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로비에서 일어나는 전쟁? 아니, 전쟁 없음의 긴장!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로비에서 일어나는 전쟁? 아니, 전쟁 없음의 긴장!

[프레시안 books] 히라타 오리자의 <도쿄 노트>·<과학하는 마음>

1962년생으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그의 연극을 공연으로 한 번도 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희곡집을 펼쳤을 때 당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선 희곡마다 열은 훌쩍 넘는 등장인물이 길게 이어지고 그 아래에는 반복적인 지문을 축약한 부호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 부호들은 희곡에 종종 등장하니 숙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히라타 오리자 희곡집 1권 <도쿄 노트>(성기웅 옮김, 현암사 펴냄)의 첫 희곡 '도쿄 노트'는 책을 위로 넘겨야 하는 가로편집인데다가 이단으로 전개된다. 근데 그게 왼쪽 칼럼을 읽고 오른쪽 칼럼을 읽는 식이 아니라 좌우 2단을 동시에 읽어나가야 한단다. (2단을 동시에 읽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2권 <과학하는 마음>(성기웅 옮김, 현암사 펴냄) '발칸동물원'에서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단한 비법을 기대하지는 말기를.)

일단 등장인물을 일별하고 부호도 챙겨 읽고 난 다음 본문에 들어서서도 낯섦은 여전할 것인데, 앞서 길게 이어지던 그 많은 등장인물들이 계속 들고 나면서 전개되는 대화란, "어" "아" "안녕" "왔어" "그거" "뭔?" 등등 한음절, 한마디, 혹은 두 세 어절의 문장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는 것

▲ <도쿄 노트>(히라타 오리자 지음, 성기웅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그렇다고 이 희곡집의 작품들이 난해한 실험극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지는 마시길. 연극을 직접 본다면 더 쉽게 다가오겠지만 희곡의 낯섦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인데, 히라타 오리자 연극의 독특함이란 그동안 관습에 갇혀 있던 연극을 우리 삶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단 구성이라든가 부호들은 우리 일상의 대화를 떠올려본다면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서너 사람만 모여 있어도 여러 쌍의 대화가 동시에 진행되거나 말들이 맞물리고 포개지기 일쑤이고, 그런가 하면 어지럽게 얽히던 대화가 어느 순간 뚝 끊기면서 '사이' 등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또 어떤 화제가 불쑥 떠올랐다 흐지부지 사라진다거나 말끝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것 등 역시 그렇다. 그런 우리들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희곡을 읽다보면 낯섦은 의외로 쉽게 가신다.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은 마치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은 어떤 평범한 날의 오후를 뚝 잘라 무대 위에 옮겨놓은 것 같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강렬한 캐릭터도 없다. (그래서 외국 이름에 취약한 나 같은 독자는, 무대를 들고 나는 인물들을 희곡에서 구분하기가 종종 벅차다.) 뭔가 심상찮은 관계나 사건이 언뜻 감지되기도 하지만,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 그렇듯이 떨림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린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이러한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을 '등신대의 생활감각'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일상에는 놀랍게도 유머와 아스라한 슬픔, 안타까운 긴장이 가득하다. 채 끝맺지 못하는 말들, 떠올랐다 사라져버리는 이야기들, 혹은 말을 멈춘 길고 짧은 사이가 말하지 않은 것, 말하지 못하는 것의 긴장감을 남겨두는 것이다.

하여, 이 평범한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소소한, 그러나 그 소소한 긴장이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연극의 전개는 무심히 흘려보내는 나와 우리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내 평범한 일상에 얽혀있는 수많은 관계들, 그 관계들 속에서의 소외와 고독이 그대로 스며들어오는 것이다.

