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거를 앞둔 군사적 공세?
그곳 가자 지구를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정치 세력 하마스를 상대로 이스라엘군은 걸핏하면 무력공격을 거듭해왔다. 2012년의 끝자락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또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하마스 산하 군사조직 '이제딘 알 카삼' 여단의 지도자 아흐마드 알 자바리가 폭격에 맞아 사망한 뒤로 양쪽의 포격전이 이어졌고, 가자 지구는 전쟁의 먹구름에 휩싸였다.
이번 공습엔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다는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리쿠드당 당수)를 비롯한 이스라엘 매파 세력이 하마스를 자극함으로써 2013년 1월로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바로 4년 전에도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지구를 침공한 바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세는 단기간에 커다란 희생을 안겼다. 사망자는 1400여 명(그 대부분이 전투원이 아닌,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다)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사망자가 13명(그 가운데 5명은 이스라엘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극이라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인명 피해도 피해려니와 많은 집과 건물들, 농경지가 못쓰게 됐다. 2만 1000여 채의 집이 부서졌고, 완파 또는 반파된 공장이 220개에 달한다. 또한 많은 경작지와 더불어 상하수도와 전봇대 등 사회기반 시설들이 파괴됐다.
철저히 파괴된 가자 지구
2009년 1월 이스라엘군이 가자에서 철수한 바로 직후, 필자는 이집트 라파 지역을 통해 가자 지역으로 들어갔었다. 그곳은 거대한 파괴 현장 그 자체였다. 무너져 내린 건물이며 주택, 불탄 채 버려진 자동차들, 탱크와 불도저로 갈려 쓰러져 누운 올리브 나무들…. 곳곳에서 메스꺼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노먼 핀켈슈타인 지음, 김영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돕는 유엔기구인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관(UNRWA) 창고마저 이스라엘의 공습을 비껴가지 못했다. 현장에 가보니 타다 남은 구호물자들이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UNRWA 대변인은 "난민촌을 파괴하고 점령 지역의 민간인들을 강제 이동시키는 강압조치는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위반하는 뚜렷한 전쟁 범죄 행위"라고 이스라엘 정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하늘로 보고 누운 레미콘 차량들
현지 취재 때 이스라엘군의 파괴 현장을 둘러보다가 눈길이 머문 곳이 건축용 시멘트를 버무리는 레미콘 공장이었다. 그곳 공장 기계들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철저히 망가진 상태였다. 레미콘 차량들이 모두 벌렁 뒤집혀 하늘을 보고 누워 있거나 옆으로 넘어진 상태였다.
그곳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주장을 들으니 기가 턱 막혔다. "전쟁이 끝난 뒤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려면 레미콘 공장이 잘 돌아가야 하는데, 이스라엘 쪽은 전후 재건 자체를 훼방 놓으려고 저런 못된 짓을 저질렀다." 설마 그럴 리가. 그들도 사람인데…. 저 레미콘 공장은 군수용 물자를 만드는 곳도 아닌데…. 정말로 왜 그랬을까? 의문은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까불면 안 된다는 걸 이해시켜라"
노먼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김영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그런 의문을 말끔히 풀어준다. '은폐된 학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정치적 계산 아래 의도적으로 철저히 파괴할 준비가 돼 있었음을 낱낱이 폭로한다.
"이 작전 이후 가자에 하마스의 건물이 단 한 채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이스라엘 방위군 부참모장 댄 하렐) "하마스와 관련된 모든 것이 정당한 공격 목표다."(이스라엘 방위군 소령 대변인 아비탈 레이보위츠) "그들이 우리에게 까불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가자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 이는 테러리스트들의 건물 수천 개를 모두 파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그리함으로써 그들은 로켓 발사를 망설이게 될 것이다. (…) 이 작전이 엄청난 성과와 함께 끝나기를, 테러리즘과 하마스를 완전히 박멸하며 끝나기를 바란다. 내 생각에, 그들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수천 개의 건물, 터널, 공장들이 파괴될 것이다."(부총리 엘리 이샤이) (47쪽)
가자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파괴는 분명 일찍이 (이스라엘이) 공표했던 "테러리스트" 및 "테러 시설"의 소탕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집단 처벌이라 하기에도 지나친 수준이었다. 주택, 학교, 대학, 농장, 모스크 등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는 가자를 문자 그대로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이스라엘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107쪽)
이스라엘 지도부의 속셈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무엇을 노리고 가자를 침공했을까. 핀켈슈타인의 물음처럼, 이스라엘은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2008년 6월, 이집트의 중재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해 11월, 이스라엘은 1955년 2월에 자신들이 자행했던 가자 접경 지역의 유혈 낭자한 습격을 똑같이 되풀이함으로써 휴전을 위반했다. 그 목적은 물론 일부러 보복을 유발하여 더 큰 공격을 가하기 위한 빌미를 제공받으려는 것이었다. (31쪽)
2008년 12월 초, 이스라엘의 외무장관 치피 리브니는, 비록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일시적인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긴 휴전은 오히려"이스라엘의 전략적 목표에 차질을 빚을 것이며, 하마스를 강력하게 만들 것이고, 또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인정한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자면, 너무 긴 휴전은 하마스의 언행이 일치하는 실용주의를 빛나게 할 것이고, 때문에 이스라엘은 외교적 해결을 위한 협상에 임하라는 국제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웨스트뱅크라는 중요한 지역을 계속 보유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목표는 위험해진다는 것이다.(67쪽)
핀켈슈타인에 따르면, 가자 침공을 시작한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목적은 "이스라엘의 전쟁 억제력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하마스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적들이 과거에 자신들을 두려워했던 정도 혹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정도보다 덜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상식적인 전쟁에 따르는 모든 부담을 피하겠다는 이유에서 전쟁 억제력 회복의 대상으로 방어력이 가장 취약한 가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군의 마구잡이 파괴 행위는 "이스라엘의 적들보다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눈, 즉 복수와 국가적 자존심에 목마른 눈들을 의식한" 결과로 분석한다.
