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맞이하는 민심이 사뭇 심상치 않다. 최근 여론의 요체는 바로 ‘변화’이다. 언뜻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에서 새로운 변화를 잉태하는 여론의 흐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른바 정중동(靜中動)의 국면이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최근 여론흐름의 줄기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그 동안 ‘여론정국’의 흐름을 주도해온 주요 정치지표를 분석해 보면 무엇보다 최근 들어 대통령 지지도와 야당 총재 지지도가 답보상황에 빠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김 대통령 지지도(4점 척도)는 지난 5월 이후 30%대에서 멈춰 별반 움직임이 없다. 이런 지지도 정체현상에 대한 가장 타당한 해석은 김대중 대통령 및 민주당의 핵심지지층(Core Supporter)의 크기가 국민의 30% 정도이며, 동시에 이들 외에는 더 이상 지지층이 없는 바닥상태라는 분석이다. 결국 우리 정치에서 김 대통령이 차지하던 정치적 의미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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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야당총재이자 차기 대권후보인 이회창 총재의 지지도 역시 지난 5월 이후 지금까지 30%대에서 별반 변화가 나타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이회창 총재의 지지도가 역동적 상승곡선을 그리던 시기는 2000년 10월부터 2001년 5월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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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총재의 지지도가 상승일로를 걷던 그 기간은 어떤 기간일까? 2000년 10월 무렵은 고유가 사태 등을 겪으며 경제위기감이 확산되고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론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점이다.
이후 의약분업 및 건강보험 재정 고갈 등 각종 정책실패 논란 속에서 2001년 5월에 이르러 정책실패에 대한 국민 불만이 고조되고, 인사정책 실패 및 정부 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물의 및 비리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지던 시점이었다.
요약하면 ‘정책실패’와 ‘비리사건’으로 압축되는 기간이며, 현 정부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가 무너졌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아울러 현 정부 최대치적으로 꼽히는 남북관계가 답보상태로 빠진 것도 대략 이 기간이다.
다시 말해 ‘이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여론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회창 총재와 야당으로서는 정부, 여당의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을 한껏 누린 기간이었다.
***이총재 지지도가 오르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 총재 지지도가 5월 이후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반DJ접점’으로서의 정치적 노선이 더 이상 여론지지를 상승시키는 동인으로서 작용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반사이익에 의한 지지상승은 ‘지지층 확장’이 아닌, ‘지지층 결집’의 단계로 볼 수 있으며 차후 지지도 제고를 위해서는 야당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여 주며 지지층을 확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당지지도를 보자. 2000년 말부터 금년 초까지 치열한 접전을 거듭하던 여야 지지도는 지난 5월 지지도가 반전된 후 대략 10% 안팎에서 안정적 야당 우위를 보여 왔다.
그러나 정당지지도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현정부에 민심이 떠났음을 극명하게 증명한 재보선 시점 이후 여야간 지지도 격차가 극대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월에 들어서면서 야당 지지도에는 큰 변화가 없고 여당 지지도는 상승해 격차가 오히려 좁혀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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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 동안 10% 이상 벌어져 있던 여야 주자간 가상대결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조짐이 뚜렷하다. 몇몇 조사를 제외하면 최근 여야주자간 격차가 대체로 5% 수준으로 점차 폭이 좁혀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볼 때, 그 동안 야당우위의 호황(?) 국면 속에서도 야당이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오만한 야당’이라는 여론흐름 상 치명적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전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의 정체성을 ‘민주화 투쟁’에서 찾는다면, 문민정부 시절은 ‘수평적 정권교체’ 였으며, 이 두 가지 모두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선명한 노선일 수 있었다고 본다.
