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몸과 정신에 과도한 힘이 들어간 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익사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2001년 박사 학위를 마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유학 가기 전 대학원 학생이었을 때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사회 과목을 가르친 짧은 한 학기의 경험은 있었지만, 그건 대학 강의와는 전적으로 달랐다. 고등학교와 대학원 사이에는 고등학생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엄연한 수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학생과 갓 학위를 마친 박사 사이에 수준 격차는 있어봤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겨우 발견되는 정도일 것이다.
당연히 긴장했다. 긴장을 감추기 위해 무대 장치가 필요했다. 강단에 오르는 거룩한 처지이니 걸맞은 특수 의상(?)이 당연 필요했다. 짙은 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검은색 구두까지 신었다. 내가 걸친 옷은 단순한 예복이 아니라 일종의 갑옷이었을 게다. 갑옷을 걸치고 전투에 나서는 무사처럼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박사다. 넘보려고 하지 마라!".
갑옷을 걸친 채 낑낑대며 했던 그 강의는 내 인생 최악의 강의 중 하나였다. 갑옷을 걸친 돈키호테처럼 너무나 많은 이론을 게다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설명했다. 마치 내가 세상의 이론을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세상의 사회학 이론 책들이 사라질듯이 절박하게. 첫 강의가 끝났을 때, 나는 적을 무찌른 용맹한 장수가 아니라 창을 들고 적진을 향해 달리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져 엎어져버린 우수운 꼬락서니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 왜 거장들은 무거움이 아니라 특유의 가벼움을 발휘하는지, 그 가벼움은 깊이 없음이 아니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엄을 갖추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갑옷을 벗어 던진 후 반열에 오른 거장들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사뿐 사뿐함을 그리고 거침없음을 따라 배우고자 했다. 거장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마치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은 가벼움, 그걸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거장들이 인생의 후반부에 보여주는 '말년의 양식'이라 했다. 아도르노는 베토벤의 위대함을 말년의 양식에서 찾았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도르노의 베토벤 해석을 확대하여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장호연 옮김, 마티 펴냄)라는 책을 썼다. 아마도 그들은 나비의 날갯짓에 담긴 신비를 풀고 싶었을 것이다.
| ▲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피터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
버거는 따분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포퓰리즘적 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보통 학자들이 재미를 추구한다고 시도하는 가장 값싸고 초라한 선택은 스스로를 연예인화하는 것인데, 버거는 자신을 연예인화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책을 쓰는데 성공했다. 이 책의 재미는 내용이 아니라 전적으로 문체 때문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 책에서 버거는 알프레드 슈츠의 현상학에서 영향을 받은 초창기의 지식사회학적 연구부터 '문화, 종교 및 국제 문제 연구소(CURA)'의 최근 연구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지적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회학자가 아니라면, 버거가 설명하고 있는 지적 여정의 내용은 지루할 수도 있다. 사회학자의 지적 여정에 대한 회고록이라는 내용상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문체는 이 책을 독특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문체는 공기처럼 가볍지만 경박한 느낌은 주지 않는다. 또한 유머러스하지만 실없다는 생각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문체는 40대의 학자가 마치 나는 평생을 학문을 사랑하며 살았노라고 약간의 구리를 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말년의 피터 버거는 사회학자가 된 이유를 40대 교수가 대학원생을 앉혀 놓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40대 학자가 짧은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사의 부름이니 필연적 조우와 같은 폼 잡는 수사학을 사용한다면, 말년의 사회학자는 그 모든 것이 마치 우연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 놓는다. 사회학과 자신의 운명의 거룩한 연관성을 주장하는 40대 학자와 달리, 버거는 '어쩌다가 된 사회학자(accidental sociologist)'이기에 그 말투는 성공한 꼰대와는 너무나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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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피터 버거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단지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공유하는 것 이외에는.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버거처럼 공화당원이 될 리도 없을 것이고,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고 가톨릭 학교를 다녔기에 종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버거처럼 종교적 현상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도 없는 사회학자이다. 버거가 종교와 사회학자로서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힘들게 '방법론적 무신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방법론적 무신론'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론적 무신론'에 가깝다.