희곡집의 마지막에 있는 번역자 성기웅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히라타 오리자는 희곡의 이러한 특징을 일본인의 습성으로 설명한다. 집단과 나의 동질성을 우선시하는 일본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은근히 드러낸다고 한다. 자신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대화의 겹침, 사이, 닫히지 않은 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에 대한 일본인들의 특징적인 태도라는 점은 공연에서 분명히 목격했던 바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 히라타 오리자의 극단 청년단 <도쿄 노트>는 물론이고 성기웅이 연출한 <과학하는 마음> 3부작을 보면 무대를 들고 나면서 이루어지는 깍듯한 인사들이나, 서로에 대한 조심스러움 등 세세한 행위들을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해석된 세세한 행위들을 걷어낸 희곡에서는 '일본인의 습성'이 그다지 도드라지지는 않았다. 도리어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대화나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말들은 개인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특징이라기보다는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놓여있는 '안전한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소통의 불가능에 대한 절망마저도 새삼스러운 것이, 우리의 관계란 이미 소통의 불가능성을 전제하고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로비, 가까운 미래 그리고 전쟁

▲ <과학하는 마음>(히라타 오리자 지음, 성기웅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그렇다고 해서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이 개개인의 사소한 관계들을 그리는 데서 끝난다는 건 아니다. 표제작인 '도쿄 노트'는 물론이고 두 권의 희곡집에 묶인 7편의 희곡들에는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상당히 폭넓고 깊이 있게 다뤄지고 있다.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극렬한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시간이 곧 공연 시간인 희곡에서 이러한 진전이 가능한 것은, 히라타 오리자가 포착하고 있는 '로비'라는 장소성에서 비롯된다. 두 희곡집에 실린 7편의 희곡들의 장소는 모두 로비이다. 허름한 여행자 숙소에서 이루어지는 '모험왕'의 주 무대-벽을 따라 이층 침대가 놓여있는 여행자 숙소의 한 가운데-는 따로 로비라 불리는 공간은 아니지만, 완전한 사적 장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것이 개방되는 공적 장소도 아닌 반 공공적 장소성을 갖는다.

'도쿄 노트'의 미술관 로비,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의 휴양소 로비, '모험왕' 숙소 가운데 테이블, '과학하는 마음' 3부작의 연구원들의 공동 휴게 공간,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의 공동 연구실은 여러 사람이 들고 나는 개방된 장소이면서 개개인의 대화가 가능한 사적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곳이다. 반 공공적 장소성은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연극에 펼쳐놓는 한편 때로는 각 인물들의 내밀한 관계나 대화가 전개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잘 짜인 드라마의 선명한 극적 전개가 주는 밀도나 긴장감과는 다른, 세세하면서도 부피감 있는 입체적인 드라마가 전개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의 희곡이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처럼 전개되고 있지만 희곡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현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한 연도를 밝히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특정한 시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지금이 아닌 가까운 미래를 지시한다. 이러한 시간적 간극으로 현재의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문제적 현상들을 자연스럽게 일상의 공간에 이끌어 내게 된다. 생명과학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는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 '과학하는 마음' 3부작-'과학하는 마음' '북방한계선의 원숭이' '발칸동물원'-에서 가까운 미래라는 시간의 설정은, SF 드라마가 그렇듯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과학적 실험들에 내재된 여러 문제들, 인간의 정체성, 생명 윤리 등의 문제들을 현재의 문제로 부각시킨다. 그러나 여타의 SF 드라마처럼 판타지를 통해 논쟁적 사건을 그려간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에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드라마. 이는 논쟁적인 과학적 테마들을 구체적인 우리 삶의 문제로 끌어당긴다. 교생 실습 수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대화에서,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 연구원의 갑작스러운 울먹임에서, 쉽지 않은 연애 문제와 나란히 예의 테마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 가까운 미래에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심각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쿄 노트'는 가까운 미래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말라르메의 그림들이 피난 온 일본의 한 미술관 로비가 무대다. '발칸동물원'에서 역시 가까운 미래 유럽에서는 심각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최고의 뇌과학 전문가는 그 전쟁에 참여했다가 뇌만 살아있는 상태로 보존되어 이 연구소로 온다. 그런가 하면 1980년을 배경으로 한 '모험왕'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와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모험왕'은 터키의 여행자 숙소를 배경으로 하는데, 1980년 터키에 인접한 중동과 발칸반도에서는 인종·종교 간 분쟁이 일어났었고,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티토의 서거가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광주 항쟁이 있었다.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의 은퇴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휴양소가 배경인데,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은륜부대(밀림을 통과했던 자전거부대)가 전쟁을 벌였던 곳으로 은륜부대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전개된다.

