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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에도 출판 주역은 '수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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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에도 출판 주역은 '수험서'였다?

[프레시안 books] 이노우에 스스무의 <중국 출판문화사>

'프레시안 books' 담당 기자가 필자에게 <중국 출판문화사>(이노우에 스스무 지음, 이동철·장원철·이정희 옮김, 민음사 펴냄)의 서평을 의뢰했을 때는 아마 두 가지 정도 생각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하나는 필자가 비록 예전이기는 하지만 중국학을 공부하여 중국 책에 대해 좀 배운 것이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직업이 '출판'이라 출판에 대한 것도 얼마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 짚었다. 중국학을 아예 잊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고전에 대한 관심은 그저 그 내용과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은 훗날 위작이라는 것 정도이고, 출판을 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출판은 오로지 서양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지금의 출판을 하는 언어만 한글이라는 것뿐이지, 책의 모양새에서 편집 기준은 거의 온통 서양의 것을 가져다 쓰고 있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이 책의 관심 분야인 중국의 책도 그렇고, 이 책 저자의 모국인 일본도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출판을 하지만 정작 그 틀은 서양의 것을 빌어서 쓰며, 그 책을 인쇄하는 기계도 거의 서양 것이 아니면, 서양 것을 배워 만든 일본 기계다. 심지어 책을 만드는 종이도 서양의 나무를 들여다 만든 펄프로 서양식으로 만든 종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날 책은 어떤가? 목판본이든 금속활자본이든 옛 책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로되 정작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책의 표지를 꾸민 능화판만 아름다움이 가물가물 할 정도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 책의 서평자로는 지극히 맞지 않는 사람이고, 그럴 능력도 없다. 하지만 그 청탁을 덥석 문 것은 이 책의 제목을 들으며 불쑥 떠오른 읽고 싶다는 욕망 탓이다. 그 옛날 중국의 책들은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팔리고, 어떻게 독자들이 읽었을까 하는데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이 책을 받아들고 읽으면서 이 책이 그 호기심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 <중국 출판문화사>(이노우에 스스무 지음, 이동철·장원철·이정희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출판이라고 하면 어떤 글을 종이에 써서 돌려보는 정도에 그치는 용어는 분명 아니다. 어찌되었든 맥락에 따라 한 권의 분량으로 저술하여 편집하고 인쇄판을 만들어 종이에 찍어 내어 한데 묶은 것을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 '출판 문화사'이기는 하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상고의 죽간이나 목간으로 된 책, 붓으로 베낀 필사본들을 포괄하고 있으니 전 중국의 역사 시대를 포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필사 시대의 책을 "계륵 또는 군더더기일지도 모른다"는 겸양의 말을 했지만 결코 앞을 모르고서 뒤를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저자는 후기에서 본디 전공인 명나라 시대의 출판 문화사를 먼저 쓰고 나중에서야 이 필사 시대의 책을 썼노라 고백하고 있지만, 책이란 물건은 필사이든 인쇄이든을 떠나 그 맥락에서는 하나로 보아야 마땅하니, 종이의 발견 이전, 또는 인쇄의 유무를 떠나 그 처음부터 살펴봐야 제대로 맥락을 제대로 꿸 수 있다.

지금은 생각하기 아득한 일이지만 종이도 없던 시대의 글쓰기와 글들을 묶어 책으로 만들기의 고단함은 좀처럼 짐작하기 어렵다. 죽간이나 목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로되, 그 구체적인 상황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책이라는 한자가 목간 둘이 끈으로 연결된 형태를 본뜬 것이란 사실은 알지만, 그래서 그 분량이 한 수레 두 수레의 분량이 된다면 이를 어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주 왕실이 쇠미(衰微)하고 그 전적들이 민간에 흩어져 제자백가의 단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인 느낌은 없었던 것이다.

<중국 출판문화사>는 그런 작은 사실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실제로 이렇게 부피가 큰 책들을 소장할 장소는 왕실밖에 없었으며, 그렇게 책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재원을 가진 곳도 왕실밖에는 없었다. 비록 뒤에는 이들이 흩어져 이미 주나라의 왕실처럼 거대해진 제후국이나 공경들이 소유하기도 했겠지만, 우선 책을 만들고 보관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돈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비록 이들에 관한 역사적 기록의 증거들은 희미하지만 이 책은 한미한 기록을 가지고 꼼꼼하게 책들을 어느 정도까지 소장하고 있었는지 밝히려고 애쓴다. 이렇게 세부적인 사실을 통해 독자들은 시대의 지식인들의 지적 상황과 환경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에 대해 마치 지금의 종이책들을 불사르는 것과 비슷한 장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분서는 이른바 나뭇가지 산을 쌓고 태우는 행위였다. 진한의 시대가 되어도 책들은 나무나 대나무 가지를 모아놓은 형태였고, 그렇게 부피를 차지하고 만들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보편화될 수는 없었다. 즉 책들은 대개 황실의 소관이었으며, 황족이나 그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고,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경우에도 빌려서 베낄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했던 것이다.

