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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폭격기의 눈, '즐겨야' 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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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폭격기의 눈, '즐겨야' 할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김태우의 <폭격>

전쟁은 끔찍하다. 그런데 좀 재미있다. 재미있어서 전쟁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하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재미있는 걸 일부러 재미없게 볼 수는 없는 노릇. 이 책, 김태우의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창비 펴냄, 이하 <폭격>)도 그렇다.

전쟁을 재미있게 봐도 되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일단 이 책의 어느 지점이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일까. 맨 먼저 떠오르는 건 시선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한국전쟁 이야기와 이 책이 다른 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전쟁 전체를 다시 조망한다는 점이다. 평면지도로 보는 한국전쟁은 북한이 거의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다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으며 북쪽 끝까지 진격한 이야기, 그리고 이때 개입한 중국으로 인해 지금의 휴전선 근방까지 전선이 남하한 후 그대로 고착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이 세워놓은 세로축에서 본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전쟁 초기부터 북한이 미국의 폭격에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바로 이 관점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죄송한 말이 되겠지만, 이 시점은 재미가 있다. 다른 곳에서도 폭격이라는 소재를 종종 다루기는 하지만, 2011년과 2012년에 나는 우연히 똑같은 잡지에 폭격을 중심소재로 한 단편소설 두 편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나는 지금 다루는 책의 제목과 똑같은 '폭격'이라는 단편이고(☞소설 전문 보기 : '하얀 눈 내리던 그 끔찍한 순간!'), 다른 하나는 '난공불락 대작전'이라는 단편이었는데, 전자는 피해자 입장에서 쓴 폭격 이야기인 반면 후자는 공격하는 쪽에서 본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좀 더 좋아한 쪽은 지상에 있는 피해자 관점에서 쓴 '폭격'이었지만, 쓰는 입장에서 더 재미있었던 건 폭격기 조종사 관점에서 쓴 '난공불락 대작전'이었는데, 그 이유를 가만히 떠올려보면 역시나 시점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 지면에서 그 높이까지 확장된 거대한 공간, 비행기의 속도감, 조종사라는 특수한 직업의 묘미 같은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새로운 감각들이 이야기에 독특한 느낌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 <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김태우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김태우의 <폭격>은 바로 그 시점을 채택하고 있다. 책에 실린 사진 중 상당수가 폭격기나 정찰기에서 도시나 촌락 지역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이 시점이 왜 재미있게 느껴지는 걸까. 긴 말 필요 없이 일단 신의 관점 아닌가! 거기에, 피사체를 평소에는 볼 일이 없던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재미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점은 물론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끔찍한 전쟁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히는 또 다른 이유는, 자료다. 부제가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이라지만 결국 미국이 북한을 무차별 폭격한 이야기이다 보니 "그럼 미국이 잘못했다는 거냐?"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들을 벌써 여러 군데에서 목격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런 비난의 화살이 저자에게 직접 향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을 끌고 가는 지배적인 목소리는 저자의 목소리가 아닌 자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추천받은 책 혹은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져서 도저히 손을 댈 엄두가 안 나면 고전을 찾게 되고, 읽어야 할 고전마저도 너무 많아지면 결국은 다 내려놓고 자료를 들여다보게 되는 일. 그만큼 자료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 책이 활용하고 있는 자료들은 입체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 공격하는 쪽의 분업화되고 관료화된 표적 설정, 그에 따른 기능주의적인 폭격 수행,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쟁 참여자들의 무심함은, 폭격을 당하는 입장에서 작성된 자료들과 함께 제시된다. 즉, "목표를 최대한 정확하게 타격해도 부수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피해(하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사소하지 않은 피해)"라는 미국 측의 무심한 입장이 담긴 기록과, "민간인 구역을 일부러 목표로 삼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북한 측의 의외로 과장 없이 꽤나 객관적인 기록(미국 측 기록과 거의 유사하거나 오히려 피해 규모를 적게 잡음)이 동일한 폭격 사건을 둘러싸고 동시에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입체적인 자료는 대단히 흥미롭다. '폭격'에서 다룬 폭격 피해 지역의 망가진 삶과 '난공불락 대작전'에서 "회사원"으로 묘사한 폭격기 조종사의 일상 업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하나로 맞물려서 문제의 사건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니, 정말로 탐나는 관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쯤 되면 다시 죄책감 비슷한 것이 고개를 들기 마련. 전쟁에 관한 기록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보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까. 혹은 이런 기록들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바람직할까.