게다가 피터 버거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에 둘러싸인 대단히 미국적인 학자이다. 그가 소개하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의 한 가지 사례는 이렇다.
"CURA가 생기고 나서 처음 5년간 우리는 좀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몇 개 시작했는데, 1990년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건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이해 못할 그런 사건으로 시작됐다. 남감리교 대학이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했다. 나야 보스턴 대학을 떠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댈러스에서 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어서 소극적이었는데, 그쪽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방법을 동원해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내려가 그곳 학장과 오랜 시간 면담을 했다. 학장이 봉급을 더 많이 주겠다고 해서 사실상 돈은 충분히 벌고 있다고 했다. 강의를 줄여주겠다고 해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자 학장이 약이 올라 말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그래서 내가 키우려고 애쓰고 있는 연구소 얘기를 했다. 그는 큰 관심을 보였다. 바로 다음 날, 학장은 석유 클럽에서 다섯 명쯤 되는 석유 회사 거물들과의 오찬을 주선했다. 우리는 댈러스의 마천루들이 다 내려다보이는 초고층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자리한 식당에 앉아 있었다. (…) 나는 내가 생각해둔 바를 이야기 했다. 그러자 거물 중 하나가 편지 봉투 뒤에 뭐라고 휘갈기더니 물었다. '천만 달러면 당신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까?' 나는 그렇다고, 그럴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287~8쪽)
이런 일은 한국의 사회학자의 입장에서는 혹시 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자기가 보기에도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 삶을 살았던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에게 내가 강한 애착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처지는 너무나 다르다.
피터 버거에게 느끼는 거리감은 꽤나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20여 년 전 사회학과 학생이었을 때 나 또한 피터 버거의 베스트셀러 <사회학에의 초대>(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를 읽었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론 <사회학에의 초대>는 학생으로서 내가 갖고 있던 사회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배양시키지 못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읽었던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강희경·이해찬 옮김, 돌베개 펴냄)은 아주 재미나게 읽었고, 여전히 그 책을 갖고 있고 심지어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그랬다. 내가 사회학과 학생이었을 때는 1980년대였다. 1980년대의 사회학과 학생이라면 피터 버거보다는 라이트 밀즈에 당연히 끌리기 마련이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2012년 대학원의 사회학 이론 세미나 실라버스에는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독 리스트로 올라있다. 하지만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는 서재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책은 내가 사회학과의 학생에서 사회학자로 성장하는 동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책이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읽으면서 버거의 다른 책을 찾다가 알아챘을 정도로, 버거는 학부 4년, 대학원 석사 2년, 박사 과정 7년 도합 13년 동안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동안 영향력 제로에 가까웠던 사람이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서 피터 버거라는 저자의 이름은 독서의 욕구를 밀쳐낸다. 하지만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라는 제목은 버거란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리 속에서 형성되는 주저함을 날리기에 충분한 마술을 부리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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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사회학자로써 난감한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난 주저하지 않고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그래서 삶의 경험의 진폭이 대학에 갇혀 있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사람들 앞에서 사회학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을 예로 든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다. 이 나이를 먹도록 사회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나의 삶의 경험의 진폭은 '사회학'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좁기만 하다.
사회학자가 설명하는 사회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추상적이라는 게 꼭 단점만은 아니다. 사회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세상살이를 재미나게 설명할 수 있다. 모두의 삶은 자서전을 쓰고 넘칠 정도로 스토리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재미있는 세상살이 설명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이라는 수렁에 빠지기 쉽다.
반면 사회학자의 세상 경험의 폭은 좁지만, 사회학자는 재미있게 세상을 설명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경험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회학자의 세상 설명은 재미없다. 이게 사회학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첫 번째 난제이다. 이 난제를 피터 버거는 유머러스한 문체라는 말년의 양식으로 극복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주의적 미국의 사회학자인 피터 버거를 쓸모없다고 내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보수주의자이든 진보주의자이든 사회학자가 빠지게 되는 두 번째 난제가 있다. 사회학자는 고래 등 사이에서 등이 터질 수도 있는 작은 새우 신세가 되기 쉽다. 사회학자는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발언하는 사람이지만, 사회학자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실재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발언한다. 피터 버거는 사회학자의 이러한 난제를 잘 알고 있는 보수주의적 사회학자이다.
