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운동권도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누군가 이 책을 굳이 찾아서 읽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그들이 어떻게 주사파가 됐는지 알고 싶어서 읽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어떻게 주사파가 됐는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세간에 유통됐을 경우 또 운동권인 내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파진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나는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은 셈이다.
그런데 의외로 나쁘지 않다. 물론 내용 자체야 대개는 다 아는 내용들이지만 오히려 바로 그렇다는 점에서 이 책이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운동권 사회의 관습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다. 만약 이런 제목을 단 책이 나 같은 운동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그건 나쁜 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뻥'이 상당 수 들어간 책이었을 것이므로.
▲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 지음, 바오 펴냄). ⓒ바오 |
아마 다수의 사람들은 '작은 것'에 해당하는 것이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이고 '큰 것'에 해당하는 것이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생명 연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작은 것이 통합진보당이고 큰 것이 이석기, 김재연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핵심은 사상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로 대표되는 민족해방(NL) 파 일반은 '동지'에 대한 책임 의식과 이를 통한 조직 단결의 논리에 매우 익숙하다. 이것에 익숙한 이유는 그들이 공유하는 사상으로부터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운동에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중요하고, 내가 훌륭한 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내가 동지를 대하는 태도로부터 결정된다.
내가 동지를 쉽게 버리고 배신한다면 그것은 나의 품성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며 이러한 상태로는 운동의 과업을 제대로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이 '품성론'이라는 NL 사상의 일부다. 즉, 이들에게는 동지를 지키는 일 그 자체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활동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에게 있어서 이석기, 김재연에 대한 제명 요구는 단지 정치적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버려야 하는 문제로 인식된다. 즉, 통합진보당 내의 소위 혁신파는 구당권파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였던 셈이다.
조직관이 사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 늘 문제가 돼왔던 이들의 패권주의적 행태가 이들이 신념을 바꾸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나타낸다. 이들의 전횡을 견디다 못한 좌파들이 2007년 민주노동당을 나올 때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의 청산'을 동시에 내걸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의 소위 당 내 자주파들은 패권주의의 문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종북주의라는 혐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였고 민주노동당을 쪼개는 데 동의할 수 없었던 좌파 일부 인사들도 NL들의 이러한 볼멘소리에 동감을 표시했다. 머릿속으로는 종북을 하든 뭘 하든 내버려두고 패권주의적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순진한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게 이제 증명됐다.
통합진보당을 창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비록 NL들이 아직도 북한에 대한 지나치게 우호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했지만 과거의 분당으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것이므로 과거처럼 패권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소위 구당권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청산하지 않으면 패권주의도 청산이 안 된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자. 한 인간의 사상은 그가 처해있는 현실로부터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회고하고 있는 1990년대 학생 운동 판에서 NL 파들의 생활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잘 살펴보면 당시 운동권들이 자신들을 재생산한 방법은 다단계나 종교가 선택하는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 사상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게 아무리 허점이 많은 사상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해 이것이 관성이 되도록 만들 수 있게 된다. 함께 술을 마시며 인간적 믿음을 갖게 하고,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NL적 인식에 대해 학습하며, 토론의 뒷풀이에서는 인간적 믿음을 기반으로 해 집회의 참여를 제안하고, 건수가 있으면 품성론을 주제로 한 시가 실려 있는 책을 선물하는 등 개인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NL에 맞는 것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동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활동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
20년 전부터 좌파들이 NL 파의 이런 문제점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입이 아프게 설명해왔지만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심지어 좌파 중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NL 파의 패권이 그들의 사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 'PD도 권력을 잡으면 다른 정파를 탄압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 하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들의 마음은 아주 답답해진다. '비록 정도(正道)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 조직적 이득을 위해 패권을 휘두르는 것'과 '패권을 휘두르는 것이야 말로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같은가? 전자는 그 정도와 관계없이 납득은 안 되더라도 상식적 이해가 가능한 영역에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는 다 잘했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상이 달라도 80년대, 90년대에 학생 운동을 했던 좌파들도 NL 파의 그것과 비슷한 답답함은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학생회 간부의 관료화와 상층부의 조직적 합의나 지시 없이는 어떤 사업도 벌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등은 NL 파나 좌파나 똑같이 맞닥뜨리는 문제였다.
자기가 학생 운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인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이를 감수할 만한 대의가 필요한데 초기에야 추상적인 정의감, 의무감, 사명감 등을 갖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해도 과정 자체가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 학생 운동을 지속할 경우 이러한 대의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의, 즉 '대체 왜 나는 학생운동을 하는가?' 라는 물음에 좌파들의 답은 '서구 이론을 탐구해서 그 이유를 알아보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론의 숲을 방황하며 길을 잃고 서로 반목하며 수십 개의 정파로 갈라졌다. NL 파의 답은 '그것은 우리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 알고 있으므로 그 분이 시키는 대로 과업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인민들은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게 되어 있으며 그때가 되면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자위한다. 이것이 사상과 품성이 연결되는 고리이다.
때문에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이 받는 모든 잡스러운 비난을 외면하고 참 진보(?)의 한 길만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것이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국회의원 이석기는 너털웃음을 잃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의 진정성을 인민들이 알아줄 그 날이 올 것임을 낙관하면서, 자신들의 신념과 사상을 훼손하려드는 종파들을 향해서 단호한 자세로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이걸 다 알면서도 매번 당하는 우리의 동지들이 정말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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