김태우의 <폭격>은 흥분하기 좋은 내용들이 잔뜩 들어있는 책이다. 우선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된 점이 그렇고, 미국이 북한 전역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준까지 공격했다는 주장이 들어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또한 폭격이라는 형태의 폭력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성격상 '저 아래 점처럼 놓인 피해자'에 대해 가해자가 갖게 되는 무심한 태도나, 참상 자체의 묘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서류의 숫자나 조종사들의 보고서에 남은 건조한 정황 묘사만 봐도 충분히 상상 가능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잔혹함이 그렇다. 이것들은 하나씩 따로 놓고 생각해 봐도 충분히 논란을 일으킬 만한 것들이다.

그렇다. 전쟁은 끔찍하다. 얼마나 끔찍한지 말도 못할 정도로 깊고 깊은 심연이다. 그래서 그 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이 툭툭 내뱉는 비교적 사소한 수준의 끔찍함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다. 그 작은 끔찍함에 시선을 빼앗기면 더는 심연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심연의 음모다.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분노할 거리들을 비교적 쉬운 곳에다 던져주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 관련 기록들을 볼 때는 이런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책을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는 뭐가 나와도 분노하거나 끔찍해하거나, 블로그에 쓸 만한 '이 책의 함의' 같은 걸 미리 생각하지 말 것. '그래서 저자는 결국 누구 편이냐?' 하는 질문 따위를 미리 머릿속에 담아두지 말 것.

그 순간 비로소 자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첫 장에 제시된 저자의 목소리, 즉 폭격이 '절대반지'였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 책 내내 자료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폭격 자체가 절대반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1차 대전을 전후해서 출현한 절대반지란 종종 절대권력 혹은 주권으로 상징되곤 하는 궁극적인 폭력 기구인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1차 대전이 시작되고 몇 주 만에, 어마어마한 양의 폭력을 몇 주가 아닌 몇 년 이상을 쉬지 않고 생산해 낼 수 있음을 들켜버린 국가라는 괴물. 우리 현대사는 총력전 체제로 전환 가능한 근대국가를 목격한 순간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군국주의화된 일본이 스케치한 세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물론 미국의 세계였다.

괴수나 외계인이 미국을 침공하는 내용의 미국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미군은 저것보다 훨씬 강해.' 이 책 <폭격>은 20세기에 완성된 근대국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자료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분업화되고 결국 산업화된 살인. 칼이나 창 등 수작업으로 죽음을 생산하던 시대의 그 잔인하고 생생한 "손맛"에서 완전히 해방된, 실제로 폭력을 담당하는 말단의 개개인은 죄책감 같은 걸 느낄 새도 없는 다분히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정해진 표적에 영혼 없는 관료제적 폭격을 가하고 돌아오는 일.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어마어마한 양의 폭력. 그 폭력을 체계화하고 일상화한 제도가 심연 아래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착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다가 어쩌다 실수나 사고로 인명을 살상하는 제도가 아니라, 매일매일 생명 몇 백 개, 삶의 터전 몇 천 곳을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생산해내야 하는 체제. 죽음은 국가의 정상적인 생산물의 일종이다. "살처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책에는 또 하나의 괴물 국가가 등장한다. 미국을 침공한 그 어떤 괴물도 수십 번쯤 가루로 만들 만큼 어마어마한 폭격을 무려 3년간이나 겪고도, 그래서 도시란 도시는 다 파괴되고 삶의 질이 움막이나 지하생활 수준으로 후퇴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꺾이지 않고 살아 있는 국가. 이 나라는 꼭 북한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폭격을 겪은 그 많은 나라 중에, 그 '충격과 공포'에 단번에 꺾인 나라가 실제로 그렇게 많았던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유의 국가가 얼마나 보편적일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1950년 8월, 함경남도 흥남을 폭격하는 미 극동공군 폭격기사령부 B-29기의 모습. ⓒ창비

