원하지 않는 이를 당당하게 보내주며, 다른 신부들의 순백함과 조신함, 검소함이라는 미덕을 대놓고 부정한다. 그동안 내가 봐 왔던 청소년 성장 소설이나 동화보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시공간에서 아이들의 성장은 훨씬 강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는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슈퍼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히어로 시리즈나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같은 동화에 익숙해 있다면, 두 인물의 선택이'사서 고생'이라고 느끼진 않을까? 내가 교단에 서게 되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다.

검은 빛 죽음, 그리고 그 다음

이 열 편의 작품을 아우르고 있는 책의 제목 '블랙주스'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과연 맛있는 주스일까? 몸에는 이로울까, 해로울까? 인터넷에 검은색의 의미를 검색해 보았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인디언들에겐 죽은 자에 대한 위로를, 이집트에선 재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검은색에는 으레 떠올리게 되는 어두운 죽음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남, 위로, 부활이라는 꽤 희망적인 요소들도 잠재되어 있다.

마고 래너건은 이 색의 성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블랙주스>에 꽂힌 긴 빨대로 '여럿의 집'의 아덴트와 '봄을 부르는 의식'의 플로리어스, '세상 어딘가에 쓸모 있는'의 할머니, '영원한 빛'의 할머니처럼 삶의 향기를 갖지 못한 존재들로부터 죽음을 깊이 빨아올린다. 생기를 잃고 쓰러진 아이들 그리고 죽은 이를 애도하는 행위의 반복은 어둠에 검은 빛을 더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더 냉정하게 응시하게 만들었다.

그건 바로 이 소설들에는 언제나 죽음, 그 다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죽음으로 어머니와 다시 교감하게 된 아이, 할머니를 마당에 묻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배양토로 덮은 화분의 씨앗이 자라나길 기다리는 아이에게는 슬픔이나 고통을 넘어선 그 다음이 있었다. 마치 '봄을 부르는 의식'에서 거대한 바람을 맞으며 시를 읊어 대던 아이가 불러 온 봄처럼.

오늘의 추천 메뉴: 검은 맛 주스!

운 좋은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똑같은 것만 알려고 한다. 그래, 자기들이 여전히 운이 좋다는 사실만. (247쪽)

똑같은 것만 알려고 하는 '운 좋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불편한 책이다. 그리고 단서가 풍부한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절대로 친절하지 않다.

도트는 어떻게든 셋 모두가 옛날처럼 움직이도록 연주했다. 부지런히 일하는 아네, 사내들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하는 로브레. 하지만 빌야스트라마라탄은 자기 마음대로 왔다 갔다 했다. "이 아이는 계속 붙잡아 둘 수가 없어요." (157쪽)

바로 빌야스트라마라탄 같은 아이가 온 책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아네와 행복한 로브레만을 꿈꾸는 독자라면 이 어두운 분위기를 쉽게 감내하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오렌지 주스나 토마토 주스의 붉은 빛이 모든 주스의 빛인 양 굳게 믿고 싶어 하는 구매자들에게 슬며시 검은 빛 주스를 내미는 것은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굳이 그 주스를 한 번에 '원 샷'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의 절제된 소설 쓰기는 자신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는 철저하게 독자의 몫이며 건강주스가 될 것인지'사탄의 음료'가 될 것인지도 끝까지 마셔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나 역시 작가처럼 아무 단서도 주지 않으련다. 그러나 딱히 오늘 식후 디저트나 식사 대용으로 마실 음료를 선택하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이 글귀가 적힌 메뉴판을 쓱 내밀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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