"단순히 선거 때문은 아니다"
2012년 말 가자지구 사람들은 잇단 이스라엘의 공습이 4년 전 이스라엘의 침공(2008년12월~2009년1월)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이스라엘은 2013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4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핀켈슈타인의 주장에 주목해 보자. 그는 4년 전 이스라엘의 침공을 단순히 총선거를 앞둔 정치 상황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지닌 진정한 원인에 관한 초기의 추측은 곧 다가올, 즉 2009년 2월 10일에 있을 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득표를 위한 경쟁은 "복수와 피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힌 이 스파르타식 사회에서 의심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39쪽)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이 더욱 추잡해진 최근의 몇 십 년 동안에도 (선거 승리라는) 정치적으로 당파적인 목적을 위해 시작된 군사행동의 사례를 찾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 가자 침공의 중요한 동기는 선거 일정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이스라엘의"전쟁 억제력" 회복의 필요성에서 찾아야 하며, 그다음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새로운"평화 공세"로 인한 위협에 대응할 필요성에서 찾아야 한다. (40쪽)
이스라엘의 의도가 다가올 총선을 앞둔 정략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가자 침공과 그에 따른 살육 파괴 행위는 전쟁 범죄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전쟁의 기본규범이라 할 '분별'과 '비례'를 깡그리 무시했다고 분노한다. '분별'은 전시에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고 민간인을 공격하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비례'는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공격할 때 지나친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됨을 말한다. 소총을 들고 덤비는 적에게 대포를 쏘며 대응하지 말라는 얘기다.
철수 앞둔 의도적 파괴 행위
이스라엘은 위의 전쟁 규범 원칙들을 무시하고 민간인을 군인과 구별하지 않은 채 필요 이상의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하여 민간인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 저자는 국제인권단체의 보고서를 빌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이렇게 고발한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민간 건물 및 시설들에 대한 "파괴는 대체로 의도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은 고의적이고 불필요한 재산 파괴, 민간인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한 공격, 그리고 타당한 군사적 목표물과 민간인들의 구별에 실패한 무차별 공격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 엄청난 파괴의 시기와 속도는 국제사면위원회의 조사에 힘을 실어준 한편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해명에 손상을 입혔다.(86쪽)
음료수, 아이스크림, 과자, 펩시콜라 공장들을 포함한 민간 건물 및 시설들에 대한 파괴의 90퍼센트는 이스라엘 방위군이 완전히 장악해서 거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던 지역에서 침공의 마지막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또한 그 파괴는 대체로 이스라엘 군대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86쪽)
이스라엘에 못 가는 양심적 유대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이미지와 현실>(김병화 옮김, 돌베개 펴냄), <홀로코스트 산업>(신현승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등의 번역서로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 핀켈슈타인(1953년 뉴욕 출신)은 나치 독일이 만든 폴란드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부모로 두었다. "다른 무엇보다 당신들은 유대인"이란 이스라엘 초대수상 벤-구리온의 말이나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그러나 핀켈슈타인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적 행위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양심적인 미국 지식인으로, 이스라엘은 그를 입국금지 목록에 올려놓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에서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책이
미국 유대인 압력 단체들과 유대인들이 장악한 미디어로부터 <태곳적부터>는 격찬을 받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사실 20~30년 전에 그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며 그 전에는 빈 땅이었다"고 유대인들이 주장할 때 그 근거를 대는 '권위서'가 됐다. 그러나 핀켈슈타인은 국내에도 소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에서 피터스의 책을 '희대의 사기 작품'이라 혹평한 바 있다.
"그들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자"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그로 하여금 미국 내 유대인 주류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했다. 미국의 친 이스라엘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자기혐오에 빠진 유대인'이라 낙인찍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급기야는 지난 2007년 그가 재직 중이던 시카고 소재 드폴(DePaul)대학에서 테뉴어(tenure: 종신 재직권)를 받지 못하고 교단을 떠나야 했다.
지난날 남아공은 인종차별로 올림픽에 참가 못했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의 뒷심으로 국제 사회에서 활보중이다. 무차별 학살과 폭격은 분명히 전쟁 범죄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전쟁 지도부를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끌어낼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뒤에는 현실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 있는 까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강고한 동맹국가로서, 해마다 30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건네 왔다. 그런 가운데 팔레스타인은 희생자의 이미지보다는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로 낙인찍히곤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보다도 더 심한 인종 차별 정책을 펴는 이스라엘, 그리고 이를 눈감아주고 감싸온 미국의 유대인들 눈에 비친 핀켈슈타인은 '배반자'이자 '민족 반역자'인 셈이다. 핀켈슈타인은 책 맨 끝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희생시켜온 전쟁 범죄적 행위를 잊지는 말자고 독자들에게 당부하듯이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옮기며 그의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은 심각한 사건이다.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1947년 7월2일.(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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