이런 이유로 나는, 폭격은 국가라는 절대반지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전선 뒤쪽의 민간구역이나 산업시설에 폭격이 감행되었던 이유 역시 그들이 치르고 있는 전쟁이 전선에 나와 있는 군인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가 동원된 전쟁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내 의견만은 아니다. <폭격>에 실린 자료의 목소리 또한 이 내용을 분명히 담아내고 있다. 폭격을 거의 겪지 않은 일제시대 조선은 이미 방공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조직되고 동원되고 있었고(59쪽), 일본이 중국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계화된 병참선인 철로망은 남하하는 공산군의 주요 신경망으로 그대로 활용된다(339쪽). 공장, 발전소, 조차장 등 일제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북한 지역에 만들어 놓은 산업시설 전체가 그런 의미에서 전략 폭격의 목표로 부각되고(105쪽), 결국에는 국가 전체가 잠재적인 군사 시설로 간주된다(287쪽). 누군가에게는 그냥 수사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이 그 지역을 공격할 때 대는 이유도 그런 것들이다. 국가 자체를 무력화시켜서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겠다는 것이다(91, 97쪽). 물론 이 또한 자료의 목소리다.

그런데 그 일은 왜 그렇게 끔찍한 걸까. 단편소설 '폭격'에서 내가 담아내려고 했던 것 중 하나는, 일상생활 한가운데로 침투해 들어오는 폭탄의 끔찍함이다. 왜 그 공간으로 폭탄이 흘러들어오는 걸까. 전투요원이 아닌 민간인의 삶에. 그것은 민간인의 삶이 알게 모르게 전선 방향으로 조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전쟁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분업화되고 산업화된 전쟁은 그런 식으로 죄책감을 상쇄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걸 다 조립하면 비로소 괴물이 나타난다. 그러니 가끔은 그 일상의 공간에 폭탄이 슬그머니 끼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전쟁에 기여하는 삶을 살게 된 개인들의 윤리적 책임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없이 후방의 일상생활에 전쟁을 도입하려 하는 체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 우리는 국민개병제 국가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울리는 민방위훈련 사이렌은 또 어떤가? 혹은 "2013 국민과 함께하는 을지연습"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우리에게 전쟁의 영역과 삶의 영역은 정말로 개인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구분된 영역이기는 한 걸까.

물론 어쩌면 딱 이 지점이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다 만족하고 튀어나오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심연의 정체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끔찍할 무언가일 가능성은 언제 어느 시점에서든 타당하다고 본다. 전쟁은 그만큼 깊고 깊은 심연이다.

아무튼 이 책에 관해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 책을 지배하는 자료의 목소리가, 다른 곳에서 얻은 다른 지식이나 일상적인 경험 혹은 창작 과정에서 구축해 본 이런저런 세계상과 그만큼 잘 어울리는 울림을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다른 데서 얻은 지식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울림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목소리 하나를 더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게 바로 자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눈을, 신의 관점을 빼앗은 오만하고도 무심한 폭격기 조종사의 시점으로 들어 올려서, 마침내 폭탄 100개~200개 정도를 떨어뜨려야 50~80퍼센트의 확률로 표적 하나를 타격할 수 있다는 그 엉터리 같은 폭격 작전의 현장에 바짝 다가서게 해 주는 것도 자료고, 그 반대편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실종된 피붙이의 시신을 찾아 폐허가 된 도시 위를 헤매게 하는 것도 자료일 거니까. (그런데 그 자료는 또 누가 생산해낸 걸까. 답은 물론 국가다. 사료를 다루는 사람의 "관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료 자체가 애초에 그렇게 생산되었을 거라는 사실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른 전쟁도 아니고 한국전쟁 이야기 같은 걸 읽으면서 재미를 느껴도 괜찮은 걸까. 심연을 끝까지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흥분하기 딱 좋은 지점에서 흥분해버리고 끔찍하다고 말하기 딱 좋은 지점에서 그냥 끔찍하다고 말해버리면서 영원히 책을 덮어버리는 것보다는, 밀리터리 마니아라는 오해를 받더라도 자료를 읽는 즐거움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끌고 가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명탐정은 종종 살인사건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건 결국 그런 차가운 탐정의 눈 아닌가.

노근리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에도 흥분하지 말고, 북한 편이냐 미국 편이냐를 가르지도 말고, 일단 책의 내용과 첨부된 사진들을 들여다보자. 사진 곳곳에 나 있는 폭탄구멍들을 신의 관점에서 가만히 내려다보자. 책에 대해 음미하고 토론하고 또 함의를 찾아내는 일은 그 후에 시작해도 충분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런 뜨거운 주제를 놓고 충분히 깊이 있는 토론을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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