서기 200년 경 종이가 등장한 다음에도 책들은 그다지 보편화되지 못했다. 종이가 발명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널리 쓰이기에는 값이 비싸고 생산량도 넉넉하지 않았던 탓이다. 따라서 모든 학문은 황실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황실은 이 지적 재산이 외부에 나돌아 쓸데없는 공론이 발생하는 것을 지극히 꺼렸으며, 사상적인 자유는 지극히 제약될 수밖에 없었음을 이 책은 출판의 역사와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중국학의 본류인 중국에서도 책을 분류하는 목록학에만 의지해왔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아직껏 실증적으로 추구해보지 않았던 아주 새로운 주제이다.

이 책에서 책의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고증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 문맥만 보아도 책이 요즘 생각과는 무척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죽간이나 목간을 끈으로 엮는다 하더라도 무한정 엮을 수는 없기에 일정한 분량에서 분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둘둘 말았기에 두루마리를 뜻하는 '권卷'이라는 단위로 남았고, 이는 요즘도 그 뜻은 변하였지만 책을 세는 단위가 되고 있다.

책의 재질이 종이로 변한 다음에도 이 전통은 변하지 않는다. 책은 종이를 잇대어 붙여 분절된 두루마리 형태로 이어져 있었으며, 그 두루마리들에다 번호를 매겨 순서를 표시했을 따름이다. 목판에 글자를 새겨 인쇄술이 행해진 다음에도 이 방식은 유지되는데 목판의 낱장들은 두루마리 형태로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쇄가 보편화 하면서 가운데를 접어 실로 꿴 선장본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요즘의 책과 같은 형태는 인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아주 자세하게 장서와 책의 가격, 책의 소장, 독자층을 책에 대한 기록에 나온 일화를 통해 추적하는 일은 마치 서양 미시사에서 이르는 아주 세밀한 일상의 복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복원이 중요한 이유는 일상이 개인과 시대의 생각을 지배하기에, 그것을 통해 사상과 학문의 흐름을 보아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을 읽으면 중국의 사상의 흐름이, 또 중국인의 생각의 흐름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와 닿을 것이다.

본격적인 인쇄의 시대는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부터다. 우리의 경우는 고려 시대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꼽히고 있으나, 사실 초기 인쇄와 출판에서는 목판본이 금속활자보다 우선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구시대의 전적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 이유는 금속활자의 경우 소량의 책을 찍어낼 때에는 목판을 새기는 비용과 노력이 많이 절감되기에 유용한 방법이지만, 이 당시로는 아직 지형을 이용해 활자판을 떠내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책을 찍기에는 활자판이 흔들려 적합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금속활자 기술에서 독보적일만큼 앞섰던 이유는 그만큼 출판물을 소화할만한 저변이 얕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도 대량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이 목판본이 위주가 되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대량 인쇄에서는 주로 목판을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 것은 당나라 때에 목판을 새겨 책을 만드는 신기술이 시작되었지만, 이 목판 인쇄술이라는 신기술도 시작하자마자 모든 책으로 확산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가 되어도 여전히 인쇄되어 나오는 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으며, 대개의 개인 장서들은 여전히 베끼기를 통한 필사본이 주류였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즉 아직 독서의 세계는 무한한 확대 재생산이 이루지지 않았으며, 책의 미디어로서의 역할은 본격적으로 수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곧 개인적인 학업과 글 읽기가 아직은 식자층의 본류였기에 출판이라는 신기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 인쇄의 기술이 주로 요즘의 학습 참고서라 볼 수 있는 과거시험 대비용인 거업서(擧業書)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은 출판이 언제나 상업적인 활용에 치중하는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운서(韻書)나 옥편(玉篇) 같은 경우에 거업서라 하더라도 공구서로의 구실을 하여 학업의 대중화에 기여했겠지만, 정작 경전이나 주요 책자의 발간은 정부와 관청이 하여야만 했다는 사실은 출판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역할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거업서가 당대를 풍비한 사실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단순한 학업의 보편화로 바라보지 않는다. 문벌 위주의 귀족 관료보다 과거를 통해 등장한 관료들이 점차 세력을 넓혀 평민에게도 관료로써 사회적 중추가 될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일단 탄생하고 나면 시간이 갈수록 마땅한 쓰임새를 갖추기 마련이다. 당나라 때 발명된 인쇄술은 송나라에는 책 인쇄의 보편화로 진행되었다. 송나라 때에도 학습 참고서인 거업서가 출판의 선두에서 활약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인쇄술은 값싼 종이의 생산과 함께 출판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루었다. 책은 바야흐로 불특정 독자를 위해 발행되고, 선비들은 개인 문집을 인쇄하고, 전문 출판업자와 서적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물론 이런 출판의 일반화를 학문의 세속화와 출판의 질 저하 때문에 곱게 보지 못하는 학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야흐로 출판과 글은 백화제방의 시대를 맞아 활발하게 전개된다. 우리가 주자라 존칭하는 주희조차도 출판으로 영리를 꾀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로 송나라 때의 출판은 그 전성기를 맞이했음을 알게 된다. 이때야말로 사설 출판인 방각본과 관의 출판인 관각본이 어우러져 서로 성격은 달랐지만 그 경계를 넘나들며 균형을 유지한 때였다.

