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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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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11>

한국의 유령 이야기

조선시대, 이 땅의 대표적 러브 스토리인 춘향전이 나오기 한참 전. 이 같은 남녀간 러브 스토리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는 있으나 산 사람을 등장시키기에는 아직 민망스러움이 있었던가.

한국 문학사의 최초 한문소설로 알려진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주인공들이 모두 귀신과 사랑을 나눈다. (금오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무슨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해설인가”질책하실 런지 모르겠으나..... ) 요즘으로 치면 단편소설 다섯 편으로 한권이 되는 금오신화 이야기 가운데
염라국, 또는 용궁을 다녀온 이야기 두 편을 빼고 나머지 세편은 모두 주인공이 귀신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에 사는 양생이란 가난한 노총각이 만복사 불당에서 부처님께 아름다운 배필 한사람을 점지해 달라 빌고 난 다음 불좌뒤에 숨어 있은즉, 과연 아름다운 아가씨 한사람이 들어와 부처님 전에 향을 사루고 세 번 절을 올린 다음 ‘아! 인생이 박명하다고는 하나...’ 어쩌고 하면서 탄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쨋거나 그녀도 ‘부처님 꽃다운 배필을 점지해 주소서’그런 기원을 하는 참이었다.

퇴락한 절 만복사의 낡은 행랑에서 그날 밤 두 사람은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고 이튿날 그녀가 거처하고 있다는 산골짜기 ‘다북쑥 덮이고 고목 우거진 곳의 초당’으로 가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말하길 ‘이곳의 사흘은 인간의 3년과 같습니다. 가연 맺은 지 오래되었사오니 당신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운운 하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수 없이 인간사로 돌아 온 양생. 그는 그녀가 시킨 대로 보련사로 가, 죽은 딸의 3년 상을 치르는 귀족양반 부부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증거까지 보여 줌으로써 그가 그들의 사위되었음을 알린다.

귀족의 재산을 물려받은 양생은 그녀를 위해 늘 재를 올려주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허공에서 그를 불러 말하길 ‘당신 은덕으로 나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당신은 당신의 길을 닦아....’운운하며 또 다시 이별송을 부르는 것이다. ‘이후 양생은 다시 장가들지도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운운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생규장전’은 죽은 아내의 혼령과 다시 가연을 맺어 살아온 이야기이며 ‘취유부벽정기’는 아얘 시공을 넘어 고조선 때 기씨녀와 만나 정분을 나눈다.

하기야 약간 앞선 시기, 중국의 전등신화 등 중국의 문학작품, 기괴담 등도 귀신 이야기가 태반이니 역사적으로 이 때를 귀신을 빌어 러브 스토리를 연습했던 시기라 부르면 안될까.

어쨌거나 학자들의 분석대로 금오신화에는 우리 고유의 귀신관과 당시의 한 많은 사회상, 그리고 민속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현대 소설에서 귀신 이야기를 골라 보자.
이문열의 소설 ‘아가’에는 반편이(모자라는 사람) 주인공 당편이가 해질녘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날 제사드는 집에 찾아드는 귀신을 보고 마을로 내려온다. 귀신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제사드는 집을 귀신같이 찾아내 제사밥 얻어먹고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동서양 어디서나 좀 모자라는 사람들, 이른바 ‘바보’들에게는 보통사람들에 비해 신비의 세계가 보다 잘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편이 역시 그런 바보, 반편이일 것이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방방곡곡마다에 서려 있는 귀신이나 유령 이야기는 ‘당편이’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많다. ‘전설 따라 삼천리’쪽으로 가면 그 보다 더 다양해진다.

유령이야기라면 현대의 서울 한복판에서도 나온다. 대학가의 ‘육법전서 귀신’은 아주 그럴듯하게 각색돼 있다. 사법고시 준비로 괴로운 인생을 보내다 드디어 자살한 어느 법대생이 죽은 후 밤이면 자신이 기거하던 기숙사 창문밖에 서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애처롭게 지켜본다는 것이다.

늦은 밤 어느 구멍가게에서 우유와 빵을 시켜놓고 맛있게 먹고 간 노인이 뒤에 알고 보니 몇 년 전 죽은 이웃집 할아버지였고 그날이 바로 제삿날이더라는 이야기는 현대판 ‘전설의 고향’이다. 어쩌면 그 할아버지는 후손들의 정성이 흡족치 못해 구멍가게에서 우유와 빵을 사 부족함을 채웠을 런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이야 제사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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