이처럼 그의 희곡에서는, 무대 위에 전개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항상 심각한 전쟁에 포위되어 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이건, 여행지의 옆이건, 혹은 과거의 기억이건. 이러한 시공간적 간극은 폭력적인 전쟁과 안온한 일상의 대비와 긴장을 만들어낸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이 주는 불안함처럼 이 안온한 일상에 '사건화'되지 않은 불안함을 드리우는 것이다.

무심한 표정을 만드는 치밀한 글쓰기

히라타 오리자 희곡집 1, 2권에 수록된 7편의 작품 중 '모험왕' 한 편을 뺀 나머지 6편은 한국에서 모두 무대화 된 적이 있다. 그동안 공연으로 보아왔던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을 희곡으로 다시 만나는 반가움도 있지만, 또 그만큼 이번 희곡집에서 새롭게 만난 '모험왕'도 흥미로웠다. 초기작인 '모험왕'은 작가 자신이 자전거를 타고 26개국 2만 킬로미터를 주파한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터키 이스탄불의 저렴한 여행자 숙소가 무대인 이 작품의 흥미로운 설정은 9인용 공동침실을 함께 쓰고 있는 이들이 모두 일본인들이라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장기 여행자들로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여행 중 만났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배낭여행을 나온 대학생들이 이 방에 도착하고 이 방을 떠난다.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도시에서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는 여행자들, 그런데 그들의 대화 주제는 시종 일본의 인기가요며 스모 선수의 이야기들이고 숙소에는 일본 잡지들, 소설책, 시집, 노래테이프 등등이 널려 있다. 정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노마드의 삶이라고 할 수도 없는, 여행자들의 공간이면서도 정체감에 휩싸여 있는 묘한 희곡의 분위기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명료하게 드라마의 전개를 이끌어가고 있다.

또 여행자 숙소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서로 서로 낯선 인물들의 만남과 대화가 섞이면서, 다른 작품에 비해 인물들의 서사가 좀 더 분명히 구별된다. 히라타 오리자 희곡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영 낯설다면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은 일상의 재현 같은 무심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치밀하게 짜여 있다. 아니, 그의 치밀한 글쓰기가 연극의 무심한 표정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그리고 그의 치밀한 글쓰기는 미처 다 해석되지 않는 '잉여'를 만들어낸다. 채 끝맺지 못하는 대화들, 말없이 비워져 있는 '사이'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 이것들은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되는 해석이 불가능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여 해석되지 않는 잉여에도 불구하고 그의 희곡은 난해함에 빠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울림을 만든다.

성기웅의 번역은 이 희곡집에 실린 6편의 희곡의 무대화에 번역자·연출자로 참여했던 경험이 묻어나는 '무대화에 충실한 번역'이다. 그런데 그 충실함은 희곡집의 독자에게는 조금 불친절한 선택을 감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번역이란 워낙에 항상 오역과 창조적 해석을 오가야 하는 작업이지만, 희곡 번역에서는 그 난감함이 더욱 가중된다. 왜냐하면 무대 위에서 대사, 즉 흘러지나가는 소리로 전달해야 하는 언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들을 세세하게 고려한 단어의 선택과 의역은, 그러나 희곡 독자들에게는 문자의 단단함이 주는 즐거움을 다소 포기해야 하는 결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문의 일본어에서 똑같은 표현이 반복되면서 오는 대사의 음악성이나 긴장감을 고집하는 대신 표현을 달리하는 의역을 시도하는 부분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꼭 독자의 즐거움을 덜어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차피 번역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의 해석을 즐기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 희곡집의 어느 한 작품이라도 눈이 아니라 입으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히라타 오리자의 일상적 대화의 긴장감과 성기웅의 번역을 함께 즐기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