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찬미하고 탐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산다. 영화 <은교>에서 묘사한 여고생을 바라보는 노인의 은밀한 시선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던 것은 '젊음'에 대한 감상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욕망이기 때문일 거다. 젊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명백한 진실의 다른 축에는 '아가씨'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달콤한 호의들이 존재한다. 유독 여자의 나이에 엄격한 사회의 잣대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들 스스로도 끊임없이 서로의 젊음을 감시하고 층위를 나누는 것은 아마 그 달콤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노라 에프런 지음, 김용언 옮김, 반비 펴냄). ⓒ반비 |
심지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각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각본, 연출), <유브 갓 메일>(각본, 연출) 등 90년대의 감성을 정확히 짚어낸 여러 로맨틱 코미디를 창조한 능력 있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로 성공적인 '이직'까지 감행했다. 희곡도 썼고, 그녀가 쓴 소설과 에세이 중의 일부는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경력도 있다.
사생활? 그녀는 총 세 번의 결혼을 했고, 두 번째 남편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것으로 유명한 칼 번스틴이었으며 세 번째 남편과는 지금도 행복하게 산다. 책 날개에 실린 프로필 사진 속 그녀는 날씬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노라 에프런이 2010년에 펴낸 에세이집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에서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사실은 "나는 69살이고,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성공을 거둔 아름다운 여자가 털어 놓는 가장 내밀한 노화에 관한 보고서다.
책의 원제인 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노라 에프런이 가장 먼저 '노화'의 증거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기억력이다. 도로시 파커 같은 명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역사적인 순간의 현장에 있었지만 그에 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민트 잎을 넣어서 만든 그 칵테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구글 검색창을 찾아야 하는 순간들 말이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무척 호감가게 생긴 여자가 알고 보니 여동생이었다"거나, "바람이 잘못 불면 뒤에서 봤을 때 영락없이 대머리처럼 보인다"는 문장은 자조적이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위트를 잃지 않는다. 늙어간다는 사실을 멸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직시하며 자기 비하를 곁들이는 순간, 노화에 대한 감상들은 담담한 기록으로 둔갑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시대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시선 대신, 지난 날을 살살 쓰다듬는 것이 노라 에프런이 나이를 먹어가는 방식이다.
특히 그녀가 잡지 기자로 활약했던 6, 70년대 뉴욕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까지 들뜨게 한다. 자서전이나 에세이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좋았던 나날들에 대한 일방적인 회고와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다른 책들과는 달리 여자 기자가 극히 드물던 시대, 샴페인 축포처럼 낭창낭창했던 시간, 그 한복판에 있었던 경험담을 털어놓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순수한 사랑 고백에 가깝다.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 직업에 종사했다. 나는 그 스피드를 사랑했고, 마감을 사랑했다"는 문장은 일간지든 잡지든 간에 원고 마감이 뭔지 아는 이라면 무릎을 치면서 반가워할 문장이다. 고작 3년 차에 불과한 나조차도 그녀가 사랑했던 공기가 어떤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빈자리를 느낀 순간,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감상, 남편의 불륜과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등 다양한 소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을 말하라면, 하드보일드 작가 대실 해밋의 연인이었으며 극작가인 릴리언 헬먼과의 관계를 회고하는 챕터를 꼽겠다. 한때 우상에 가까웠던 동성의 연장자에게 가지게 되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인터뷰를 통해 릴리언 헬먼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가까워지지만, 한때는 자랑스러웠던 헬먼의 편지와 전화가 귀찮아지면서 결국 남편과의 이혼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절교에 이른다. 그 과정을 노라 에프런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든 여성을 우상화한다. 따라 다닌다. 나이 든 여성은 받아들여 준다. 그 순간 젊은 여성은 그 나이 든 여성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 끝.
세월이 흐른다. 젊은 여성이 나이가 든다.
그리고 로맨스가 그렇게 끝장난 것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지금 쓰는 글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과문이다."
명쾌하고 인간적인 감상이다. 인생에는 분명히 그 시기를 지나기 전에는 짐작은 가능하지만 명확히 알 수는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나보다 나이 든 여성을 이해하게 되는 일도 그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노화와 정체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며, 사람들은 변화와 약동을 젊은이의 것으로 명명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세상이 나이 든 이들의 감상에 귀 기울이지 않고 '늙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에 대해서 상상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닐까?
책장을 덮으며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갱년기를 지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우리 엄마. '환갑'으로 정확히 명명되는 고비를 향해 가고 있는 엄마도 아마 풍부하게 많은 것을 느끼고 있을 거다. 퇴직, 다 자란 두 명의 딸, 20대부터 삶을 공유해 온 남편, 이미 세상을 떠난 친 오빠 둘, 얼마 전 요양원에 들어가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엄마의 엄마…. 엄마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더 무겁고 애틋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30년 넘게 일을 했던 엄마의 생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끔은 가족을 힘들게 했던 예민함이 사실은 외로움과 자기보호 본능에서 기원한 것임을 비로소 안다.
그리고 엄마가 새로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처음으로 텃밭 농사를 짓고, 처음으로 개를 기르고, 처음으로 정신 분석 공부를 시작한 55세의 엄마. 이 모든 것 역시 내가 조금이나마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일 것이다. 노라 에프런은 지난 6월 26일,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71세였다. 그녀의 죽음을 듣는 순간 내가 쥐고 있는 젊음이라는 감각을 실감하면서 엄마, 이모, 고모, 할머니 등 내 주변의 나이 들어가는 여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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