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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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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23>

무덤 이야기(5)-이슬람, 전설을 남기며.....

종교가 가르는 경계선이 있고 그에 따라 무덤이 보여주는 경계선도 있다.

동진(東進)을 계속하던 이슬람교는 중국 최서단에서 일단 발걸음을 주춤하며 그 경계선을 무덤으로 보여 주기 시작한다. 중국 서쪽 끝 도시, 실크로드 천산남로의 중국 끝부분인 카슈가르(이곳은 아프간과의 국경도 가깝다)인근에는 350여 년 전 이슬람 지도자였던 호오쟈의 무덤과 그의 딸인 전설의 향비(香妃)묘가 있다.

향비는 청나라 건륭황제의 부름으로 궁궐에 갔다가 황제의 구애를 거절하고 자살하였으며 그 시신을 북경에서 3년에 걸쳐 이곳으로 옮겨와 모셨다는 곳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민족적 자존심과 함께 종교적 순교성도 포함된다. 물론 지금도 카슈가르는 위그루자치주와 함께 중국속의 이슬람교 지역이다.

이들 도시에 있는 청진사(靑眞寺)라는 수많은 건물들이 이슬람교 사원임을 알려 준다. 그런데 무덤이다. 향비의 무덤은 푸른 타일의 이슬람 궁전식 건물, 그 안 홀에 관 그대로 단위에 올려져 있다. 땅 속 아닌 건물 안 홀에 관을 높이 올려 모시는 것은 이슬람교 기독교의 서로 닮은 점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건물 안에 관을 모신 묘소는 카슈가르와 비슷한 경도위에 위치한 이슬람권의 중앙아시아에도 있다. 14세기 징기스칸이 죽은 후 몽골제국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중앙아시아에 이슬람대제국을 건설한 티무르의 묘가 그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사마르칸트는 티무르가 좋아했던 푸른색, 그래서 푸르게 조성한 푸른 도시, 여기에 푸른빛 돋보이는 건물, 구르 에미르가 그의 묘다. 구르는 묘라는 뜻이며 에미르는 지배자라는 의미로 구르 에미르는 ‘지배자의 묘’라는 뜻이라 한다. ‘알라는 위대하다’라 쓰인 이 건물의 안팎은 푸른 타일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문양들이 수 놓여 있다. 관은 흑록색을 띈 연옥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이상하게도 진짜는 아니라 한다. 진짜 유체는 바로 아래에 있는 지하실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용감한 전사였던 티무르에게는 비비 하님이라는 애첩이 있었고 여기에는 또 전설적인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묘 안에 아내는 없고 아들만 함께 있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고 그 가루를 흐르는 강에 뿌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덮고 습기 찬 기후가 자연스럽게 그런 화장 풍습을 만들어 온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북인도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을 보면 인도에도 이슬람이 세력을 떨쳤고 이슬람은 이곳에서도 이슬람식 무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힌두교에서도 덕 높은 성자가 죽으면 앉은 자세대로 동굴 같은데 모시고 무거운 돌로 입구를 막아 흙을 발라 두는데 이런 곳은 힌두교도들의 성지 순례지가 되기도 한다. 성자는 평생을 높은 경지의 요가로 스스로를 정화해 왔기 때문에 새삼 불로 정화(화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타지마할의 꿈처럼 아름다운 모습과 왕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야 너무나 유명해 새삼 이야기 거리도 못된다. 인도에는 타지마할과 같은 이슬람식 묘가 여러 군데 있다. 같은 무굴제국 시대의 묘로 이보다 1백여 년 앞선 델리부근의 후마윤 묘도 당시의 왕비가 세운 묘다.

좀더 서쪽으로 가서 기독교권을 보면 이슬람과 비슷하게 건물 안 홀에 관을 높이 모신 곳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파리 중심가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다. 파리의 전쟁 기념관 앵바리드 돔에는 건물 안 넓은 지상 홀 한 가운데 높직하게 나폴레옹의 관을 모셔두고 있다.

1821년 5월5일 센트 헬레나 섬에서의 나폴레옹의 죽음은 옛 황제의 영광에 어울리지 않게 비참했으며 무덤조차 돌보는 이 없었으나 7년 후 나폴레옹에 대한 새삼스러운 향수가 일기 시작, 그의 시신을 파리로 옮기게 된다.

유체는 고대 이집트 왕처럼 여섯 겹의 관에 넣어져 보관돼 있다. 제일 안쪽에는 주석관, 두 번째는 마호가니, 세 번 째 네 번째는 납, 다섯 번째는 흑단, 6번째는 떡갈나무인데 이 관은 다시 녹색 화강암의 큰 석관에 넣어져 납골당에 안치돼 있다. 거대한 승리상들이 원형으로 둘러서 황제를 경호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혀 그곳이 무덤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장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다. 프랑스 인들은 그 주변에 그에게 충성하던 장군들과 형제들을 묻어 주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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