"내 초기 저작의 제목으로 되돌아가 얘기하자면 사회학이란, 사실상 사회 질서에 대한 불안정한 비전에 이르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1)사회학은 모든 제도가 깨지기 쉽다는 것을, 그리고 (2)급격히 해체되면 독재나 무질서라는 이중의 위험에 봉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제 나의 가장 최근의 저서 <의심에 대한 옹호>까지 와서 얘기하자면, 도덕적으로 예민한 사회과학자라면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본능적으로 중도적인 입장(급진적 변화와 완고한 보존 사이의 중간)으로 향할 것이다." (242쪽)
정치가는 보다 편한 위치에 있다. 진보적인 이념을 지향하는 정치가는 (1)"사회학이란 모든 제도가 깨지기 쉽다는 것"에 눈을 돌리고 보수적인 이념을 지향하는 정치가는 (2)"급격히 해체되면 독재나 무질서라는 이중의 위험에 봉착한다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학자는 마음 편하게 정치적 입장에 따라 모든 제도는 깨지기 쉽다는 것과 제도가 급격히 해체되면 새로운 위험에 봉착한다는 것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회학자가 쉽게 양자택일을 하기를 기대한다. 사회학자가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등터지는 새우 신세가 되기 쉽다. 만약 진보적인 사회학자로 알려진 사람이 어느 날 (2)의 측면을 지적한다면, 그 사람은 그가 속해 있던 정치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또한 보수적인 사회학자로 알려진 사람이 (1)을 언급하면, 그는 정치적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보수주의적 정치가와 진보주의적 정치가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놓여있으면서도 사회학자는 (1)과 (2)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없다. (1)과 (2)는 사회학자의 눈에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양자택일 할 수 없는 난제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꼴통 보수주의자라면 이 난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터 버거는 적어도 이런 난제를 인식하고 있고, 이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중 시민권'이라는 독특한 태도를 제시하는 점에 있어서 보수주의자이지만 꼴통은 아닌 셈이다. 꼴통이 아니기에 그는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사회학자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학적 분석은 인간 해방이라는 이념과 양립할 수 있으며,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회학적 해석을 하게 되면 광신주의 같은 데는 빠지지 않게 된다. 사회학은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되면 안 된다. 사회학자는 반드시 객관적인 관찰자와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 도덕적인 참여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는 이 균형점을 '이중 시민권'이라 불렀다." (272~3쪽)
보수주의자 피터 버거는 꼴통이 되지 않기 위해 사회학을 사용했다. 그에게 사회학은 광신주의자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브레이크 장치이다. 그런데 꼴통은 보수주의자의 전유물일까? 만약 진보주의자 내에도 꼴통이 있을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회학자라면 보수주의 사회학자가 꼴통 사회학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꼴통 진보주의자가 되지 않을 비책을 궁리해야 한다.
피터 버거의 이론적 작업에 공감하기 힘들고, 그가 선택한 정치적 입장에 동의할 수도 없지만 꼴통이 되지 않으려는 사회학자의 긴장감은 진보인가 보수인가를 넘어선 문제이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 모든 사회학자가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사회학은 그 자체로 진보적인 학문은 아니다.
진보주의나 보수주의는 사회학이 혹은 사회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지향이다. 어떤 정치적 지향을 선택했는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 이후 남는 책임감이 있다. 진보주의를 선택했든 보수주의를 선택했든, 선택 이후에 남은 의무인 '꼴통 되지 않기'에 성공해야 사회학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사회학과의 교수일 수는 있어도 사회학자라 할 수 없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도, 꼴통 보수주의자가 되지 않으려는 사회학자의 회고록이다. 그래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도, 피터 버거의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읽을 수 있고 읽을 필요도 있는 책이다. 사회에 대해 말하면서도, 사회학을 공부하고서도 꼴통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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