반면, 현 정부 출범 이후 야당 정체성은 앞서 지적했듯이 ‘반DJ노선’이라는 반사이익에 근거한 대자(對自)적 정체성이다. 이제 그 같은 노선의 효용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이총재와 야당은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메시지와 함께,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집권세력으로서의 ‘정권수복’은 정치세력에게는 당위성과 최대목표가 될 수 있을지언정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여야 정치권 모두가 국민의 어떤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여론은 ‘새로운 변화’로의 희구로 귀착되게 마련이라고 볼 수 있다. 앞 뒤로 길이 없으면 옆으로 튀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국민은 기존 여야가 아닌 ‘변화’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렇게 ‘옆으로 튀겨나가는 여론’이 최근 여론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10월 재보선 이후 지난 두 달여 간의 민심흐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여론의 큰 줄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현 정부의 정책적 오류와 비리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재보선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미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 사퇴했으며, 정치권 내부에서의 권력관계는 몰라도 대중에게 던져주는 상징적 영향력은 이미 상실되고 있는 국면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향후 대통령 및 여당의 잘못을 야당이 실컷 두드려도 야당 자신의 지지도 상승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DJP공조 파기 이후 거대 야당의 힘이 국민에게 각인되었으며, 마침내 ‘이회창 대세론’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오만한 야당’이라는 단어가 언론 등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그 동안 한나라당이 특별히 오만해지거나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다만 강자에 대항하는 역할에서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강자로 상황이 바뀌다 보니 아무래도 오만하게 비춰질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여당 내부에서부터 개혁과 쇄신의 움직임이 싹트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 총재직 사퇴 이후 그 동안 묶여있던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논의 역시 본격화 되었다.
사실 최근 민주당은 우리 정치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계기야 어떻든 간에 과거에 상상하기 힘든 각종 정당개혁조치들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지금 이대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 같은 현재 움직임을 여당 내부의 ‘그들만의 잔치’로 의미를 축소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정치권 내부의 이 같은 방향성이 국민의 요구와 궤를 같이 한다면 그 의미는 보통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싫다, 정계개편 해라”**
최근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여론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정치판의 모양새를 바꾸자는 이른바 ‘정계개편론’에 대한 높은 지지, ‘개혁신당’에 대한 선호여론 등이 그것이다.
또, 무엇보다 현재의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 주요한 특징이다. 물론 이것을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개헌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보기는 힘들다. 다만 현제도가 한 사람 또는 세력에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부여한 시대착오적 ‘제왕적 대통령’제임을 깨닫기 시작하는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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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근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 내각제의 장점에 대한 수용도가 높게 나타났다. 물론 내각제의 장점만을 부각시켜 놓은 것으로 이를 지지도로 보기는 힘들다. 다만 장점에 대한 수동적 수용성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때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해결책, 또는 대안으로서의 내각제’에 대한 수용도가 59%로 높게 나타났다. 이를 내각제에 대한 지지도로는 보지 않더라도 현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 인식의 반증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 하는 조사결과가 바로 ‘바람직한 정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응답 결과이다. 위의 자료를 보면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찬성이 그렇게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4년 중임제+정부통령제’에 대한 지지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요약하면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수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축약될 수 있다.
최근에 나타나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여론이 정권재창출에 한계를 느낀 여당 내부에서 추진된다고 해서, 야당이 이를 ‘이회창 대세론’의 판을 깨기 위한 음모라는 시각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여론흐름의 큰 흐름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실 최근의 변화는 그 동안 ‘절대권력’에 대한 수용성이 어느 국민보다 높던 우리 국민들이 다양성의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이른 바 지난 수 십 년간 우리 정치를 주도하고, 또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3김 시대가 끝나 가는 흐름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개혁과 쇄신을 기치로 하는 주자들이 ‘뜨는’ 이유는 이 같은 여론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회창, 피기도 전에 질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변화를 억울해 할 수 있는 두 정치세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현 정부를 탄생시켰던 ‘정권창출’ 세력과, 이른바 3김 시대를 종료 시키고 정권교체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생각할 야당의 이회창 총재와 그 지지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구 정권창출 세력의 과거 민주화 투쟁에서의 노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지 간에, 또 왜 이 같은 흐름이 하필이면 승리고지를 눈 앞에 둔 지금 나타나는지 이해하기 힘들던 간에 이제 ‘변화’의 민심은 차기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거스르기는 힘들다.
좀 더 짧게 들여 다 보면 야당은 호기를 놓치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 야당은 민심이 현 정부를 떠날 때, 새로운 비전과 함께 달라진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었어야 한다. 여당에서 눈을 돌려 야당을 쳐다봐도 과거와 같은 모습과 함께 불안함을 보여준다면 불신과 체념에 지친 국민이 눈 돌릴 곳은 새로운 변화 밖에 없지 않겠는가?
국민도 현 정부가 제대로 못한 것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야당은 이제 정국운용이라는 측면에서 김대통령과 현 여권을 무너뜨리는 대공세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수성의 단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자칫 방심하면 내리막을 걸을 수도 있다는 말이며, 피기도 전에 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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