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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야? 도깨비야?" "야, 나 너랑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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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간첩이야? 도깨비야?" "야, 나 너랑 똑같아!"

[프레시안 books] 홍명진의 <우주 비행>

1. 긴가민가, 우리 사이

주말에 TV를 보는데 마침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남자, 북녀(北女)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탈북 여성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결혼을 앞둔 '남남'과 '북녀' 커플이 나와 시선을 끌었다. 방송을 빌려 프러포즈를 하겠다며 남자가 그녀에게 편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 편지글의 어떤 한 마디가 넋 놓고 시청하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처음 당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했을 때, 여성 간첩인가 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긴가민가하지만…."

긴가민가. 처음에 북한 출신인 것을 모르고 만났다가 나중에 그것을 알고 몰래 뒷조사를 해 봤다는 남자. 이제는 그녀의 출신을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곧 결혼도 할 것이지만 마음 한 편에 분명치 않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사랑을 지켜가는 마음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만일 내가 그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얼른 답을 내기가 어려웠다.

나는 반공 교육을 받던 세대도 아니고 북한 주민이나 탈북자들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나 역시 무장공비나 여간첩 사건 또는 최근에 불거진 종북 논란 등 판단을 흔들어 놓는 이슈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탈북민의 공간이 나도 긴가민가하기만 했다.

2. "너, 여기 왜 왔네?"

이곳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연히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애들과 달리 형은 끊임없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 "이쪽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 나라의 고아일 뿐이지만 나는 어느 나라 고아인지 그것까지 고민해야 돼." (183~184쪽)

▲ <우주 비행>(홍명진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출간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을 들어 우주 공간을 유영(遊泳)하는 소년이 그려진 <우주 비행>(홍명진 지음, 사계절 펴냄)의 표지를 쓰다듬어 보았다.

우주 비행이라. 제목만 보면 <파리 대왕>이나 <피터팬> 급의 환상적인 유토피아를 우주 공간에 마련해 놓았을 것 같은데 예상 밖에 이 소설은 탈북한 열아홉 살 승규-남한에서는 적응 기간을 벌기 위해 열일곱 살로 입국한-의 이야기였다. 판타지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도 현실적이고 민감하기까지 해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휴전선 경계 어디엔가 묻혀버린 그런 이야기.

승규는 월경하던 중 누나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엄마와 둘이서만 남한으로 넘어왔다. 임대 아파트촌에 정착한 승규는 검정 고시를 준비하고 엄마는 밤낮없이 식당일을 하며, 중국으로 갔다는 누나와 연락하기 위해 애를 쓴다. 승규는 자신을 보호하는 건지, 감시하는 건지 모르는 사회복지사 '노랑머리'의 끈질긴 설득의 힘으로 '우주 비행'이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게 되면서 점차 자신의 꿈을 키워 가게 된다.

작가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한 1인칭 승규의 목소리로 승규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강상중의 책 <고민하는 힘>(사계절 펴냄)을 떠올렸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재일교포인 그와 나의 태생적 차이 때문에 사람의 고민의 뿌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그가 사춘기 동안 끊임없이 했다던 고민인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로 귀속되는가?'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과 한국 사이의 디아스포라(타국에 흩어진 유대인을 뜻하는 말로 이주자를 통칭하기도 한다)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적어도 국적의 고민이 없는 나와 질적으로 차원이 달라보였던 것이다.

"니네들은 여기 왜 왔네? 딱 까놓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왔어. 긴데 왜 왔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네. 살려고 왔다 기러지." (63쪽)

작품 속에서 이 말을 한 주인공은 쉼터에서 만난 완률이다. 완률이는 공부가 재밌어서 쉼터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남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지만 끝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한다. 승규와 같이 가족의 손에 이끌려 함께 왔든지, 완률이와 민우처럼 홀로 도망쳐 나왔든지 이들은 '나는 누구인가?'와 함께 '나는 남한에 왜 왔는가?' 그리고 '왜 나는 내가 온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가?' 하는 당최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까지 떠안은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한다.

3. 디아스포라와 새터민

서사 전체가 승규의 목소리로 전개되고 있지만 나는 다른 인물들에게 승규 못지않은 관심을 두고 읽었다. 그건 어머니와 누나, 밴드부 사람들, 사회복지사, 임대 아파트의 이웃들, 쉼터에서 만난 새터민 친구들의 삶이 넓은 의미에서 모두 디아스포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국적, 장애, 경제력, 학력, 성, 인종, 종교 등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어딘가에 귀속되기를 바라지만 경계를 맴돌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은 사실 내 주변 그 어디에나 있지만 또 사회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낯빛들이다.

승규가 자신의 출신을 쉽게 밝히지 못하고, 남이 그것을 알까 모를까, 또 알게 된다면 나를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온전히 자신을 목소리를 드러내길 두려워한다. 그보다는 습관화된 냉소성과 공격성, 또는 방어 태세로 상대를 대하기 쉽다. 바로 이러한 점이 승규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꿈은 주변 인물들 그리고 독자들의 그것과도 정확히 같이 만나고 교감하게 하는 것 같았다.