그러다가 송이 멸망하고 원나라 시대부터 시작해 주자학이 세력을 얻자, 명초에서 후기까지 출판과 독서의 암흑시대가 지속된다고 한다. 흥하면 망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지만 마음의 수양을 중시하는 주자학의 세상에서 책이 쇠락했다니 이상하기는 하다. 하지만 관념적인 세계에서 지식의 습득이 장애를 받았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출판의 쇠퇴는 학문에도 암흑기에 해당한다. 예전의 전통은 나라에서 사상 통제를 위해 출판과 책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이었지만, 한 사상과 철학에 의해서도 이렇게 책의 암흑시대가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전공인 책의 역사를 통한 사상사의 면모가 백미로 읽힌다. 이 글을 쓰는 서평자가 오독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저자는 명 초기와 중기에 이르는 암흑시대와 그 이후에 주자학이 쇠퇴하고 양명학이 떠오르는 사상의 변화를 책과 출판의 변화를 통해서 본 것 같다.

사상과 논리의 압제 속에서도 세상은 변하고 있었으며, 결국은 명나라 후기에 책과 출판이 활성화되면서 사회의 흐름도 바뀌고 새로운 사상도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학과 주자학의 흐름 속에서도 제자백가의 이단과 픽션에 해당하는 연의 소설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중국 출판문화사>의 후반부는 저자의 명대 사상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녹아들어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며 읽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수십 년에 걸친 책 읽기와 통찰을 한 권의 책으로 어느 정도는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지난한 노력을 한 그에게 송구스러운 느낌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출판의 위대한 공능이 아니더냐?

다만 아쉬운 것은 청나라 때의 출판이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청나라 때의 관학의 기치를 걸고 편찬한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과 같은 사실이 책에서 빠진 것은 정말 못내 아쉽다. 아마도 저자의 숭고한 노력을 볼 때 머지않아 개정판에서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고마운 것은 번역자들의 수고이다. 이동철 교수의 깔끔한 번역은 원래부터 정평이 나 있지만, 세 사람의 공동 번역인데도 이루어진 결과물은 꿰맨 자국 하나 없이 '하늘이 내린 옷(天衣)'처럼 아주 매끄럽고 쉽게 읽힌다. 더군다나 많은 한문 인용구를 현대어로 무리 없이 번역해 일반인이 읽기에 생경하지 않게 한 것은 더욱 책을 돋보이게 한다. 더군다나 역자 후기에서 중국의 출판사를 다룬 다른 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은 번역자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의 출판사를 이해하는 동안, 요즘 우리 출판의 암담한 현실이 계속 눈앞에 겹쳐졌다. 대학 입시가 옛날의 과거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거업서와 학습 참고서가 겹쳐 보였다. 상업 출판의 질곡에서 줄어드는 독자층과 의미 있는 책들의 판매 부진이 명나라 초기의 줄판 암흑기와 겹쳐 보인 것은 서평자가 출판인이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 출판 현실을 보면 바로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송나라 때의 전성기를 지나 명나라의 경직된 정부의 옹고집이 만든 결과처럼, 자본과 돈 벌기에 빠져 우리의 출판도 이제 암흑기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사상이라도 자신의 틀에 갇혀 다른 의견을 무시하면 결국은 오만과 자가당착에 빠지는 법이다. 각기 다른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어야 삶이 풍요로워지고 새로운 창조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의미 있는 출판을 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5000만 인구 가운데 그나마 가치 있는, 제대로 만든 책들을 읽는 것은 1000명밖에 안 된다는 서글픈 현실에 세상이 더없이 암울한 물신주의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은 중국 출판의 역사가 사상의 흥망성쇠와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거의 괴멸 상태에 빠진 우리 출판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가면 우리의 삶과 풍요로운 정신은 아마도 어두운 감옥에 갇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출판 환경을 개선하고, 아이들이 참고서 읽기가 아닌 진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변화시키고, 도서관을 확충하여 일반인의 독서 진흥에 힘쓰고, 출판을 자유로운 의견 교환의 장으로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과연 차기 박근혜 정부가 이 시급하고 긴요한 일을 행해야 할 절대적 과제로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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