완률이는 공부는 재미있는데 친구를 사귀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이 하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낄 수도 없고, 누가 자기에게 다가와 말을 걸 때도 실수를 할까 봐 진땀이 난다고 했다. (…)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말을 걸 수가 없다고 했다. (62쪽)

정규 교육 과정 안으로 걸어 들어간 완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승규, 춤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민우 모두 자신의 출신을 숨긴 채 사람을 대하는 것이나, 사람들이 자신을 북한 출신인 것을 알고 경계하는 것이나 모두 불편해 한다. 남한에 올 때 대단히 큰 환대를 바라고 내려온 것도 아니지만 자신을 하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먼저 다가가기도 쉽지가 않다.

새터민들의 삶을 우리 사회가 이제 막 주목하기 시작한 다양성들의 일부로 보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나는 처음 책을 읽을 때 승규라는 인물을 새터민으로서가 아닌 사회적 약자라는 일반론으로 끌어 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승규를 보면 볼수록 그가 겪은 탈북 과정에서의 고통과 남한에서의 상처를 일반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내려오자마자 '나는 왜 내려 왔는가?'를 자문(自問)해야 하는 사람들의 문제에 보다 깊고 자세한 관심을 따로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배곯아 죽을 바에야 북으로의 송환도 두렵지 않다며 북한 감시원과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가족을 버리고 내려와선 평생 자신의 생존과 자유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을 단순히 방황하는 10대 청소년의 성장 소설로 분류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4. 나도, 너처럼, 사람이다!

책을 덮자 띠지에 인쇄된 '제10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눈에 들어왔다. <편견>(뜨인돌어린이 펴냄)에 실린 '새터민 석철이'라는 동화가 있다. 석철이는 북에서 강냉이 도둑질로 수용소에 갇혔다가 자신 때문에 다른 수용소에 갇히게 된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둔 채 남으로 내려온, 누나 손을 놓친 승규만큼이나 사무치는 아이다.

남한에서 초등학생이 된 석철이는 자신을 '엄마를 버리고 도망 온 꽃제비'로 부르는 아이들과 늘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온 뱀을 석철이가 맨손으로 잡으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점점 회복된다. 이 작품을 쓴 동화작가 고정욱은 통일 한국의 미래 주인이 될 아이들이 새터민과 같은 약자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썼다고 했다.

홍명진의 <우주 비행>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터민들은 다문화 가정과 달리 정치적 이슈에 따라 언제라도 그 관계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실상도 언제든지 다시 묻힐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탈북의 과정도 이유도 각기 다른 2만5000여 명의 새터민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이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부모 손에 이끌려 탈북한 청소년들이 10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만약 단편적인 사실이나 상상력으로만 글을 쓴다는 것은 서로에게 더 큰 오해만 일으키고 말 것이다.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아닌 소설 형식을 취하되 최대한 르포르타주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창작함으로써 남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청소년들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나는 그게 이 작품에 주어진 대상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툭하면 너는 뭐냐고 묻는 게 버릇인 모양이다. 그래, 너 때문에 나도 내가 뭔지 오랫동안 고민 좀 했다. 너는 너 자신이 뭔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보고 그런 소리를 나불거리냐?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부지게 말해 줬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163쪽)


남한의 아이들이 지금 북한의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그 반대의 경우나 너무 많은 편견이 개입되어 있다. 우리가 북한의 실상을 궁금해 하는 것만큼 탈북 이주민들도 남한의 삶 곳곳을 궁금해 하지만 속 시원하게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또 남한 아이들은 통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적대 감정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고, 정권에 따라 온화와 경색 사이를 오가는 상황에서 막연한 동정이나 공포의 양가감정이 아니라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는 승규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도, 너처럼, 사람이다.'라고.

5. 날아라, 우주비행!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중에 마침 교육방송(EBS) <다큐프라임>에서 '탈북, 그 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연작으로 방영 중이었다. <우주 비행>을 읽은 후에 탈북 이주민들과 청소년들의 인터뷰를 다시 보니,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승규, 어머니, 복 씨와 복 씨 부인, 완률과 민우 등-의 삶이 실사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탈북 청소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한다는 대안 학교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의 인터뷰가 이 소설이 전하려는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 옮겨 적어 본다.

"나는 이 아이들이 남한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을 쫓아가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 아이들은 우리의 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채워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승규의 꿈의 우주선은 이제 막 불꽃을 내뿜으며 무한한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기 위한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다. 베이스드럼을 발로 '쿵!' 밟고, 드럼스틱으로 스네어 드럼을 '딱!', 하이햇 심벌을 '칙!' 치는 순간을 국경을 넘던 그 날의 역사적 순간에 비유할 줄 아는 이 친구의 비행을 이제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먼저 제 2, 3의 '우주비행'들을 응원할 것이다. 긴가민가한 사이가 아닌 걸릴 것 없는 넓은 우주 공간을 향해,

"날아라, 우주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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